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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

추연욱 2011. 12. 3. 15:59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울산광역시 언양읍 대곡리 반구동에 있다.

태화강 상류 냇물과 닿아있는 건너각단이라는 절벽에 그려져 있다.

바위그림은 높이 약 70m, 너비 약 20m의 바위벽에서 물에 가까운 아랫부분에 높이 약 2.5m, 너비 약 9m의 규모로 그려져 있다.

바위벽의 위 끝부분이 챙같이 쑥 앞으로 튀어나와 그림이 잘 보존되었을 것이다.

바위의 질은 천전리와 같은 켜바위(shale)로 색깔은 붉은빛을 띤 고동색이다.

적어도 2600년 전 이곳은 바닷물이 들어왔다.

 

 

 

다른 나라 신석기시대의 바위그림들도 대개 물에 가까운 바위(폭포, 호수, 만 등)와 샘물 근처에 많이 그렸다.

또 쑥 내민 바위 아래 바위그림을 그렸다.

 

오랜 세월 물속에 있던 것이 1972년 1월에 극심한 가뭄으로 수면 위로 잠깐 나타났다. 1995년 6월 23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바위 위나 큰 절벽, 동굴 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巖刻畵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4만 년전~1만 년전)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BC 1만년 경~BC 10C)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나타난다. 구석기시대(450만 년전~1만 년전) 전기(450만 년전~10만 년전), 중기(10만 년전~4만 년전))부터 신석기시대에 아프리카, 유럽 원시인들은 동굴에 많은 그림을 남겼다. 프랑스 남서부 라스코 동굴벽화,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벽화 등이 대표적인데 공통 소재는 주로 그들의 사냥감이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모두 모두 300여 마리의 동물그림이 있다. 오른쪽은 육상동물, 왼쪽은 바다동물을 주로 그렸다.

약 5,000년 전 신석기, 청동기초기의 그림으로 보인다.

 

고래 사냥 방법과 고래의 생태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해안에서 물을 뿜는 고래, 고래잡이배의 모습, 심장부에 정확히 작살이 박힌 고래가 비틀거리는 모습, 새끼를 훈련시키기 위해 어미 고래가 새끼를 업고 있는 모습 등과, 분배 방식, 제례의식과 같은 사회적 습관도 그려져 있다.

특히 교미하는 자세를 취한 것도 있어 풍요, 주술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포경업사의 첫 장을 장식”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 비밀 사냥의례와 함께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이 그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원시인들은 제례의식을 치르기 위해 그렸다. 창인 듯한 그림으로 보아 동물을 능가하는 힘을 얻고 사냥에 성공하도록 빌기 위해 그렸다.

2. 죽은 동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

3. 젊은이에게 사냥의 과정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수단으로 그렸다. 동물들은 원시인들의 생존을 위한 주요 식량이다.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이 필요하다. 사냥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이 바위그림은 덧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평면그림이 그려졌고 다음 선그림이 그려졌다.

평면그림은 다시 물짐승(고래 중심)과 뭍짐승(멧돼지, 사슴 등)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선그림들은 거의 뭍짐승들이 산만하게 퍼져있다.

 

 

1. 평면그림

평면그림은 다시 물짐승(고래)과 뭍짐승(사슴)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물집승만 뽑어내면 아래 그림과 같다. 물짐승은 주로 고래들이다.

 

 

이 남자는 사냥꾼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 또는 수렵 어로의 신, 사냥꾼들이 신앙대상으로 하는 신상으로 보기도 한다. 또는 수렵어로민의 최고의 존재이거나 미지의 공포, 자연력에 대하여 간절히 기원하는 주술사가 주술적인 춤을 추고 있는 광경, 또는 기구의 의식춤을 추는 모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새끼 밴 고래로 보아 풍요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보는 견해, 새끼고래의 위치가 배쪽이 아니고 머리쪽이라는 점, 고래 머리부분과 작살이 돋을새김이라는 점을 들어 새끼 밴 고래가 아니고 죽은 고래의 영혼 또는 영혼의 집자리로 재생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고래는 귀신고래(Gray whale, Eschrichtius robustus, 克鯨,)로 보인다. 쇠고래, 울산고래라고도 불린다. 다른 수염고래보다 배주름이 짧고 등지느러미가 없어 새끼를 업기 편하다. 새끼에 대한 애착이 고래 가운데 가장 강하고 항상 가족끼리 떼지어 다니며 새끼가 다치거나 죽으면 매우 사나와져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가 결국 같이 잡히는 경우가 많다. 새끼보호에 악착같은 고래라 하여 귀신고래(devil fish)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나라 동해안에 많이 회유하여 유일하게 Korean Gray whale이라 한다. 그 회유해면이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되었다.


 

작살에 맞아 비틀거리는 듯한 고래가 있다. 작살은 정확하게 지느러미 아래 심장부에 표현되었다.

작살을 맞은 고래는 죽을 때까지 한동안 작살이 꽂힌 채로 강하게 헤엄치는데 이 모습을 본 대로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보인다.


 

 

고래가 물을 뿜고있다. 


