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회룡포/ 기차여행 - 2011년 4월 17일

추연욱 2011. 4. 18. 09:09

 

회룡포

 

부산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김천까지 경부선, 김천부터 이곳 용궁까지 경북선을 타고 4시간을 달려왔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읍부리 용궁역.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용궁역에는 역무원이 없다. 드나드는 사람도 별로 없어 역무원이 필요없는 모양이다.

우리 인도행 팀 37명이 와서 잠깐 시끌벅적했다.

 

 

 

龍宮,

심청은 이곳을 떠났다.

그녀는 이곳의 초월적인 삶을 포기하고 연꽃으로 화생하여 속세로 갔다.

그녀의 아버지 심학규, 딸을 잃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가가 뺑덕어미에게 "사랑에 속고 돈에 울었다."

심청은 그 아버지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

심청의 아버지의 삶이 어찌 그만이 삶의 모습이겠는가. 바로 우리 인간들의 삶이다.

그래서 심청은 인간 구제의 상징이다.

 

 

이곳에는 아내를 잃은 용왕이 외로이 늙어가고 있다. 

용왕이라 해도 마음대로 물을 다스릴 수 없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곳이 어떻게 피폐한 모습으로 변할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래서 이곳의 아름다운 모습을 오롯이 가슴에 담아두어야 한다. 

이것이 이곳을 찾는 이유다. 

 

 

 

 

 

 

시골마을 읍부리 중심가를 지난다.

이제부터 장안사까지 도로를 걸어야 한다.

 

 

 

 

 

 

 

용궁향교

 

향교 앞에이런 아담한 정자가 있다.

 

 

향교 앞에 있는 설명을 옮겨 적는다.

 

용궁향고(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10호)-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이 향교는 옛 용궁현의 뛰어난 인제를 모아서 학문을 연구키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조선 태조 7년(1398) 현위치에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처음 세워졌으며, 정종 2년(1400) 불타 없어졌던 것을 중종 7년(1512) 이곳에 복원했으나 선조 25년(1592) 다시 불타버렸다.

그후 선조 36년(160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인조 14년(1636)에 세심루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래 명륜당 앞에는 동서재가 있었으나 동재만 남아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향교에는 공문 5성위를 비롯하여 송 4현 및 국내 18현 등 27위를 성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봄, 가을에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 용궁향교 大至門

 

* 용궁향고 세심루

 

* 용궁향교 명륜당

 

 

 

 

 

 

 

 

 

라일락도 금년 봄 처음 보았다. 

 

 

 

 

 

 

 

 

장안사로 오른다. 가파른 길, 이곳은 벚꽃이 한창이다.

 

 

장안사 범종각

 

 

 

李奎報(1168~1241)는 이런 시를 썼다.

 

長安寺

 

圖山聊得滌鹿襟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況遇高僧支道林 하물며 고승 支道林을 만났음이랴.

長劍遠遊孤客思 긴 칼 차고 멀리 나갈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一杯相笑故人心 한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天晴舍北溪雲散 맑게 갠 절 북쪽 시내에는 구름이 흩어지고

月落城西竹霧深 달이 지는 성 서쪽 대나무 숲에는 안개가 깊네.

病度流年空嗜睡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古園松菊夢中尋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작아드네.

 

<東國李相國集>에서

 

전에는 이 시를 돌에 새긴것을 보았는데, 바쁜 탓으로 다시 보지 못했다.

 

이규보가 여기까지 왔을까?  

이 시의 장안사는 이곳이 아니고, 급강산 장안사는 아닐까?

 

그러다가 이래 <낙동강>이란 시를 알았다.

그러니 이규보는 여기에 왔을 것이다.

 

行過 洛東江

 

百轉靑山裏 閑行過洛東 굽이굽이 청산 속 돌고 또 돌아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노라니,

草深猶有路 松靜自無風 풀숲은 우거져도, 길이라 있고 솔바람 고요터니 바람이 잔다.

