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왕피천 계곡 트레킹- 2011년 7월 24일

추연욱 2011. 7. 25. 10:37

 

 

 

왕피천 계곡 트레킹- 2011년 7월 24일

 

왼쪽부터 구닥다리(창원), 민균(경주), 의 계절(대구), 늘봄(창원), 사랑(대구), 거북선(창원),

루비(창원), 초이(경주) 바리스타, 덕운, 마미(부산), 깊은산(부산), bonami(부산), 소리아(창원)

보이지 않는 분 나두(부산)와

그리고 달마루 이렇게 17명이 장도에 오른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있는 황실예식장에서 출발한다.

덕운, 구닥다리, 바리스타, 초이 등의 승용차 4에 나누어 타고 출발한다. 8시 10분.

 

 

왕피천 가는 길

 

화진휴게소

 

 

 

구고교에 도착했다 11시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이곳이 왕피천 계곡트레킹 하류쪽 출발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계곡으로 용소까지 갔다가 생태탐방로로 돌아올 것이다. 

 

 

 

 

 

 

왕피천 옆으로 형성된 마을길을 조금 걸으면 곧 물로 들어간다. 

 

 

길가에에는 이런 부부와, 

 

이런 부부가 우리를 지켜주겠다고 했다. 

 

 

王避川은 옛날 왕이 피난했다 하서 얻은 마을 왕피리에서 비롯한다.

 

실직국 安逸왕이 濊나라의 침략을 받아 왕피리로 피신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뒤졌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제5대 파사니사금(80~112 재위) 23년(102).

"8월에 음집벌국(안강 지역) 과 실직국이 서로 지경을 다투다가 왕에게로 와서 이를 판결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왕은 이는 어려운 일이라 하며 말하기를 '금관국 수로왕은 연로하고 지식이 많으므로 그를 불러서 묻자' 하고 곧 그를 초빙하였는데,

수로왕은 의론을 바로 세움으로써 그들이 서로 다투는 땅을 음집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

이때 奴(사람 이름)는 도망하여 음집벌국의 主 타추칸이란 사람의 집에 의지하여 있으므로, 왕은 사자를 보내 그 奴를 수색하였는데,

 타추간이 보내주지 않았으므로 왕은 노하여 군사를 보내 음집벌국을 정벌하니 그  主 타추간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이에 실직국 · 압독(경산)국도 항복하였다."

 

실직국은 삼한시대 삼척 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이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대략 100년대 초에 신라에 정복되었다..

예나라는 강릉 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다.

학생시절 배웠던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舞天" 하던 그 예나라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고려 제31대 공민왕(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신한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주변에 왕의 군사들이 머물렀다는 마을 방위동, 군사들이 밥을 먹었다는 포전,

왕이  적에게 붙잡혔다는 핏골,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곳 거리곡 등 전설과 관련이 있는 지명들이 남아있다.

 

전설을 전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왕피천은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본신동 금장산 금장샘(해발 650m쯤)이서 발원하여

울진군을 지나 동해로 드는 67.75m의 깨끗한 강이다.

 

왕피천의 물줄기는 크게 3줄기가 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북쪽 해발 1,119m 지점 동쪽에서 발원하여 불영계곡을 따라 동류하는 광천,

영양군 수비면 본신동 금장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발리동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며 장수포천이라 불리다가,

왕피리를 지나면서 왕피천이라 불리는 왕피천 본류와,

울진군 원남면 길곡리 서쪽 765.3m 지점 동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매화천 등이다.

이형석, <한국의 산하>, 홍일재, 1990.

 

 

곧 물길이 시작된다.

 

 

 

 

 

장마가 끝난지 오래되지 않아 물이 많아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걷기에 알맞은 깊이의 물에,

물은 덥지도 차지도 않았다.

오늘 복 중의 伏, 중복이다.

아랫도리는 계곡물에, 윗도리는 빗물에 젖어 시원한 하루를 보낸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점심, 12시 40분.

우산을 받치고, 판쵸를 받쳐 들고.

 

먹을 게 푸짐했다.

밥은 말할 것도 없고, 고기도, 빵도, 술도, 과일들도……

 

 

 점심을 잘 먹고, 40분쯤 출발한다.

 

 

 

 

 

 

 

 

 

 

 

이 보를 지나니 계곡이 오히려 더 평탄해졌다. 

 

 

 

 

 

 

 

 

 

 

 

 


 

 

 


 

여기가 용소 아래쪽 입구다.

계곡이 좁아지고 물은 많아 거센 물돌이가 형성된다.

 

 

표지판에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래담"이라 하면서 이런  이렇게 썼다.

“용소 이야기”는 구산3리에 있는 굴구지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 가운데 좁은 협곡 사이에 움푹 패인 연못에 살았다는 용에 관한 전설이다.

 

왕피천 65km 구간 중 가장 좁은 바위 협곡으로 강우시 많은 수량이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는 광경은 장엄 그 자체이다.

상류부 담수 유역이 넓어 댐 건설 계획이 있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된 ‘속사댐’ 예정지가 바로 여기다.

소용돌이 치는 물살에 의해 형성된 용소는 폭이 좁은 만큼 깊이서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1925년(을축년) 대홍수를 예감한 용이 살던 용소를 금빛 찬란한 비늘을 번쩍이며 빠져 나가는 것을 왕피리 새댁이 굴구지 친정으로 만삭의 몸으로 몸풀러 가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어 그 자리에서 눈이 멀고 낳은 아이는 몸에 금빛 비늘을 붙인 채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우리는 왕피천 생태탐방로를 따라 출발점 구고로로 간다.

이 길은 2009년 가을에 생겼다. 울진군에서 옛길을 복원하고 정비했다.

2005년 왕피천 생태 · 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왕피천 보호를 위해 만들었다.

계곡 트레킹에 사람들이 많아져 산길로 탐방객의 발길을 분산시커자 하여 만들었다.

 

옛날 울진군 서면 왕피리 사람들은 숯을 구워 짊어지고 이 길을 따라 근남면 장으로 내다 팔았다.

 

우리는 이 길을 일부를 걸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진다. 

 

 

 

 

 

 

 4시에 왕피천 유역 생태 · 경광보전지역 관리초소에 도착하여 잠깐 비를 피했다.

 

 

이 나무는 나 혼자만 본 것 같다.

길을 찾아 속사족으로 한참 가는 도중에 보았다. 

 

 

 

4시 30분에 출발한 지점 구고교에 도착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5시에 출발했다.

어두운 빗길을 달려,

강구 버스처미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8시 40분 경주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