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남강 둘레길/ 영남방 8월 정기도보- 2011년 8월 21일

추연욱 2011. 8. 22. 09:24

 

 

남강 둘레길/ 영남방 8월 정기도보- 2011년 8월 21일

 

論介夫人(1574~1593) 사당 義妓祠로 들어가는 指水門.

 

 

논개부인의 사당 의기사

  

 

 창방에 黃玹(1855~1910)의 시

<義妓祠感吟>을 쓴 현판이 걸려있다.

  

 

楓川渡口水猶香 풍천나루의 강물은 아직도 향기로워,

濯我須眉拜義娘 내 여기 얼굴 씻고 의랑에게 절하노라.

蕙質何由能殺賊 아리따운 자질로 적을 어이 죽였을까.

藁砧已自使編行 초가집 아낙으로 의사대열 끼였다네.

長溪父老誇鄕産 장계땅 늙은이들 고향 출신 자랑하고,

矗石丹靑祭國상 촉석루 단청 아래 나라 술잔 내렸다네.

追想穆陵人物盛 미루어 생각하면 인물이 많다 하지만,

千秋妓籍一輝光 천추에 기적에 홀로 찬란히 빛나도다.

 

 

사당 안에는 논개부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1960년, 논개부인의 영정으로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를 봉안했다.

그러다가 김은호의 친일 경력이 문제가 되자 1993년 시민단체에서 폐출령 청원서를 냈다.

1997년 5월 진주시 의회에서 투표를 했는데, 찬성 9, 반대 24로 무산되었다.

2005년 다시 시민단체에서 철거했다.

2008년 5월 윤여환 교수가그린 현재의 영정을 모셨다.

 

아주 잘 한 일이다. 

우리는 친일파 작곡가가 작곡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친일파 시인, 소설가의 시와 소설을 읽을 수는 있어도 친일파 화가가 그린 논개부인의 영정은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義妓祠"란 현판은 이제 내려야 한다. 논개부인은 기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일전쟁 당시 그녀의 남편 최경회는 정2품 당상관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였다.

최경회는 부인이 돌아가자 그녀를 후실로 맞았다. 그러니 논개부인은 최경회의 첩실이 아니다.

사대부가의 부인이다.

 

논개부인 이야기는 柳夢寅(1559~1623)의 <어유야담>에 처음 나온다. 논개부인이 순절한지 한 세대쯤 지난 뒤이다. <어우야담>은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해서 기록한 "야담"이다.

이 책에서 논개부인을 기생이라 했으니, 항간에는 그 이전부터 기생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논개부인의 시집에서는 이미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대부집 며느리가 외간 남정네의 술자리에, 그것도 왜병의 술잔치에 나아가 술을 따르고 함께 마신 것을 부끄러워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우리 가문의 며느리가 아니고 기녀였다고 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오로지 성리학의 가르침만이 진리인 줄 알고, 다른 어떤 사상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사고로는 논개부인에 대한 인식수준이 겨우 여기까지밖에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기생은 중, 노비, 무당, 광대, 등과 함께 八賤의 하나다.

이들에게는 국방의 의무도 없다. 없을 뿐 아니라 나라 생각 그 자체가 불경이다.

기생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이야기는 사대부들이 코웃음 칠 일이다.

 

그러다가 1700년대 초에 이르러 논개부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논개부인이 기녀가 아님이 세상에 알려졌다. 

 

기녀면 또 어떻랴. 세상에 천대만 받고 살아온 기녀가 나라를 위해, 혹은 사랑하는 이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던졌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는가.

논개부인이 기녀가 아니라는 사실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일 뿐,

왜장을 껴안고 남강 푸른 물에 뛰어든 여인이 기녀든 귀부인이든 그 아름다움이 어찌 달라질 수 있겠는가.

 

다만, 그 엄청난 일이, 한 여인이 한 일이기에, 또 기녀라 폄하된 어떤 여인이 한  일이기에 그녀의 아름다운 행적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사진/ 바람

 

 

  

 

강을 건넌 곳 봉우리에 진주성 서장대가 보인다.

 

 

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서문으로 들어간다.

 

 

 

 

 

월영산호국사

 

이 절은 고려 말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진주성을 수축하고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지어 내성사라 했다.

    조일전쟁 때는 승군의 본거지였다.  

  조일전쟁이 끝난 뒤 성과 함께 전사한 승병들의 공적을 찬양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숙종이 호국사란 이름을 내리고 다시 세웠다.

 

 

 

 

 

 

성곽을 따라 계단을 오르면 먼저 서장대에 이른다.

저 아래 뚝 떨어진 곳에 남강 물줄기가 시원스레 흘러간다.

 

 

촉석루로 가는 길

 

 

 국립진주박물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만 보았다.

이 불상대좌는 陜川 竹竹里 절터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雙忠閣

이 비각 안에 쌍충사적비가 있다.

조일전쟁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순국한 諸沫장군과 그의 조카 諸弘祿장군의 비다.

제말장군은 곽제우장군과, 제홍록은 이순신장군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비각을 부수고 버려둔 것을 196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촉석루

건물 안에 '남장대'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우리는 9시에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강변으로 갔다.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은 어디 갔는가.

물빛이 탁하다.

 

 

 

 

 

10시쯤  해서 시작했다.

왼쪽은 남강, 오른쪽은 댓숲 우거진 강변길을 따라 걷는다.

 

 

 

 

 

 남부산림연구소.

이 안으로 들어간다.

 

 

 

 

 

 

 

 

 

 

 

 

 

청풍길, 대나무숲길을 차례로 지나왔다.

아담한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았다.

 

 

 

 

 

 

 

 


 

 

휴먼빌이라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왔다.

해바라기 씨는 죽더기다.

 

 

다리 아래로 간다.

사나워 보이는 염소 한 마리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눈길을 피한다.

오늘 처음 나는 슬퍼졌다.   

 

 

 

12시 30분이다. 물박물관에서 점심을 먹는단다.

3.2km 남았다. 

 

 

 

 

 

진양호가 보인다. 

 

 

 

 

 

 

 

물박물관 마당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2시가 되었다.

 

 

 

호수 기슭에는 쓰레기가 떠있다.

 

 

 

 

 

 

 

 

 

 

진양댐 바로 아래 있는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돈다.

습지원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강을 끼고 걷는다.

 

 

 

 

저 위에 진양댐이 보인다.

 

 

 

 

 

 

 

 

 

 

 

 

 

 

 

 

 

 

 

 

 

 

 

 

 

 

 

 

 

 

 

진주성 서장대가 보인다. 4시 50분이다.

다리를 건너 진주성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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