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금정산성 성곽따라 1 남부- 2011년 7월 13일

추연욱 2011. 7. 13. 23:31

 

금정산성 성곽따라 1 남부- 2011년 7월 13일

-가랑비 속에, 소나기 속에, 안개 속에, 구름 속에-

 

자리, 미산, 뿌리, 돌하, 호미길, 비주류, 찌릉소, 유동, 비나리, bonami,

조아해, 약수터, 민우, 유심초, 혜미니, 달마루, 이렇게 16명이 함께 했다.

 

 

동문에서 만났다.

 

 

출발에 앞서, 9시 40분.

 

 

성곽 따라 북쪽으로 간다.

 

 

 

 

나비암으로

 

 

제3망루, 10시 24분.

 

 

 

이 능선에 바라보는 빼어난 엄벽들, 나비암, 부채바위, 무명암 등은 안개 속에 흐릿하다.

"성곽 따라 2(북부)"를 기대한다.

 

동자바위

 

 

무명안부, 10시 45분.

 

 

제4망루, 10시 50분.

 

 

여기서 왼쪽, 거의 직각으로 꺽어 중성을 따라간다.

 

 

장대, 11시 25분. 

 

 

 

 

 

 

임도, 11시 35분.

 

 

국청사 앞, 11시 50분.

 

 

 

다시 동문, 12시 10분.

여기서 민우님과 만났다.

 

 

성곽을 따라 남문으로 간다.

 

 

 

 

동문고개 위로 성곽이 복원되어 있다. 12시 25분.

 

 

 

 

 


 

 

 

 

대륙봉(520m)

평평바위, 12시 45분. 

 

 

 


 

제2망루

 점심, 1시 10분.

공간은 좁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있다. 앉지도 못하고 서서 먹었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 비를 피할 수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

 

 

 

출발, 1시 30분.

 

 

남문, 1시 45분. 

 

여기서 1차 해산한다.

 

 

bonami, 돌하, 민우, 혜미니, 자리, 달마루,

아렇게 6명은 남은 일정을 완수하기로 했다.

좀 용감하거나, 골이 비었거나, 요즘 말로 개념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좀 편한 길, 수박샘길로

상계봉으로 간다.

 

 

 

 

제1망루터(638m), 2시 15분.

금정산성 4개의 망루를 모두 지났다.

이곳에 서면 북쪽 금정산 주능선과 낙동강, 화명 등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안개로 모든 것이 흐릿하다.  

  

 

 

 

 

 

상계봉(640m), 2시 25분.

 

 

이 산 정상의 모습이 닭을 닮았다고 해서 上鷄峰이라고 하고,

이 근처에서 가장 높아 새벽이 가장 먼저 온다는 뜻으로 닭계자(鷄)를 붙여 상계봉이라고 한다.

 

 

 

 

 

 

 

 

 

 

 

파리봉(615m), 3시 10분.

고맙게도 정상석에 "파리봉"이라 쓰고,

"玻璃"란 말에 대한 설명도 적었다.

 

'派留峰'이란 기록도 있다. <항도부산> 제7호(1969)에,

“죽전 부락 전방 산봉이 파류봉이다. 別將이 派軍하였던 것이다. 지금은 망미루라는 누각은 없어지고 기와 조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옛날 어느때 별장이 이곳에 있는 망마루에 파견되어 군사 업무를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망미루는 지금 금강공원 입구에 있는 망미루와은 다를 것이다.

최화수, <금정산의 재발견>, 국제신문, 1995. 240쪽.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전부터 이 봉우리 이름은 있었을 것이고, 근처 마을 사람들은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玻璃는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꾸미고 있는 7가지 보석이다.

경전에 따라 다른 것도 있지만 <무량수경>에서는 금 · 은 · 유리 · 파리 · 마노 · 거거 · 산호를 들고 있다.

파리는 水晶이다.

햇빛이 잘 비치는 날 산 아래에서 바라보면 바위 봉우리가 수정처럼 영롱하게 빛나 이런 이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정상주

막걸리, 단술, 참외 등

잠깐 구름이 걷혔다.

 

 

파리봉을 빼어난 암봉들이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부터 암벽을 타고 내려간다.

 

 

 

 

 

 

 

 

 

 

 

 

 

 

 

 

 

 

 

조심조심 내려왔다.

우리가 그렇게 필요 이상 용감한 것도 아니고, 골빈당도 아니고, 개념 없는 사람들은 물론 아니다.

모두들 그렇게 다닌다.

다만 물먹을 바위가 좀 미끄러울 뿐이다.

 

 

 

 4시 30분.

찻길에 내려섰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파리봉이다. 

 

 

서문까지 갈 길이 남았다.

 

화살표 방향으로 몇 발 더 가면 무덤, 무덤에서 오른족으로 간다.

 

 

화명에서 금성마을로 가는 차도, 5시 10분.

 

 

긴 여정의 종점

▪ 서문, 5시 15분. 

 

 

 

이런 설명이 있다.

 

금정산성 서문(사적 제215호)-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 4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계곡에 세워졌다.

서문의 초루와 ㄷ자 모양으로 조성한 성곽의 모습은 견고하고 아름답게 지어졌으며 낙동강과 구포, 김해방면으로 왕래한 성문이다.

서문은 홍예식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문루 건물이며, 좌우에는 폭 4m, 길이 5m, 높이 5m 규모의 敵臺와 여장이 복원되어 있다. 서문 북측 대천천의 수문은 교량식 홍예형으로 촉이 약 250cm, 높이 약 300cm 규모의 수구(폭 약 230cm) 3개로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 수문은 금정산서에서 유일한 것으로 천연요새인 협곡에 서문과 수문을 만들었던 선저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동래부사 정현덕(1867~1874)이 서문과 동문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 때 이야기가 있다.

그는 성문을 아주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이 두 석공을 찾아 스승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스승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이 앞서 정교한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 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찻길을 걸어 올라 이곳 금성동 버스 종점으로 왔다. 5시 55분.

여기서 버스를 타고 온천장으로 간다.

 

 

여기까지 함께해 주신 5 벗님,

존경하는 bonami님을 비롯하여 돌하, 민우, 혜미니, 자리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2차 자리표 저녁은 멋있고도 맛있었다.

3차 돌하표 입가심은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였다.

 

오늘 14.6km를 걸었다.

 9시 48분부터 5시 13분까지 7시간 25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