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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두리 쇠미산- 2012년 1월 14일
어린이대공원 들어오자마자, 12시 50분.
여기는 녹담대
좌우에 날카로운 눈의 사나이 둘을 경호원으로 거느리고
이제 장도에 오른다.
못둑에 "隆熙三年 竣工"이라 쓰여있다.
'융희'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제27대 純宗(1907~1910 재위)의 연호다.
"융희 3년"은 1909 년이다.
"머리조심", 1시 30분.
사직운동장이 보인다.
쇠미산, 3시.
■쇠미산(399m)은 새미산, 또는 金湧山이라고도 하는데,
안내표지에는 금정봉이라 했다.
낙동강 쪽을 바라보고,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편편바위다.
이 바위 아래에 뻥 구멍이 뚫려 베틀굴이란 동굴이 되었다.
■베틀굴
누가 불을 피웠는데 시커멓게 그을렀다.
어떤 소명에 불타는 기독교인인가? 빨간색으로 선명하게 십자가를 그렸다.
부산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제7호, 1969년 1월호에,
인근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는 이야기라 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성지곡 동편이 새미산인데 이 산을 사직동인들은 돌작골 또는 돌작동이라 하며, 산복에 사찰이 있는데, 世美寺라고 한다.
산복에 베틀굴이라는 동굴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데, 크기는 어른이 양팔을 펴고 들어가도 거침이 없으며,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 끝까지 가본 사람이 없다.
과거 평상시에 장정 수십 명이 촛불을 들고 입굴하여 보았는데, 처음에 조금 사하면(斜下面)으로 수 시간 계속하다가 다음에 좀 더 경사가 되며, 깊이 내려가기로 또 수 시간 계속하다가 위험하기로 퇴굴하였다고 한다.
굴벽은 전부 암석으로 되어있고, 人造는 아니요, 천연작임에 틀림이 없다.
임진왜란 때 인근 주민들이 왜군이 올 때마다 피신한 곳이며, 굴의 입구에는 항상 거미줄을 쳐 두었기 때문에 왜군들도 속았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 산을 생명산이라 하며, 오늘날 새미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이 산에는 옛날에 철물이 많이 나왔기로 금용산이라고 하며, 쇠뫼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세미사 앞에는 장군바위가 있는데, 옛날에 장군들이 놀던 자취가 있고, 바둑판도 있다고 한다."
최화수, <금정산의 재발견>, 1995, 국제신문사,
254쪽에서 재인용.
능선 가운데 톡 튀어나온 봉우리, 우리가 지나온 쇠미산이다.
성지곡 수원지가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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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고개, 4시 45분.
이 물을 마시면 鶴처럼 목숨이 길어진단다.
鶴처럼 孤高해진다면 되로, 말로 마시련만.
가파른 내리막을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내려온다.
이 겨울 너무 가물어서 걱정이다.
이
아까 1시 30분에 이곳을 자나갔고,
돌아와 지금은 5시 10분이다.
3시간 40분만인가.
여기서 마무리하고, 5시 25분.
대망의 2차.
나는 들깨국수 한 그릇, 돼지고기 보쌈, 해물파전,
막걸리 반 잔, 펩시콜라 한 병.
많이도 먹었다.
오늘 저녁의 주식 국수말고는 혜미니 님이 샀다.
그녀는 <월간문학>지가 실시한 제23회 신라문학 수필부문 대상을 받았다.
산두리의 깃발을 축하해주고 싶어서 나왔을 것이다.
"○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주제넙게 이야기 한다.
오늘은 산두리의 날이다. 겸하여 축하드린다.
많이 먹어서 등산화 끈 매는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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