 

팔과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는 신의 팔을 가진 수렵신 또는 여자무당으로 보기도 한다.



 

뭍짐승은 주로 사슴들이다. 

 

 

 

  

멧돼지 3마리가 모두 사슴과 반대방향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을 사슴보다 사나운 멧돼지에 대한 의도적인 것으로, 사냥하기 어려운 짐승이며 위험한 짐승임을 경계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성기를 내밀고 있는 사람이 고래를 손으로 붙잡고 있다. 고래는 평면그림으로 된 고래들 가운데 유일하게 거꾸로 그려져 있다. 이 고래는 죽은 고래로 생각된다. 이 남자는 사냥꾼으로 생각되며 남성의 힘을 내놓고 자기의 힘을 뽐내면서 고래 잡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잡은 고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일 것이다.



 

이 사슴들은 배가 불룩한 것으로 보아 새끼 밴 모습일 것이다. 새끼 밴 그림으로 다산과 번식을 빌었을 것이다.

사슴 앞에 서있는 남자는 줄, 홀, 또는 방패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으며 옆구리에 무언가 차고있다. 이것은 나발, 혹은 화살 등이 들어있는 무기통일 것이다.


 

2. 선그림은 평면그림보다 나중에, 평면그림을 피하여 그리거나 덧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의 구성에 있어서도 집중된 것이 없고 산발적으로 그려져 있다.

 

 

 

멧돼지 두 마리가 아래 위에 그려져 있다. 이것은 교미하는 모습일 것이다. 교미하는 멧돼지 그림은 멧돼지의 번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냥 대상 짐승들의 많은 번식을 빌었던 상징물로 생각할 수 있다.

선쪼아파기로 속보기수법을 쓰고있다. 속보기수법은 살해 해체된 짐승의 요리에 대한 설명 도구로 사용된다.


 

 

얼굴그림은 두 점이 보인다.

사냥 집단에서 사냥에서뿐만 아니라 집단 내에서 존경받던 사람이 맹수 사냥에서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렸을 가능성도 많다. 라스코동굴에는 죽은 사람을 그린 예가 있다.



 

울산 앞바다는 지금도 자주 고래가 나타난다.

 참돌고래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은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太和江 지류인 대곡천 상류(지금은 사연댐 최상부) U자 모양으로 굽어도는 돌출부에 있다.

 

이곳의 양쪽 언덕은 모두 절벽인데 해발 265m의 산들이 가로막아 아늑한 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 사이로 대곡천이 흐른다.

이 일대의 지층은 주로 낙동강의 퇴적활동과 관련된 육성층이다. 지질은 경상계의 신라통으로 중생대 쥐라기 말엽부터 백악기 초엽에 형성된 고동색[楮色] 또는 회색 켜버위로 덮혀있다. 주위에는 변성퇴적암, 안산암, 화강암 들도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동해의 난류가 흘러 따뜻한 편이며 강우량도 많아 멧돼지, 산양, 노루, 토끼 같은 산짐승이 번성하였고, 송어, 은어 같은 바닷고기와 붕어 같은 민물고기도 풍부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연안이어서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2km쯤 서쪽에는 언양분지로 통하는 평야가 있다. 그런 까닭에 이곳에는 산짐승, 어류, 농산물, 축산물 등이 비교적 풍부한 입지조건을 갖춘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활용되어 온 곳이다.

 

바위벽은 동북으로 놓여 동동남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약 15° 기울어진 높이 2.7m, 너비 약 9.5m의 편암 바위벽에 그렸다.

바위면은 건조하여 이끼가 끼지 않는다. 또 바위면이 앞으로 기울어져 눈, 비를 피한다.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내용의 조각이 새겨져 있어 기법과 양식 및 주제에 따라 크게 2군으로 구별된다.

즉 상단부의 기하학적인 원, 동심원, 渦券, 동식물, 인물문 등 굵게 타격으로 음각한 문양이 있다. 기하학 무늬는 마름모무늬, 둥근무늬, 우렁무늬, 물결무늬, 가지무늬 등 다양하며, 각 무늬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형되고 있다.

동물상은 왼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슴, 호랑이, 기다란 이형 동물이 주로 암수 두 마리가 마주 보면서 서있다. 하단부에는 동물, 인물 등의 線刻紋 및 명문이 있다.

 

 

조각은 상부는 바위면을 쪼아 무늬를 만든 후 다시 나무나 돌로 간 쪼아갈기 기법이고, 하부는 가는선으로 그어 조각한 수법, 즉 긋기이다. 이러한 기법의 차이는 또한 양식과 내용, 연대 등에도 다른점을 보여 준다.

편년상에 있어서 이 각석의 조각양식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기하학문양, 둘째, 상단부 동물상, 셋째, 하단부의 선각상 등이다. 기하학적 도형이 신석기시대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주로 청동기시대로 보고 하한선을 잡으며, 선각그림들은 명문과 함께 법흥왕 대인 6세기경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1. 평면그림

평면그림은 맨 처음 바위면 윗부분 전체에 그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뒤에 기하무늬가 덧그려져 남아있는 그림이 적다.

