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대비사에서 운문사 가는 신라 옛길- 2011년 8월 3일

추연욱 2011. 8. 3. 20:30

 

대비사에서 운문사 가는 신라 옛길- 2011년 8월 3일

 

 

 

 

박곡리석조석여래좌상(보물 제203호)


  석조석가여래좌상을 모신 작은 집 앞에 이런 삼층석탑이 있다.

하층기단, 몸돌 2개, 지붕돌 1개, 상륜부 등은 없어졌다.

 

마당 한 구석에 여래좌상의 광배가 놓여있다.

 

 

"모란이 지고 말면 내 한해는 다 가고 만" 것이 아니고,

그 찬란한 모란이 지면 이렇게 예쁜 씨를 맺는다.

 

 

 

 

 

 

 

대비사 가는 길 

 

대비사 대웅전(보물 제814호)

 

삼성각으로 가는 예쁜 돌층계

 

 

 


 

 

 

 

부도밭으로 간다. 

 

  

  天眞寶塔碑

대비사 천연암벽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불기 2554년 晩秋"에 세웠다고 적었다.

금년이 불기 2555년이니, 천진보탑은 2010년에 세웠다.

비 오른쪽에 시주자 이름이 빽빽이 적혀있다.

 

이곳의 부도들은 대부분 석종형이다.

장식이 없고 소박하다.

대비사에서는 가장 고풍스러운 분위기다.


 

 

 

"옛 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의 소리여."

松尾芭蕉(1644~1694)의 俳句

 

 


 

   

  

절 구경을 하고 나와 오늘 도보 진입로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줄곳 차로 움직였다. 

 

다른 길도 바라보았다. 

 

 

여기서부터 도보를 시작한다.

운문사로 가는 옛길이다. 11시 15분.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산 중턱에서 대비지를 내려다 보았다.

   

 

 

억산이 구름에 가려있다.

 

 

 

 

 

이 길에는 무덤이 여러 기 있었다.

이런 무덤도 있다.

 비제에 "老職正憲大夫行同知中樞府事孫公之墓"라 썼다.

"老職"이란 80세 이상이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1계급을 제수하였는데,

원래 官階가 있는 사람에게는 1계급을 올리고, 堂上官인 경우에는 御命에 따라 올려 주었다.

"知中樞府事"는 정2품 武官직이다.

 

 

 

  돌무지는 아마 서낭당일 것이다.

고개를 넘는 나그네들은 이곳에 돌 하나를 올리고, 여행의 안전을 빌었을 것이다.

 

 

 

<부산일보>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우 리가 지나온 길 오른쪽 가파른 길로 이어져 있다.

 

 

 

 

우리는 고갯마루에 올랐다.

여기는 4거리다.

여기에도 서낭당이 있다.

 

   

   

 

우리는 서낭낭당이 있는 곳에서 왼쪽길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역시 마우 가파르다.

그러나 지그재그가 엄청 많아 그런대로 걸을 만했다. 

 

지난 폭우에 이렇게 자갈돌이 밀려온 것 같다.

 

이런 풀밭도 있고,

 

호거산?

 

 

 

다 려왔다.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운문사 솔밭이 나오고 경내로 들어간다.

 

 

 

 

운문사 숲길 가에 이런 정자가 있었다.

점심, 1시 조금 지났다.

 

 

 

 

정자 옆에 배롱나무꽃.

 

 

운문사로 간다.

 

 

 


 

찻길을 피해 계곡쪽으로 길을 만들었다.

이 길을 "솔바람길"이라 했다.

 

 

찻길 가에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비가 있다. "화랑오계비"라 했다. 

 

 

운문사

 범종루가 정문이다.

 

범종루 밑으로 들어간다.

절 옆구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들어가면 오른쪽에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

 

 


 

왼쪽에 이렇게 흰배롱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대웅보전

1994년에 지었다.

 절집이 엄청 크다. 앞면이 7칸, 옆면이 5이다.

 

안에는 삼세불을 모셨다.

 바라보아 왼쪽에 미래불 미륵, 가운에 현재불 석가모니, 오른쪽에 과거불 연등불,

그리고 협시보살 4분을 모셨다.

사진은 <다음 카페 향기로운 불교>에서 빌렸다.

 

 

篆香閣은 본디 법당에 향공양을 담당하는 스님이 거처하는 곳이다.

 

 

희한하게도 운문사에는 대웅보전(보물  제835호)이 또 있다.

정면 측면 각각 3칸이지만 그 규모가 5칸 건물과 맞먹는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에는 이 비로전을 대웅보전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도 비로전이란 편액이 걸려있었다.

