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산책길 · 함양상림 · 정여창 고택 · 남계서원- 2011년 11월 9일
상림에서
뒷줄, 숲기리, 민우, 海바라기, 순디기동행, 길벗따라, 청심이, 수운, 산두리, 유비한, 맑음하나, 소영이, 자리,
사진에 없는 bonami, 달마루,
이렇게 22명이 함께 갔다.
11시, 함양 상림 제1주차장에 도착했다.
함양군청 과장 한 분과 무화유산 해설사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 님 시가의 본가가 있던 곳이라, 이곳의 유지들과 친분이 많다고 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일찍이 없던 이런 대우를 받았다.
이 가을,
지난 주쯤이 상림의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자리 님이 알려주었지만 그때는 인연이 없었고,
이번 주는 조금 늦은 듯하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날씨, 걷기에 좋았다.
여기서 몇 걸음 가면 '최치원산책길' 입구다.
多味園이란 식당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른다.
낙엽의 잔치,
나무들은 한껏 치장한 '화려'를 벗고 자신으로 돌아가 스스로 내면을 다진다.
나무는 말한다.
"그대들도 이제 그 번드레한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자기를 찾으러 떠나시오."
▪ 필봉산, 11시 25분.
입구에서 여기까지 10분 남짓 걸렸다.
필봉산은 고려 우왕 6년(1380) 왜구의 침입으로 함양읍성이 무너져 관아를 이 산으로 옮기고 토성을 쌓았다.
▪ 한남군의 묘
한남군은 세종대왕의 12째 아들이다.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가 낳았다.
문종의 이복동생이고, 단종의 숙부다.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함양군 휴천면에 새우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4년 만에 죽었다.
그 뒤 버려져 있던 시신을 수습하여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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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잎에 이런소박한 비도 있는데,
숫자들이 보일 뿐 읽을 수가 없다.
버림받은 왕자, 전아한 궁정양식의 장식물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소박한 석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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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나지막한 봉우리가 우리가 지나온 필봉산이다.
낙엽길, 흙길이 끝나는 자리에 대병저수지가 나타난다. 12시 40분.
여기서 필봉산까지 2.22km라 한다.
여기서 반계공원까지 잠깐 포장길을 걸어야 한다.
▪ 潘溪 유호인 선생 기적비
옆에 효간공 갈천 임선생 사적비가 있다.
상림 위쪽 죽장마을은 조선 성종 때 문장가 뇌계 유호인(1445~1494)이 살던 곳이다.
그가 노모 봉양을 위해 낙향하려 하자 성종이,
있으렴 부디 갈다 아니 가든 못 할소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하 애닯구나 가는 뜻을 일러라.
하는 ‘이별가’를 부르며 잡으려 했다.
▪ 반계공원
공원 이름이 아예 유호인의 호 '반계'를 땄다. 12시 50분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상림으로 들어간다.
팽나무 두 그루, 참 묘하게 생겼다.
상림 북쪽 끝에 있는 죽장마을,
함양의 상징물 물레방아 모형을 만들어 두었다.
▪ 상림(천연기념물 제154호)을 걷는다.
인물공원
함양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의 흉상과,
함양을 거쳐간 군수들의 선정비들이 늘어서 있다.
마당바위,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낙엽파티를 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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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후 최치원 생 신도비
사운정, 孤雲을 생각하는 정자
사랑나무(연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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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이은리 석불
화수정
花樹亭은 1972년 함양의 파평윤씨 종중에서 세웠다고 한다.
상림이 천연기념물(1962년 12월 3일)로 지정되고 11년이 지난 뒤다. 국가지정 기념물 안에 종중의 이름을 단 건축물을 세워졌다.
엄연한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다.
군 관계자는, “정자를 건립하던 당시 파평윤씨가 함양경찰서장으로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정자 건립 시기가 윤아무개 총경이 서장으로 재임한 기간(1971~74년)이다.
1973년 5월 진주발 <동아일보> 기사에 "1973년 4월 윤 총경을 태운 함양경찰서 지프차가 산청의 도로에서 취객을 친 뒤 달아났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는데, 산청 경찰이 상황을 뒤집으려고 신고자인 유조차 운전자를 고문해 가해자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사건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야만시대의 기록>에서 박정희 시대의 대표적 고문조작 사례로 기록돼 있다.
<한겨레 신문 > 참조
"향단에 그넷줄을 밀어라…… "
사랑나무(연리목)는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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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의 윗 부분이다.
함양초등학교
▪ 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407호)는
함양초등학교 안에 있다.
김종직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심었다고 하니 500살쯤 되었을 것이다.
▪ 학사루
함양초등학교에서 찻길을 건넌 곳에 있다.
정여창 고택, 3시.
먼저 一蠹(일두, 정여창의 호) 홍보관에서 해설사 朴正子씨의 설명을 들었다.
만선 님의 주선으로 이미 우리와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여창고택 솟을대문으로 가는 길
솟을대문 오른쪽에 있는 이 돌은 하마비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해설사는 설명했다.
솟을대문
▪ 정여창고택의 문화재청 공식 명칭은 함양 정벙호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이다.
이런 명칭은 지정당시 건물주의 이름을 딴 것이다.
솟을대문에는 효자효부에게 하사하는 旌閭를 게시한 문패 4개가 걸려있다.
집 안을 들어다 보았다.
사랑채
이 세 개의 돌은 삼신산을 상징한다고 한다.
약간의 배흘림이 들어싰는 가둥머리에는 장식이 거의 없이 단정하다.
지붕이 넓어 활주로 받쳤다.
절집에 있는 물고기가 매달인 풍탁이 있어 좀 놀랐다.
이 길을 지나 안채로 간다.
안채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안채는 정갈하다.
마당에 굴뚝,
능소화 넝쿨이 감고있다.
뒤안
안채에 딸린 부녀자들의 화장실
태극문양이 있는 문 안이 사당이다.
무 배추가 탐스럽게 자랐다.
물찬제비 님의 여유로운 시간.
정여창고택을 떠나 남계서원으로 간다.
▪ 남계서원 정문 풍영루
4시에 이곳에 도착했다.
정여창, 강익, 정온 세 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이다.
돌아보고 나니 4시 20분,
타고온 버스로 돌아간다.
함양군에서 마중나와 주신 과장님, 해설사님,
정여창 고택에서 해설해주신 박정자 님,
이런 일을 주선해 주신 자리 님과 만선 님,
후미를 맡아주신 민우 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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