秋水鴨頭綠 曉霞猩血紅 청둥오리 머린 양 푸른 가을 물 성성이 피빛으로 붉은 아침놀

誰知倦遊客 四海一詩翁 뉘 알랴. 유람에 지친 나그네. 온 누리 떠도는 시인인 줄을.

 

이규보는 1196년, 아직 본격적인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를 뵙기 위해 상주에 갔는데, 그때 낙동강을 유람하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장안사에는 참 재미있는 석등 아닌 석등이 있다.

석등 대석은 화분 받침, 화사석은 장식물이다. 석등의 새로운 역할이다.

 

 

장안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올라 통일대불이 있는 안부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서 점심을 먹었다. 12시 40분이다. 

 

 

비룡산 제1전망대(회룡대). 1시 40분이다.

 

여기서 물돌이 회룡포를 내려다 본다.

 

 

 

 

 

 

여기서 나와 다시 능선을 따라 걸으면, 봉수대가 나온다.

 

  

 

 

 

 

 

곧 비룡대란 현판이 걸린 제2전망대다. 2시.

 

 

 

 

 

 

 

여기서 바라보는 회룡포는 이런 모습이다.

지형도 참 신기하게 생겼다. 

 

여기서 하산한다.

 

내려오면 '흑미깨떡마을'이다.

 

지금은 떡을 만들지 않는지 마을이 텅 비었다.

 

이 마을 앞으로 내성천이 흐르고, 이른바 제2뿅뿅다리가 놓여있다.

 

 

 

 

 

 

내성천변에는 웬만한 해수욕장만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최근 가뭄으로 물은 더욱 빈약해졌다.  

 

 

 

 

 

다리를 건너면 회룡마을 앞 강변도로가 활처럼 아름다운 선으로 펼쳐져 있고, 온갖 꽃과 유실수들이 심어져 있다.

 

 

 

 

그런데 지금은 또 어떤 모습으로 길을 바꾸려는지 공사중이다. 

 

 

제방길 오른쪽에 포근히 감싸인 마을이 회룡포마을이다.

비옥한 논과 밭, 이제 경작 준비를 하고있다. 

 

 

우리가 지나온 강변도로 입구에 "올레길"이라 쓴 작은 돌비가 있다.

'올레길'은 제주도에 있는 줄만 알았는데, 여기도 있다니. 놀랍다.

 

 

 

회룡대라는 표지석이 있는 이곳에서 진짜 뿅뿅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건너면 용주8경 시비가 있다.

龜溪 金榮洛(1831~1906)이란 사람의 시 8편을 비 사방으로 새겼다.

 

 

다시 팍팍한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한다.

 

회룡교를 지난다.

 

 

회룡교에서 강을 내려다 본다.

 

 

 

 

 

 

여기서 용궁역 가는 버스를 탄다. 4시 20분이다.

이곳은 문경↔안동 34번 국도이며, 예천↔용궁 924번 지방도다.

 

 

 

 

 

금방 용궁역이 있는 읍부리에 도착하였다. 돌아가는 기차는 6시 10분에 있다.

시간 여유가 좀 생겼다.

 

ㄴrㅂr론님과, 울산의 바람. 그리고 나 세사람을 시골다방에서 푸근히 앉아 쉬면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졌다.

이 작은 마을에 다방이 5개나 보았다.

그런데 예날에는 흔했던 이름 '정다방'에 들어가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다방을 나와 저녁 먹을 곳을 찾아 용궁시장으로 갔다. 여느 5일장과 다른 것은 없다.

장날이 아닌 탓인지 노점상은 보이지 않고, 사람도 없다.

시장 안에 있는 순대, 오징어불고기 등을 파는 단골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매우 유명한 집이라 한다. 

 

 

저녁들을 먹고 역으로 와 차를 기다리면서 장난도 좀 치면서 놀았다. 

 

 

 

6시 30분에 기차가 왔다.

지금부터 4시간을 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