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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둘레길 1(범어사길) 확인도보- 2011년 2월 6일

추연욱 2011. 2. 6. 23:02

정산둘레길 1(범어사길) 확인도보- 2011년 2월 6일

 

금강공원, 10시.

 

 

 

지나가는 길에 먼저 이영도 시비를 만난다.

시비는 길 오른쪽 어둠침침한 숲속에 있다.





이영도의 시조 3편이 기록되어 있다.



단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한 듯 둘렸다.


석류
다스려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정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처마 끝에 머문다.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흔든다. 






 

 

 

李永道(1916~1976)는 시조시인으로 호는 丁芸이다.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이다.

통일여자중학교의 교사로 있었으며, 남편은 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靑馬 柳致環(1908~1967)은 혼자가 된 그녀를 사랑하여 1946년부터 1966년까지 5천 통이 넘는 사랑의 편지를 보냈다.

청마는 1967년 2월 13일 부산진역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런데, 청마가 죽은 해 6월 이영도는 청마에게서 받은 편지 중 200여 통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청마의 부인이 살아있을 때였다.

 

안 표지에 이영도는 이런 시조를 썼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가신 하늘과 땅

愛慕는 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사랑으로

이주호 곡

볼쇼이 합창단/ 지휘, 루드밀라 예르마코바


http://cafe.daum.net/male-choir/30Cu/91

 

 

 

우리는 독진대아문이란 편액이 걸린 문으로 들어간다.

獨鎭大衙門은 조선 인조 14년(1636) 동래부사 鄭養弼이 세운 삼문이다.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도병마절도 휘하에 있다가,  효종 6년(1655)에 경주 진영에서 독립하여 동래 독진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세운 삼문이다.
본디 동래부 청사 동헌 앞 대문으로 망미루 뒤에 있었는데, 일제가 시가지를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 자리에 옮겼다.



 

 

 

 

금강공원 안에는 비석이 여러 기 있다. 지나가는 길이 보이는 것만 살펴보자. 



 
이 비는 利涉橋碑(부산시 기념물 제33호)다.
이섭교란 물을 편하게 건너게 해 주는 다리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동래에서 수영으로 걸어갈 때,
 지금의 안락동과 연산동을 잇는 연안교에서 동쪽으로 50m쯤 떨어져 있는 온천천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때는 나무다리였다. 비가 오면 잘 떠내려갔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바지랑이를 걷고 옷을 적시며 건너야 했다.
그러다가 숙종 20년(1694) 3개의 아치형으로 돌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를 놓은 것을 기념하는 비다.
본디 다리 옆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 비는 '萊州築城碑'다. 비제에 '萊州築城碑記'라 썼다.



萊州築城碑記(부산시 기념물 제16호)는
조선 영조 11년(1735) 동래부사 鄭彦燮이 세웠다.
조일전쟁으로 파괴된 동래읍성을 수축한 내력을 적었다.
본디 동래성 남문 밖에 있었는데, 일제가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렇게 저렇게 생긴 나무와 바위들을 보며 공원을 산책하듯 지나간다.

 

 

 

 

 

 

 

 

 

 

 

 

 

이 가뭄에도 이렇게 물이 흐른다.

 

 

 

12시 20분, 쉬어가기로 한다.

쉬는 모습이 각양각색, 재미있다.

즐거워한다는 점은 공통이다.

 

 

 

하늘을 한번 쳐다보았다.

 

 

 

목을 축일 샘도 있다.

이 정도로도 "새벽에 토끼가" 감히 세수할 생각은 못할 것이다. 

 

 

 

 

 

 

 

 

 

 

 

 

외국어대학교 운동장에서 점심.

1시가 넘었다.

 

 

 

 

 

 

 

 

 

 

 

 

 

 

 

점심 먹고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상마마을로 간다.

 

 

 

계명암과 계명봉이 보인다.

 

 

 

만성암이다.

 

 

 

오랜 가뭄 탓으로 먼지도 엄청 마셨다.

 

 

 

범어사 등나무 군생지(천연기념물 제176호)는 면적이 5.6ha쯤 된다.

이곳에는 약 500여 그루의 등나무와 서어나무, 때죽나무, 참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등나무는 5월 초 보랏빛 꽃이 핀다.

그래서 이곳을 藤雲谷이라고도 한다. 등꽃이 구름처럼 모여있는 계곡이란 뜻이다.

 

 

 

등나무 군락지 안에 있는 서어나무도 볼 만하다.

 

 

 

 

 

 

 

범어사 경내에 들어왔다.

 

 

불타고 없는 천왕문 자리,

볼때마다 허전하다못해 화가 나기도 한다. 

 

 

이 나무는 옛 입장료 받던 곳에 있다.

 

 

 

아무개 不忘碑, 永世碑 등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엉터리다.

 

 

 

그런 빗돌보다는 비탈에 선 이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훨씬 멋있다. 

 

 

 

 

 

 

이 대나무는 어떻고.

梅蘭菊竹, 군자의  절개가 아니던가. 

 

 

 

 

 

 

 

 

 

 

 

 

 

 

자두농원이 있는 이곳에 양산, 동래경계비가 있다.

 

 

 

 

앞면은 경계표지석, 뒷면은 불망비다.

앞면에, "崇禎十二年乙卯仲冬 梁山 東萊 幷立"이라 썼다.

숭정은 명나라 毅宗의 연호다. 崇禎 12년 乙卯는 1639년이다.

17세기 초 이곳이 동래부와 양산의 경계라는 것을 표시했다.

 

뒷면에는, "京居 嘉善大夫 梁公有夏貽惠 不忘碑"라 썼다.

서울에 사는 가선대부 양유하가 베푼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세운 불망비다.

 

하나의 비석 앞뒤에 성격이 다른 두개의 비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쪽이 본디의 비인지는 몰라도

한쪽이 이미 있는 비를 재활용한 것이다.  

 

지금도 이곳이 부산과 양산의 경계인 모양이다.

이근처 고속도로에 이런 표지가 있다. 

 

 

 

양산시 동면 사송마을이다. 여기서 좀 쉬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만드는지 마을 사람들은 다 떠나고, 멀쩡한 집들이 모두 뜯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는 정적만 감돈다. 

 

 

 

왼쪽으로 금정산 장군봉과 그 북쪽으로 뻗은 능선, 

 

 

앞으로 철마산을 바라보며 가다가, 

 

 

 

동면초등학교 

 

 

 

여기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4시 4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