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쌍계사, 불일폭포, 평사리 토지길

추연욱 2011. 10. 27. 10:40

 

쌍계사, 불일폭포, 평사리 <토지>길

 

 

쌍계사 주차장, 12시.

 

 

다리를 건너 쌍계사로 들어간다.

 

 

 

"쌍계", "석문"이란 이 글씨는 고운 최치원이 막대기 긑으로 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앞에 서있던 장승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쌍계사 일주문

 

 

금강문

 

 

 

 

 

 

 

 

 

 

 

 

 

 

 

 

 

 

 

 

 

 

 

 

 

 

대웅전

 

 

 

대웅전에서 바라본다.

 앞의 건물이 팔영루이고,

가운데 보이는 석물은 진감국사대공탑비 비머리다.

 

 

 

 

 

 

돈오문

 

 

 

 

 

 

 

 

 

 

이 돈오문으로 들어가면 청학루가 나타난다.

 

 

 

청학루 뒤에 팔상전이 있다.

 

 

 

 

 

 

 

 

 

팔상전 왼쪽으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금당이 나타난다.

 

 

 

금당이 있는 이곳은 상계사가 창건 당시의 주불전이다.

가운데 "금당", 그 좌우로 "육조정상탑", "세계일화조종육엽"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아 탑 안에 중국 선종의 제6조 혜능선사의 정수리 뼈가 들어있다고 한다.

 

 

 

 

 

 

 

 

금당 앞에서 바라본 풍경

 

 

 

 

 

  

 

우리는 불일폭포로 간다.

불일폭포까지 2.3km라 적혀있다.

 

 

 

 

 

 

 

 

 

 

馬足臺는

조일전쟁(1592~1598) 당시 명나라 원군으로 온 이여송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르내릴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불일야영장

11시 50분쯤 도착했다.

불일폭포를 자녀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불일폭포, 12시 5분.

 

 

 

 

 

 

 

 

 

 

 

 

 

 

 

 

 

불일암

 

 

 

 

 

 

 

 

 

 

 

 

 

 

불일암 마당에서 앞을 바라보았다.

 

 

 

불일야영장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는다.

 

 

 

 

 

 

 

 

喚鶴臺는 고운 최치원이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다녀갔다고 한다.

환학대는 고운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고운은 이곳에서 진감선사대공탑비를 지었다고 한다.

 

 

 

국사암 가는 길

 

 

 

 

 

국사암 입구에 있는 보호수, 느릅나무.

1200살이라 한다.

높이는 40m, 둘레는 1,100cm라 적은 표지만이 있다.

 

 

 

국사암

 

 

 

 

 

국사암 배롱나무

 

 

 

 

 

 

쌍계사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평사리 최참판댁으로 간다.

 

 

 

 

평사리 공원, 3시 10분

 

 

 

 

 

 

 

 

 

 

 

 

 

 

부부소나무

 

 

 

 

 

 

 

 

 

 

 

 

 

 

 

악양의 동정호

 

 

 

 

 

 

 

 

 

 

 

 

 

 

 

  

 

 

 

 

 

 

 

 

 

 

 

 

 

 

 

 

 

 

 

상평마을보호수 

 

 

 

 

 

이 초가집들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네 소작인들이 사는 집이다.

 

 

 

 

 

최참판댁

 

 

 

최참판댁에서 악양면 소재지쪽으로 2.3㎞쯤 올라간 지리산 형제봉 아래인 정서리 상신마을에 있다.

이 위엄있는 팔작지붕 기와집은 ‘조부자집’으로 불리는 趙漢勝씨의 집이다.

대지 1천여평에 본채 · 문간채 · 행랑채 등이 있는 이 집은 관광객이 최참판댁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는 집이었다.

170년 전에 지은 이 집은 나무를 모두 마을 뒤 지리산에서 구해다 20여명의 목수들이 5년에 걸쳐 지은 집으로 전한다.

전통 한옥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데다 집주인은 바뀌었지만 원 주인의 가족사가 최참판댁과 흡사하다고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