 

평면그림은 뒤에 선그림을 그린 주민들에 의해 많이 파손되었다. 반구대 평면그림과 수법 · 형태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반구대 평면그림을 그린 집단보다 앞서거나 같은 시기에 사냥 집단 가운데 좀 작은 집단이나 이웃 집단이 와서 겨울철 사슴사냥을 하면서 사슴 등의 번식과 사냥의 성공을 비는 어떤 의식을 행하였던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 얼굴에 사슴의 몸을 하고있다.

사슴을 가장한 사냥꾼일 것이다. 


오른쪽 남자가 사슴을 기르면서 같이 들을 거니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꽃은 길가에 핀 꽃일 것이다.




지느러미가 여러 개 있어 고래일 가능성이 많다. 


순록 암수 한쌍을 같이 그린 것으로 보아 순록의 번식을 빌었던 주술 · 종교적 그림으로 생각된다.



2. 굵은선 그림

굵은선 그림은 평면그림보다 나중에 덧그려진 것으로 주로 기하무늬 등 뜻을 알 수 없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들은 평면그림 위에 덧그려진 그림들로 평면그림을 그렸던 사람들보다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선그림들은 거의 남자와 여자, 물과 비를 상징하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남긴 사람들은 농사짓는 일과 관련을 가지고 있던 집단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던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농사의 풍요를 빌면서 비가 많이 내리기를 비는 상징물들을 그렸을 것이다. 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물고기가 잘 잡혀주기를 바라면서 이 선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농경이 정착되어 가는 초기 즉 농경과 어로를 함께 하는 단계인 청동기시대 그림일 것이다.

 

 


마름모꼴은 여성을 상징한다.


 

 


물고기를 앞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다.


서 있는 남자. 소년으로 보인다.

 


 

3. 가는선 그림

가는선 그림은 시대가 가장 뒤인 신라시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말을 탄 행렬과 배

아래위로 길게 새긴 것으로 앞으로 가고 있는 행렬을 뒤에서 보고 그린 것이다.

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왜의 사신이거나 아라비아 상인들이 배에서 어디론가 안내되는 행렬로 추측할 수 있다.



 

용 3마리


새이거나 솟대일 것이다. 


 

명문은 을사년에 이루어진 原銘이 있고, 그에 이어 2차로 새겨진 追銘 등 2건이 있다.

이 둘은 글을 쓴 주체가 같고 또 같은 일을 시차를 두고 회상하며 기록한 것이다.

원명은 법흥왕 15년(525) 沙啄部의 葛文王이 이곳에 행차하여 그린 것이고, 추명은 14년 뒤 법흥왕 26년(539) 다시 이곳을 찾아 과거에 다녀간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입종 갈문왕은 신라 왕실의 가계가 분화되던 시기에 새로 분화되어 나온 한 가계의 시조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곳은 입종 갈문왕계 세력의 상징적인 장소로 보인다.

특히 追銘은 왕과 왕비를 포함한 신라 사회의 일면을 알려주는 자료로, 약 300자 가량이 보이고 있다.

선각그림과 명문들은 이 서석을 순례한 신라인들이 기념으로 적은 글과 행렬도들이며, 이외에 새나 용도 선각으로 그렸다.

주변에 永郞, 金郞, 貞光郞 등 이름이 보이는데 화랑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화랑들은 전국 곳곳의 명산승지를 돌며 심신을 수련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곳을 다녀간 화랑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겼을 것이다.


공룡발자국(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12호)

8m, 몸무게 4t으로 9천만 년 전 전기 백악기에 살았다. 발자국 크기는 길이 32cm, 넓이 33cm 발가락 제1지는 퇴화하였다. 2, 3, 4지만 천전리 앞은 전기 백악기의 지층이 발달했다. 이것을 이암펠스혼이라 한다. 이는 무른 땅이 지각 변동으로 열을 받아 당당해진 돌이다.

대곡천에는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편이다.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약 100㎡ 넓이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용각류 팔용과(Brachiosauridae)에 속하는 것(60톤급)과 조각류 이구아나과(Iguanodont)에 속하는 것(고성룡족인Goseongosauripus) 등 24여 개다.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공룡들은 이 일대를 평화롭게 배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룡은 2억 2천 5백만년 전에 출현하여 1억 6천만년 동안 살다가 멸종했다.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 前期 白堊紀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공룡들은 亞熱帶 기후 아래 雨期와 乾期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바나 지역의 河川平野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식공룡인 고성자우리푸스는 발끝이 둥글다. 키 6m 몸길이 둥근 모양의 구멍을 남겼다.

날카로운 세 개의 발자국은 메칼로자우리푸스의 것이다.

 

 

 

■ 반고사터 - 공룡발자국 가기 바로 전 계곡 입구 밭에 석탑 부재로 보이는 몸돌과 지붕돌 일부가 남아있다.  

<삼국유사-朗智乘雲普賢樹> 조에 “원효가 磻高寺에 있을 때”라는 말이 있다. 반고사 불상은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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