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주산지, 절골, 주방천- 2011년 10월 26일
어제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이번 가을 가장 추운 날이라 했다.
그러나 오늘 추위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대로 때를 잘 맞춘 것 같다.
맑은 계곡과 파아란 가을 하늘, 산천을 물들인 울긋불긋 단풍등.
주산지에서
앞줄 왼쪽부터, 유동, 가이두라, 빛들, 유심초, 海바리기, 초록맘, 상큼이, 청심이, 자리.
뒷중 왼쪽부터 구름달, 구름달 아드님, 너른바위, 마술피리, 비나리, 유비한, 아이리, 물찬제비, 행복, 상큼이, 디디, 민우, 울산의 바람,
달마루와 모두 13명이 함께 했다.
■ 12시에 주산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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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안에는 늙은 왕버들 여러 그루가 살고있다.
버드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 고르게 자라는 잎떨어지는큰키나무[落葉闊葉喬木]이다. 버들피리를 만드는 갯버들, 능수버들, 수양버들, 용버들, 떡버들 등 40여 종이 있다.
버드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는 대개 연인들의 이별에 관한 것이 많다.
주몽의 어머니의 이름이 유화인 것은 버드나무가 여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낭군이 길을 떠날 때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었다 한다. 나무의 생김이 호리호리하여 여인의 허리를 닮았으므로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 자기를 떠 올리게 할 생각이며, 떠나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버드나무처럼 흔들리기 쉬우니 빨리 돌아오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여인의 가는 허리를 버드나무의 하늘거리는 가지에 빗대어 柳腰라 한다.
왕버들은 도깨비버들 곧 鬼柳라고도 한다. 왕버들은 습한 곳에 자라다 보니 줄기가 잘 썩어 커다란 구멍이 생기기도 한다. 그 구멍으로 날벌레들이 날아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죽어 쌓이고, 그 죽은 몸속의 인 성분이 빛을 내게 된다. 이 빛은 비가 오거나 습한 날씨에 더욱 반짝이는데 이것이 도깨비가 내는 빛처럼 보여 도깨비불이라 했다. 도깨비들이 사는 나무가 도깨비버들이다.
왕버들은 크고 굵게 자라며 오래 산다. 다른 버들은 잎이 길쭉한데 반하여 왕버들 잎은 달갈형이며 크다.
왕버들은 경기도 이남의 남부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 주산지 는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 있다.
신록의 봄이나, 단풍의 가을에 독특한 멋이 있다. 내주왕산 절골과 함께 청송 8경의 하나이다.
주산지 초입에 작은 비가 서있다.
비제에 "李公堤堰成功頌德碑"라 쓰고,
왼쪽에 작은 글씨로 乾隆 36년 辛卯 十月 日 立"라 썼다.
'건륭'은 청나라 고종(1711~1799)의 연호다. '건륭 36년 신묘'는 1771년이다.
조선 영조 47년이다.
비 뒷면에 "一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 정성으로 둑을 쌓고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배푸니 그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라 쓰여있다.
주산지 못둑에서 점심, 12시 30분.
주산지 주차장으로 간다.
주산지주차장으로 돌아왔다. 1시 25분.
■ 절골 주차장 도착, 1시 35분.
절골로 들어간다.
고추나무라 한다.
2시 30분에 절골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2시 50분 주왕산 대전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전사로 가는 길에 기암이 보인다.
旗岩은 전설에 따르면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과 전투를 하면서 이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뜨물을 계곡에 흘려보내 마장군 병사들의 눈을 현혹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약 200㎥의 평지가 있다.
* 대전사
대전사는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애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 창건하였다고 하고,
고려 태조 2년(919)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大典道君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에 절이 불타는 바람에 옛 건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중심 전각인 보광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왼쪽 벽 위쪽에 코끼리를 탄 문수보살 벽화가 있다. 문수보살이 이처럼 단독으로 그려진 예는 흔하지 않다.
그밖에 명부전, 산령각, 요사채 들이 있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옛날에는 수도처로 알맞았던지, 도선국사․ 최치원․ 나옹화상․ 보조국사․ 무학대사․ 서거정․ 김종직 등이 여기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조일전쟁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승군을 모아 훈련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부도들이 모여있는 부도밭이다.
절 뒤로 난 주방천 길을 따라 3개의 폭포 구경.
급수대
신라 제37대 선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김주원(태종무열왕의 6대손)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자 각간 김경신이 난을 일으키자 김주원은 왕위를 포기하고 석병산(주왕산)으로 은신하여 이곳에 대궐을지었다 한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 한다. 산 위에는 물이 없다.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썼다 하여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주왕산(720.6m)은 청송군과 영덕군. 태백산의 지맥에 있다.
주봉 주왕산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태행산(933m) · 대둔산(905m) · 명동재(875m) · 왕거암(907m) 등의 봉우리들이 둘러쳐져, 산들이 병풍을 친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옛부터 石屛山이라고도 불렀다.
그 병풍같은 봉우리들 사이로 남쪽으로 흐르는 주방천 상류인 주방계곡이 군데군데 폭포를 이루면서 이어진다.
주방계곡의 이쪽저쪽으로 기암 · 아들바위 · 시루봉 · 학소대 · 향로봉 등 여러 봉우리가 있다.
주왕산의 봉우리들은 화산이 폭발한 뒤에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주왕산이 형성된 화산활동은 지금부터 약 7,000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후기로 여겨진다. 이때가 한반도에서 공룡들이 살던 시기이다.
※ 주왕산이란 이름이 생기게 된 전설이 있다.
중국 당나라 덕종 12년 왕손인 周鍍라는 사람이 진의 회복을 꿈꾸며 스스로 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 1만명으로 779년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쳐들어갔으나, 곽의자에게 크게 패하여 쫓기다가 요동을 거쳐 강원도, 진성(지금의 진보)을 거쳐 마침내 숨어든 곳이 이곳 주왕산이었다.
당나라에서는 주왕을 섬멸해 달라고 신라에 요청하자 신라에서는 마일성 장군 5형제를 보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때 주왕은 旗岩을 마치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런 전설과 관련하여 주왕이 무기를 숨겨 두었다는 무장굴,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쌓았다는 자하성(주방산성), 주왕의 군사들이 훈련을 하고, 그 안에서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등이 있다.
주왕암은 주왕이 마장군을 피해 있으면서 위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다가 마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곳이다.
이때 주왕이 흘린 피에서 수달래[水丹花]가 돋아났다고 한다. 주방천 가에는 늦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붉은 꽃이 핀다. 진달래보다 더 진하고 검붉은 반점이 있다. 해마다 5월초에 ‘주왕산 수달래제’가 열린다.
신라사람 김주원도 이 산에에 은거했었다. 김주원은 선덕왕에 이어 왕위에 추대되었으나, 뒤에 원성왕이 된 김경신이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이곳에 은거했다고 한다.
1976년 3월 30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를 다녀온 벗님들을 만나 돌아간다.
5시에 대전사 입구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5시 40분 달기약수
■ 달기약수는 청송읍 부곡리에 있다.
조선 철종때 수로공사를 하다가 바위틈에서 발견하였다. 골짜기를 따라 약수가 나오는 곳이 하탕․중탕․상탕 등 여러 곳이 있다.
이 약수는 탄산이 들어있어 물맛이 알싸하다.
철․규산․염소이온․유리탄산․황산이온 등의 성분이 들어있어 위장병․신경통․만성 부인병․빈혈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제3폭포 왕복, 8km,
절골 다녀온 거리를 합치면 대략 11km쯤 걸었다.
출발점 동래에 9시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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