 

우리나라 절 대웅전에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경우는 더러 있다. 비로전에 항마촉지인 석가여래를 모시기도 한다.

석가보살은 여래가 되는 순간 여래는 진리 그 자체가 되어 바이로차나[光名遍照]라는 진리 그 자체가 되어,

진리의 빛 곧 법신이 되어 석가여래와 비로자나여래는 不二가 된다.

그래도 비로전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안에는 비로자나불을 독존으로 모셨다.

 

 오른쪽에 벽에 붓다 탄생과 관련된 구룡토수설화를 그렸다. 

 

 

■ 대웅보전(옛 비로전) 앞 삼층석탑 2기(보물 제678호) 


불이문

이곳이 본디 운문사의 정문이다.

이 안쪽은 곧 남쪽 구역에는 승가대학, 강의실, 숙소, 도서관, 공양간 등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절의 정문을 범종루 밑으로 냈다.

절의 배치가 완전히 뒤틀어졌다.

 

운문사는 남북 두 구역으로 나누어져 돌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 돌담 가운데 불이문이 있다.

북쪽구역에는 크고작은 법당들이 유기적 관련 없이 널려있다.

본래 입구는 남쪽의 해탈문이었으나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러므로 해탈문을 지나 불이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가는 길이 막혀 버렸다.

따라서 출입구를 동쪽 범종루 밑으로 내었다. 

 

 

작압전

작압전은 불이문을 들어가 바로 왼쪽에 있는 조그마한 한칸 집이다. 원래 금당 석등 앞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작압전은 1941년에 지었다.

 

"鵲鴨(작압)"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까치와 오리'다.

지금은 鵲鴨이라 불리고 있으나 '오리'는 이 절과 아무 관계없다. 鵲岬(작갑)이 鵲鴨으로 잘못 불렸을 것이다.

 

'까치'와는 관계있다.

보양선사가 절을 중창할 때 "까치가 땅을 쪼고 있는 곳" 곧 '鵲岬'에 절을 지었다. 

일연스님의 설명에 따르면 '岬'은 속언으로 '古戶(곳)'라 하여 바로 '까치가 땅을 쪼는 곳'이다.

 

편액에 "庚戌八月 日"이란 문구가 있다.

보양선사가 세운 5층정중탑은 1718년 이전에 원형을 잃고 일부만 남아 喚鵲臺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그뒤 어느땐가 탑과 목조건축의 절충형태인 작압전으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작압전은 1718년과 1941년 사이 경술년 곧 1730년, 1790, 1850, 1910년 중 어느 한 해일 것이다.

그러다가 1941년 지금의 작압전을 지으면서 탑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목조건물이 되었을 것이다.

현판은 작압전의 현판을 그대로 썼을 것이다. 

  

촉지항마인을 갖춘 석조 석가모니불(보물 제317호)을 보셨다.

 

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


 관음전

 

촉지항마인을 갖춘 석가모니불이다.

또한 부처님이 보관을 썼고, 보관에 화불도 있다.

그런 점에서는 관세음보살이기도 하다.

 

관음전 불상은 작압전 석불과 이어져 있다.

 작압전 석불은 석가보살이 여래로 되는 첫 순간을 표현한 것이며,

관음전 목불은 정각을 이룬 여래 곧 자비심을 내어 관음보살로 되려하는 첫 순간을 표현했다.

 

뒤에는 <화엄경>에 묘사된 보타락카 산 위에 관음보살과 그에게서 설법을 듣는 선재동자가 그려져 있다.

 

 

만세루

정면 7칸에 측면은 4칸이다. 평면에 164평이나 된다.

 

 

 

명부전

 

 삼성각

 

 

 비각

가운데 원응국사비(보물 제361호)와 좌우에 설송대사비, 운문사중수기념비가 나란히 서있다.

 

비각 옆에 이런 탑의 부재들을 모아두었다. 

 

 

절에서 나왔다. 

 

 

 운문산 쪽 돌담장을 바라보았다.

 

 

'솔바람길'을 따라 나온다.

 

 

 

 

 

 

 

 

 

 

 

 

차를 타고 삼계리 계곡으로 간다. 2시 50분.

 

 

삼계리, 3시 20분. 

 

 

지금부터 물놀이

 

 

 

 

 

 

 

도보를 마치고 이곳에 오니 비가 왔다.

오다가 말다가,

 

소나기도 맞았다.

 

 

 

 

 

산도 한 번 바라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4시 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