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저수지 사색길 반 바퀴- 2011년 7월 22일
도시철도 구서역에서 만났다.
13-1번 마을버스를 타고,
회동동 상현마을에서 내렸다. 10시 45분.
선선한 바람이 불어 걷기 좋은 날이다.
오른쪽 수변길을 돌아 회동댐까지 간다.
7.2km에 약 2시간 걸린다고 적혀있다.
저수지는 거울같이 고요하다.
그러나 물은 짙은 초록색이다.
온통 藍藻類로 덮여있다.
남조류는 질소, 인 등 영양염류, 높은 수온 강한 햇빛의 영향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정수장에서는 6m 이하에서 취수하기 때문에 수도물은 괜찮다고 썼다.
여름이 무르익어 간다.
능소화는 한창 고움을 뽐내고,
때죽나무, 그 청초한 꽃은 이렇게 열매로 바뀐다.
감도, 모과도 영글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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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행 친구 박홍재의 시조 <돌담>이 결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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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바스는 세월다라 빛이 바래가지만 시야 어찌 세월이 있겠는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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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1일
"詩, 호수와 通情하다"라는 시화전을 찾은 적이 있다.
회동수원지 산책길은 그 자체가 시다.
거기에는 우리 친구 호미길 박홍재의 시가 있어 더욱 시적이다.
호미길 박홍재가 자신의 시조 <돌담>을 낭송한다.
그의 목소리에서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이 묻어난다.
'빈 마당', '무너진 담', '빗금바람 숭숭 드는 공간',
이 모든 허허로움은 '돌담'이 막아준다. 그래서 돌담은 박홍재 삶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 속에 모든 것이 있다. 삶의 짐은 날개처럼 가벼워지고, 슬픔은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돌담'의 이미지는 저 저수지, 곧 모태 속이다.
그래서 인간은 늘 모태회귀를 염원한다.
인도행 영남방 후기 6330번 글에서
오륜대
조선 영조 16년(1740)에 편찬된 <동래부지>에 “오륜대는 동래부의 동쪽 20리 絲川에 있었는데,
臺에서 4~5步 가량으로 시내[溪]에 임하고 암석이 기이하여 구경할 만한 곳인데,
그 대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 五倫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오륜대”라고 하기도 하며,
1832년에 편찬된 동래부읍지에 “오륜대는 동래부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시내와 바위가 기이하다.
옛날 다섯 명의 노인이 지팡이를 꽂고 놀며 즐긴 곳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오륜다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산지명총람> 제4권 금정구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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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산에 올랐다.
'산'이라 보기보다는 '회동저수지 전망대' 정도가 알맞을 것 같다.
회동저수지를 내려다 본다.
"아! 대한민국…"
자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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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에 "五倫洞興鶴契永世不忘碑"라 썼다.
비제 좌우로 7언시 한 수가 새겨져 있다.
四圍疊山鳳飛谷 산 첩첩 봉비골
長江貯水白鷗游 긴 강 머무는 곳 갈매기 노니도다.
鳳凰山下天然岩 봉황산 아래 솟은 바위
千秋記念石林亭 석림정에 세우도다.
1971년 3월에 세웠다고 적었다.
기록을 찾지 못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五倫洞興鶴契원들의 우정을 다짐하는 비인 듯하다.
대숲길이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五友歌> 중 '竹'
윤선도(1587~1671)
오륜댐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4시.
오늘 지도상에 표시한 빨간 점선만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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