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옛길/ 기림사- 골굴사- 2011년 3월 9일
경주 보문단지를 지나 감포로 가는 길, 황룡동 입구를 거쳐 황룡사 앞에 내렸다. 10시 10분이다.
황룡사 절 입구에 연곡사 동부도 모조품이 보이고,
근원과 양식을 알 수 없는 온갖 조잡한 석물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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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부재들이 흩어져 있다.
수조 같은데, 조각이 아름답다.
소중한 것들이 소홀히 취급되는 것 같다.
황룡사에 관한 이런 설명이 있다.
"본 도량은 신라시대 633년경에 처음 세워져 黃龍寺 또는 黃芚寺라고 저해져 왔습니다.
조선 인조 때불국사의 담화스님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절을 중창하였는데, 그후 다시 불타 없어지고 지금은 초석과 폐탑으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99암자가 있었는데 물이 좋고 산세가 뛰어나서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고 합니다.
걸이 많은 곳이라 하여 경주시 황룡동 절골로 근래까지 불려져 왔습니다.
지금 도량 내의 폐탑 유적과 금당터 등은 자연을 거슬리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가람배치로 황룡사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큰 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86년 이곳에 온 종연스님은 현 위치에 민간사옥을 구입하여 폐탑과 많은 유적을 도량에 두고,
불상을 모셔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의 도량으로 이루시어 정진하고 있습니다."
<佛國寺古今歷代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옛기록에 전하기를 신라 제27대 선덕여왕2년(633)에 장인들을 모아 절을 세우고 약사여래상을 만들어 모시고 黃芚寺라 하였다.
그 후 제39대 소성왕(798∼800)때에 5년간 큰 가뭄이 계속되어 전국의 초목이 말랐으나 유독 이 골짜기의 산은 계곡의 물이 흘러 초목은 이슬을 머금은 듯 푸르렀으므로 산의 이름을 이슬이 숨은듯하다는 뜻으로 隱霑山이라 했다.
조선 제16대 인조1년(1623)에 담화스님이 조정의 명을 받아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 와서 왜란중의 왜군으로 인해 잿더미가 된 절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사찰을 재건하고는 黃龍寺라 했고, 그후 제19대 숙종27년(1701)에 절을 불국사에 합속시켜 深寂庵이라 했다."
언제 어떤 연유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옛 절터로 올라간다.
맑은 계곡이 흐르고, 길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다.
이런 아담한 폭포를 지나면,
삼성각이 언재나 열려있다.
저 위에 옛 절터가 있다.
절터에 오르니 제법 넓은 절터가 나타나고,
전망이 탁 트인다.
귀중한 유물둘이 흩어지고 모이고,
탑 2기 자리에 각각 부재들을 모아두었다.
탑의 규모가 상당이 컷을 것 같다.
사리공이 분명히 보인다.
대숲 뒤쪽에 금당이 있었을 것이다.
왼쪽으로 좀 떨어진 산 기슭에도 부재들이 있다.
8각 지붕돌도 있고,
몸돌에 이런 낯선 무늬도 있다.
사리공도 보인다.
다시 내려와서,
본격적인 도보, 또는 산행을 시작한다.
이건 전봇대다.
이것은 살아있는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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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민요보전회 수련원
터가 상당히 넓고 전망도 좋은 곳이다.
한 마을이 몽땅 떠나고 그 터에 수련원을 지은 것 같다.
오늘은 평일이어서 연습이 없는지 을씨년스럽다.
이곳을 둘러보고 쉬었다 가기로 했다.
마을에서 1.5km쯤 왔다.
다시 시작한다.
낙엽에 발목이 푹푹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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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12시 30분.
좀 비스듬하지만 꽃샘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우리는 이곳을 찾아 갈길에서 좀 벗어났다.
다시 시작한다.
산비탈로 난 길 오른쪽은 낭떠러지다. 조심조심
돌을 모아 제단을 만들었다.
옛날 이 길을 자나가는 나그네들은 이 나무에 여행의 안전을 빌며 정성들여 기도했을 것이다.
지나오는 길 군데군데 집터 또는 밭이었던 장소들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계곡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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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고개마루에 불령봉표
여기에도 무슨 글이 있는데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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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계곡이 모여 이렇게 맑게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었다. 기림폭포.
먼저 위에서 본다.
폭포는 밑에서 쳐다보아야 제맛이다.
폭포 가는길 입구에 큰 바위가 우뚝 서있다.
폭포를 보고 나오니 입구에 있는 큰 바위에 "나무아미타불"이란 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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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따라 구름 따라 내려간다.
間香亭이란 편액이 걸린 아담한 정자가 나타났다.
기림사 스님들이 여가를 즐기고 사색하는 장소일 것이다.
우리는 절 뒷문으로 들어갔다.
기림사 삼천불전, 과거, 현재, 미래 각각 1000불씩 3000불을 모셨다.
대적광전과 삼층석탑
왼쪽 건물은 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이다.
응진전 오백나한상(일부)
鎭南樓, 절집에 꼭 성문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신라·고려 때는 왜구들이 침입하는 통로였다.
조일전쟁 때는 승군이 주둔했다.
500살이 넘은 보리수가 보이지 않아 스님에게 물었더니,
1992년 매미떼의 습격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2세 보리수가 자라고 있다.
보리수가 서있던 이곳은 본디 신라때 세운 목탑지리이다.
주춧돌과 심초석을 꽃았던 돌이 지금도 남아있다.
천왕문
일주문
우리는 뒷문으로 들어와서 앞문으로 나왔다.
주차장
여기서 버스를 타고 골굴암으로 간다.
골굴암마애불
절집 벽화에 이런 그림이 있다.
가운데 오륜탑, 바깥쪽 원 속에 있는 작은 원 10개의 그림은 티베트라마교의 만다라인 것 같은데 이해할 수 없다.
그 바깥쪽은 팔상도, 또 그 바깥은 여러가지 수인이다.
오륜탑
여기서 일정을 끝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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