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2011년 5월 18일
5·18 31주년, 그날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봄날은 간다.
우리 또한 가는 봄을 보내야 한다.
미산, 뿌리, 초록맘, 자리, 마술피리, bonami, 돌하, 민우, Lrㅂr론, 디디,
새벽거인, 백일봉, 하이파이브, 호미길,
울산의 태화나루, 태화나루 동행, 그리고 나 달마루.
모두 17명이 참가했다.
10시 10분 대석 홍룡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다.
어쩔 수 없이 햇볕을 이고 팍팍한 포장길을 걷는다.
홍룡사에서,
절구경
홍룡폭포 구경
|
||
여기서 본디 계획을 수정하여 원효암은 포기하고,
능선길을 따라 화엄벌로 간다.
화엄벌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화엄벌 조금 못 미처 점심을 먹는다.
화엄벌
꽃 속에 노닐다.
|
| ||
|
| ||
|
| ||
|
| ||
|
| ||
전망대
미티암과 천성산제2봉 갈림길
꽃은 그렇게 떠난다.
미타암
|
|
미타암 대웅전
대웅전 꽃창살
|
|
미타굴
미타암을 뒤로 하고 내려간다.
주진저수지
'나들목'이란 곳에서 신을 털고,
신명초등학교
여기서 몇 걸음만 가면 50번 버스 종점이다.
50번 버스 종점에서
5시 50분에 출발했다.
양산미타암석아미타불입상(보물 제998호)
<삼국유사> 제5권 피은 제8, 布川山 5비구 경덕왕대 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있다.
삽량주(양산)의 동북쪽 20리가량 되는 곳에 포천산이 있는데, 석굴이 기이하고 빼어나 마치 사람이 깎아 만든 것 같았다. 성명이 자세치 않은 다섯 비구가 있었는데 여기에 와 아미타불을 외면서 서방정토를 구하기 몇십 년에 홀연히 聖衆이 서쪽으로부터 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이에 각각 다섯 비구가 연화대에 앉아 하늘로 날아 올라가다가 통도사 문밖에 이르러 머물러 있었는데 하늘의 음악이 간간이 들려왔다. 절의 중이 나와보니 다섯 비구는 無常苦空의 이치를 설명하고 유해를 벗어버리더니 큰 광명을 내비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유해를 버린 곳에 절의 중이 정자를 짓고 이름을 置屢라 했으니, 지금도 남아있다.
무상고공- 이 세상의 사물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핍박하여 괴롭게 함으로 苦다.
만유는 모두 인연의 화합으로 생기는 것이어서 하나도 실체나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空이다.
만유는 인연이 흩어지면 문득 없어지므로 無常이다.
무상고공은 곧 無我라는 뜻이다.
다섯 비구의 사연이 지금도 대웅전 주련에 5언2구로 쓰여있다.
"昔往五比丘 今日猶模範 옛 다섯비구 지금도 오히려 모범이 되네."
미타암 석굴은 <삼국유사>의 기록처럼 서방극락세계로 날아간 다섯 비구가 수도하던 석굴로 추정되며,
뒤에 그 석굴에 아미타불입상을 봉안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예경출판사, <국보> 증보 1권, 1990. 에서 인용
현재의 모습
이 불상은 천연암굴에 봉안되어 있다.
암굴은 입구 지름이 약 2.6m, 입구에서 약 9m 되는 곳에 네 층계를 마련하여 불단을 만들었으며, 그 위에 약 3.4m의 굴이 이어져 있다.
지금은 천연암벽을 다른 재질로 덮었고, 불상 좌우에 두 보살상과 앞에 여러 작은 불상을 안치하였다.
불상은 오랜 세월 이 굴 안에서 비와 이슬을 맞지 않은 탓으로 이처럼 아직도 순백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1.49m, 광배를 포함한 전체의 높이는 2.0m이다.
광배와 상, 대좌를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나발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양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고, 백호는 없다.
통견의 법의는 圓弧를 그리며 양어깨로부터 부드럽게 온몸을 감쌌으며, 양팔에 걸쳐 내려진 옷의 끝자락은 양 옆으로 펼쳐 있고, 가슴에는 군의를 동여맨 매듭이 있다.
수인은 왼손을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보이게 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을 붙인 설법인을 하고있다.
듬직한 발가락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광배는 주형거신광으로 2중원을 안팎으로 둘을 새겨 두광을 표시하였다. 두광에는 중판연화문을 새겼고, 안팎 두개의 2중원 사이에는 자방이 있는 4옆문을 새겼다.
광배 주연에는 구름무늬와 불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대좌는 4각형 하대석 위에 원형연화대좌를 놓았다.
하나의 돌로 불상은 만든 예로는 감산사 석조 아미타 · 미륵불입상을 들 수있다.
미타암석아미타불입상은 입상 · 광배 · 손갇춤(手印) · 옷무늬 · 등에서 감산사의 아미타불 미륵보살 상과 같다.
감산사 석불에는 '719년'이란 명문이 있어 같은 양식의 이 미타암석아미타불입상의 제작 연대가 8세기 중엽임을 알 수있다.
감산사는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남월산 기슭에 있었다. 지금은 새 감산사가 들어서 있다.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때 감산사터에 옮겨온 이 석불은 뒷면에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명문이 있다.
719년이란 명문과 함께 아미타불, 미륵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불은 전신이 법의로 덮고 그 법의 전체에 물결치는 듯한 옷주름을 새겨 몸의 굴곡을 표현하였다. 이런 점은 기본적으로 인도 굽타미술 양식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형식의 불상을 Udyāna(優塡王)식 불상이라 한다.
양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가슴 위에서 여러 개의 U자형 옷주름을 만들면서 내려오다가 넓적다리 부근에서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 각각 서너 개의 곧은 주름을 형성한 뒤 다시 연속형 U지형을 그리면서 마무리된다.
이러한 옷주름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며 감산사 석불을 전후로 하여 우드야나식 여래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불상 형식은 이후 부분적인 변화를 거치면서 통일신라 불상의 주된 형식으로 자리잡게 된다.
bonami님이 일러 주었다.
"10시 141분 부터 17시 41분까지 7시간 27을 걸었다. 오늘 13.7km를 걸었다 "
국제신문사의 "근교산&그너머 519" 지도를 이용했습니다.
'도보여행 > 인도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선자령 트레킹& 대관령옛길- 2011년 5월 29일 (0) | 2011.05.29 |
|---|---|
| 지리산/ 정령치~ 바래봉- 2011년 5월 25일 (0) | 2011.05.23 |
| 자굴산 임도~ 한우산 철쭉길- 2011년 5월 15일/ 영남 정기도보 (0) | 2011.05.16 |
| 천성산 화엄벌-2011년 5월 11일 (0) | 2011.05.09 |
| 비슬산- 2011년 5월 4일 (0) | 2011.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