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변 개비리길- 2011년 4월 27일
간밤에, 12시가 넘자 천둥소리가 여남 번 났다. 두 번째는 길게 끌었고, 세번 째는 천장에서 울린 듯 났다. 함께 굵은 비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다섯 번째는 비행기가 빨리 지나가는듯 하더니 빗소리가 가늘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오지 않고 온 천지가 회색이었다. 당나라의 시인 孟浩然(689-740)의 시 <春曉>를 읽고 넘어간다. 春眠不覺曉 봄 밤의 잠은 곤하고 어지럽다. 날 샌 줄도 모르고 處處聞啼鳥 어렴풋이 새 소리를 꿈 속인 양 듣는다. 夜來風雨聲 간밤내 비바람 사나왔으니 花落知多少 아마도 꽤 꽃이 졌으리라. 이원섭 번역 박진 전쟁기념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기 어려운 조형물이 있고,
전차도 한 대 있다.
■ 박진 전쟁기념관은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 624에 있다.
이곳은 본디 월상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기념관은 2004년 6월 25일 개관했다.
박진지역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도하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던 북한공산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곳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일거에 38선을 넘어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한강을 넘어 남으로 침공을 계속하였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막지 못하고 후퇴를 계속하다가 개전 40여일이 지난 8월초에는 마침내 낙동강을 끼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더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왜관-상주-영덕을 잇는 전선은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을 연하는 전선은 유엔군이 방어하게 되었다.
당시 북한의 최정예부대인 제4사단이 8월 5일 야간에 이목나루터를 건너, 기습 침투함으로 강변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8월 11일에는 영산면까지 침공당하기도 했으나, 9월 15일까지 일진일퇴의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끝까지 이 진지를 지켰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전세가 역전되어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되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생들이 반공교육 현장학습 온 모양이다.
기념관을 구경하고 길을 나선다.
간밤에 비가 온 탓인가,
鄭知常의 싯구 그대로 "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제방에 풀빛이 푸르니"다.
사진/ 자리
■ 박진교- 경남 창녕군 남지읍 대곡리와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를 잇는 다리다. 이곳은 옛 박진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박지곡진이 있던 월하리 둔치에서는 4대강 사업에 앞서 실시한 문화재 지표조사에서, 선사시대의 부리형 석기를 비롯한 삼국시대 이래의 질그릇 조각이 흩어져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 물찬제비 생일파티
케이크는 혜미니님이 보냈고, 海바리기님은 찌그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여기까지 운반했다.
먹기는 주인공 보다 내가 더 많이 먹었고.
창아지
■ 개비리길에 들어선다.
* 점심 먹고,
* 경치를 즐기다.
* 출발
* 귀곡산장 입구
* 귀곡산장
■ 남강이 낙동강에 드는 용산마을
지도에도 없는 다리가 하나 보인다.
알고보니 준설한 모래를 옮기기 위해 임시로 만든 다리다.
다리 위로 분주하게 트럭이 오간다.
2009년 7월 2일 사진
2010년 6월 9일 사진
사막이 하나 생겼다.
황사 아닌 모래 먼지가 뿌옇다.
무슨 시설을 하는지? 포대기에 든 물건은 벽돌인 것 같다.
박진 전쟁 기념관부터 남지철교까지 걷는 동안 강변은 내내 이런 공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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