김춘수/ 꽃1, 꽃을 위한 서시, 꽃의 소묘, 죽음, 구름과 장미, 미목, 네가 가던 그날은 꽃 1 김춘수(1922~ 2004) 그는 웃고 있다. 개인 하늘에 그의 미소는 잔잔한 물살을 이룬다. 그 물살의 무늬 위에 나를 가만히 띄워 본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한마리의 黃나비는 아니다. 물살을 흔들며 바닥으로 바닥으로 나는 가라앉는다. 한나절, 나는 그의 언덕에서 울고 있는데, 陶然히 눈을 .. 여백/시집 2014.11.11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朴成龍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朴成龍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가로수의 가지 끝에 피어있던 나무잎들, 그 물오른 피부와 엽맥의 綠素들……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 그것은 손처럼 품안으로 기어들던 부드러운 바람결, 흩어진 나무잎에 묻혀 울던 벌레 울음, 아침과 저녁을 가려 벽들을 울.. 여백/시집 2014.11.04
오광수/ 우리 첫 눈 오는날 만나자 우리 첫 눈 오는날 만나자 오광수 우리 첫 눈 오는 날 만나자 빨간색 머풀러로 따스함을 두르고 노란색 털장갑엔 두근거림을 쥐고서 아직도 가을색이 남아 있는작은 공원이면 좋겠다 내가 먼저 갈게 네가 오면 앉을 벤치에 하나하나 쌓이는 눈들은 파란 우산 위에다 불러 모으고 발자국 .. 여백/시집 2014.10.17
아침 이미지/ 박남수 아침 이미지 朴南秀(1918~ 1994)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 여백/시집 2014.10.04
김규리/ 동백나무 숲에서, 국화꽃을 따다 동백나무 숲에서 김규리 몸져 누운 자리에서 시절의 세월을 살다 간 원혼들 봄 바람은 아직도 할말이 많다 빨간 립스틱을 바르며 한때, 당신을 사랑했던 영혼에 불지르며 툭, 발밑으로 깔리는 무거운 겨울의 늑골을 통과한 동백나무 숲이 철렁, 떨어진다 생살 찣는 아픔으로 분탕질에.. 여백/시집 2014.09.25
이외수/ 첫 사랑, 가을수첩 첫 사랑 이외수 이제야 마음 다 비운 줄 알았더니 수양버들 머리 풀고 달려오는 초여름 아직도 초록색 피 한 방울로 남아 있는 그대 이름 가을 수첩 이외수 창문을 연다 가을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떠나는구나 나는 하늘 한 조각을 오려서 노트 갈피에 끼우고 사랑은 끝내 시리다 라고 적.. 여백/시집 2014.09.02
최영/ 호기가 豪氣歌 崔瑩(1316~ 1388) 눈마쟈 揮엿노라 구분솔을 웃지마라 춘풍에 피온 꽃이 每樣에 고와쓰랴 風飄飄 雪粉粉ᄒᆞᆯ제 네야나를 부러 ᄒᆞ리하 <大東風雅> 73. 여백/시집 2014.08.29
조병화/ 가을, 노을, 세월, 겨울 가을 조병화 전투는 끝났다 이제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긴 그 어리석은 싸움에서 그 어리석음을 알고 서서히, 서서히, 돌아서는 이 허허로움 아, 얼마나 세상사 인간관계처럼 부끄러운 나날이었던가 실로 살려고 기를 쓰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애절한 일이 또 있으랴 가을이 접어들며 훤.. 여백/시집 2014.08.29
문병란/ 호수, 나그네, 꽃씨 湖水 문병란(1935~ )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득임 사이에서 더욱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버린 .. 여백/시집 2014.07.15
오세영/ 연꽃 연꽃 오세영(1942~) 불이 물 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차가운 불, 불은 순간을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려는 자 있거든 한 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달아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여백/시집 201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