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통도사 암자 순례- 2011년 8월 24일

추연욱 2011. 8. 24. 21:34

 

[부산/ 8월 24일 수요일]통도사 암자 순례- 2011년 8월 24일

 

신평 버스정류소에서 만났다.

 

비주류, 초록맘, 백일봉, 달마루, 수여니, 마술피리, 자리, 마미, yamaggo, 소영이,
미산, 뿌리, 조롱이, 88팔팔, 디디, 가리온, 고인돌, 별사모, 가도가도, 찌릉소,
야호박, 海바라기, 해바라기 동행, bonami, 약수터, 산두리, 플러스, 창밖에비,
렇게 28명입니다.

 

오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그 정도는 비라 할 수도 업는 것이었다.

어제가 처서다. 그런 탓인지 더위로 힘들지는 않았다.

구름에 가렸다 나타나곤 하는 영축산 능선을 바라보는 눈맛도 참 좋았다.

 

 

 

오늘

박정희 시/ 한상석 곡

옥상훈/ ten.

 
http://cafe983.daum.net/_c21_/home?grpid=tFrV


 

 

통도사 산문

 

 

 

 

 

 

출발, 10시 25분.

 

 

■ 관음암, 10시 30분.

 

 

 

 

 

 

■ 축서암, 10시 50분.

 

 

 

 

 

 

 

 

무력각간의 무덤

석주 같은 비에 "駕洛國王子羅角刊 金武力公之墓"라 쓰여있다.

문인석은 조선시대 만든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23 법흥왕 19년(532) 조에,

 

“금관국(금관가야)왕 金仇亥(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제10대 仇衡王, 521~532 )가 비 桂花夫人과 세 아들 곧 장남 노종, 둘째 아들 무덕, 셋째 아들 武力과 더불어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은 이를 예로써 대우하고 上等의 벼슬을 주고, 본국을 그의 食邑으로 하였는데, 그 아들 무력은 벼슬이 角干에 이르렀다.”

 

김유신(595-673)의 할아버지 武力은 新州都行軍摠管이 되었다.

<단양적성비>에 따르면 554년에 그는 관산성(충북 옥천 일대)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이때 백제 제26대 성왕(523~554)과 佐平 4명, 병졸 2만 9,600명이 모조리 죽음을 당하였다.

그 공으로 신주(경기도 광주)의 군수가 된다.

 

무력은 신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으나 경주 출신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했다.

그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였다. 이 전쟁의 공로로 무력은 지위를 단단히 굳혔고,

그의 손자 유신의 출세도 보장받았다.

 

무력의 아들 곧 김유신의 아버지 舒玄은 벼슬이 蘇判, 大梁州(합천)都督, 安撫大梁州諸軍事에 이르렀다.

부인 곧 김유신의 어머니는 萬明夫人이다.

만명의 증조할아버지는 제22대 智證麻立干(500~514 재위),

할아버지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立宗葛文王, 아버지는 肅訖宗이다.

 

 

■ 반야암

 

 

■ 비로암, 12시 10분. 

 

 

 

 

 

 

 

 

 


 

영축산에서 뻗어내린 낙동정맥을 바라보고, 

 

 

 

 

 

 

■ 극락암

극락영지와 극락교, 12시 20분.

 

 

밥부터 먹고.

 

 

 

 

 

 

 

 

 

 

 

 

 

 

 

 

 

 

 

■ 금수암, 1시 40분.

 

 

 

 

 

■ 서축암, 1시 50분.

 

 

기억하기 좋다. 다보탑이 있는 절이 서축암이다.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영축산 정상이다. 

 

 

통도8경의 하나인 자장동천

 

 

 

자장암으로 올라가는 계단 

 

 

자장암, 2시. 

  

 

 

 

 

 

 

 자장암마애불

 

시계꽃

 

 

 

 

자장암 뒷로 간다. 12시 15분.

스님들이 다니는 그윽한 오솔길이다.  

 

 

 

■ 사명암, 2시 30분.

조일전쟁(1592~1598)이 일어나기  한 20년쯤 전부터 四溟堂 松雲대사(1544~1610)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통도사 금강계단에 모신 부처님의 사리를 지킨 곳이다.

선조 6년(1573) 爾己, 信伯 두 스님이 사명당을 흠모해서 이곳에 절을 짓고 수행했다 한다.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영각,

언제나 잠겨있다. 

 

 

 

 

 

 

"無作亭"에 올라 쉬었다. 바라보는 전망이 이렇게 좋을 수가.

무작정정 쉬지 못해 아쉬웠다.

 

 

 

 

 

 

 

 

■ 白蓮舍, 3시.

 

이름을 "○○寺, ○○庵"이라하지 않고 "白蓮舍"라 했다.

부처님 당시 인도의 "죽림정사나 기원정사"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백련사는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선원이었다.

 

큰 은행나무가 있는 절이 백련사다.

 

 

 

 

 

 

 

 

 

 

 ■ 옥련암, 3시 15분.

 

옥련암에는 예로부터 마시면 힘이 아주 세어지는 장군수가 있었다 한다.

이 물을 늘 마시는 옥련암 스님들은 힘이 매우 세어 큰절의 스님들이 언제나 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큰 절 스님들이 의논하여 가만히 장군샘을 메우고 물길을 딴데로 돌려버렸다.

그후부터는 옥련사에 힘센 스님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큰 빛의 집", 大光明殿이다.

 

 

 ■ 서운암, 3시 35분.

 

 

 

 

 

 

서운암 천불전

 

 

 

 

 

 

 

 

 ■ 수도암, 3시 35분. 

 

 

 

 


 

 

 

■ 취운암, 4시 10분.

조선 효종 원년(1650)에 처음 지었다.

이때 통도사 대웅전을 짓고 남은 돈으로 지었다 한다.

 

법당은 지금 수리중이다.

 

 

 

 

통도사에는 현재 암자 19개가 딸려있다. 그 중

관음암 · 축서암 · 반야암 · 비로암 · 극락암 · 금수암 · 자장암 · 사명암 · 白蓮舍 · 옥련암 ·

서운암 · 수도암 · 취운암 등 13개 암자를 순례했다.

 

 ■ 오층석탑 

 

 

 

일승교를 건너 통도사 큰절로 간다.

 

 

半月三星橋

"半月三星"은 마음 "心"자다.

 

 

통도사 천왕문

 

 

가람각

 

 

 

 

 

불이문

"불이문" 현판 아래  "源宗第一大伽籃"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으므로 "源宗 종교의 근원이요 으뜸이다"라 한 것 같다.

 

"不二, 모든 진리는 하나다",

불이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곳을 들어서면 부처님의 세계다.

 

 

가운데 건물이 대웅보전이다. 

 

 

개산조당, 開山祖는 자장율사다.

 

 

용화전 앞의 봉발탑

 

 

영산전

 

 

 

 

일주문 

 

당간지주

 

 

 

 

 

하마비

여기서는 누구나 말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통도천에 발을 씼고,

 

 

 

 

 

통도산문, 5시 10분.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5시 35분 출발 부산가는 직행버스를 타러간다.

 

헤어질 인사를 나눌 때를 놓쳐버려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다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함께 해주신 벗님들을 보살피지 못했다.

거기다가 제 앞도 다스리지 못하는 함량미달의 진행자가 되어버렸다.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고 크게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