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 둘레길-2010년 11월 26일
비주류님의 승용차로 밥밭고개 입구까지 왔다.
이곳에서 도보를 시작한다.
거북선님과 미르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당산 신을 모신 작은 당집이 있다.
당집 안에 "大正 4年"이란 말이 있는데, 大正 4년은 1915년이다.
대정 4년에 처음 지었다는 뜻일 것이다.
밖에 "修理人 金永化"라는 작은 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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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깔린 길, 발바닥의 촉감이 좋다.
오른쪽으로 계속 바다를 보며 걷는다.
앞으로 보이는 섬이 돗섬이다. 한자로 猪島인 걸로 보아 돼지처럼 생긴 듯한데,
여기서 보니 물고기처럼 생겼다.
만날고개에서 한번 차도를 건넌다.
돌비에 '만날고개'와 관련된 전설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비문에 이렇게 썼다.
만날고개 유래
고려말엽 마산에 양반 이씨 가문에는 편모슬하에 열일곱 살 된 큰딸과 둘쨋달, 그리고 막내 아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고질병으로 눕게되어 살림이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고개 너머 감천골 천석군 부자 윤진사가 반신불구에다 벙어리인 외아들을 이씨 가문의 큰달과 혼인시키려 하였으나 어머니가 이를 한사코 거절했다. 이에 큰딸은 두 동생의 생계와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하여 반신불구의 총각과 혼인하기를 자청했다.
큰딸은 새댁에 되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집살이가 가혹했다.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부모로부터 근행을 어렵게 허락받아 친정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친정집이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까지 함께 온 남편은 돌연 자기의 반신불구와 벙어리 모습을 처가식구들에게 보이기 싫어 고갯마루에 앉아 기다린다고 하며 색시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친정 마당으로 내려 보냈다.
꿈에도 그리던 친정집에 와보니 시집갈 때 받은 금전과 전답으로 가세는 호전되었고, 어머니의 병환도 완치되어 마음이 한량없이 기뻤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해가 서산에 기울쯤 돌아가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남편이 기다리는 고갯마루에 올라가보니 남편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돌에 머리를 부딪쳐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그녀는 스무 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수절하며 애환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몇 해가 지난 팔월 열이랫날 친정 소식이 하도 그리워 친정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갔다. 친정어머니도 추석을 지나 큰딸의 소식이 그리워 행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고갯마루에 올라가 혹시나 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행인들 사이에서 서성이는 큰딸을 보고 달려가 얼싸안고 한 많은 정을 나누었다.
그후로 이 고개는 만날고개라 불려지게 되었고, 매년 음력 팔월 열이랫날이 되면 이 고개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 모여 지난날을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는 곳이 되었다.
그날 아픔의 흔적,
옛날의 아픔은 그때만 있었습니다.
돗섬
가고파
이은상 시/ 김동진(1913~2009)
테너 이인범
이곳에도 비슬산·만어산처럼 너덜지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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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사
'棲鶴寺', '학이 깃드는 절' 주차장에서 학처럼,
비주류님이 가지고 온 한치회 자료를 미르님이 완성해서 멋진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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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를 심고있다.
무학산 둘레길을 정비하는 작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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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내려와서 다시 산기슭으로 올라야 한다.
구슬골 소류지
늦가을 짧은 하루해가 저물어 간다.
중리역에서 오늘 도보를 마쳤다.
무학산 둘레길 전체를 걸은 것이다.
22km쯤 된다.
여기서 거북선님의 차로 출발점인 밤밭고개 입구로 가서,
비주류님의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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