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시〈절정〉감상
절정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문장>, 1940. 1.
‘하늘’은 삶의 원리, 소망, 가능성을 의미하는 포괄적 존재이다. 삶 자체의 존속이 어려울 정도의 극한적 상황 ‘고원’은 1연의 ‘북방’이 수평적 공간의 극한점인데 비해 수직적 공간의 극한점이다. ‘서릿발’, ’칼날‘은 고통과 시련을 암시한다. 이미지의 성격이 광물적이어서 공격적, 전투적 성격을 드러나 있고, 또한 그에 맞선 시적자아의 저항적, 남성적 의지도 강조되었다.
3연의 무릎을 꿇는 것은 양면적 의미가 있다. 즉 패배를 인정한다는 의미와, 어떤 절대적 존재에게 구원을 갈구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패배를 인정할 수도, 절대적인 존재에게 구원을 빌 수도 없는 극한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4연의 ‘겨울’은 시적자아의 생존을 위협하는 부정적인 상황으로 일체로서 암울한 시대적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강철’과 ‘무지개’는 서로 대립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강철의 광물적 이미지는 견고함, 고체성(물질성), 차가움, 비생명성(죽음), 무거움(하강의 이미지), 공격성 등의 내포와 연관되어 암담하고 절망적인 현실의 삶과 관련된다.
무지개는 꿈, 삶의 환희, 약동, 가벼움(허망하고 덧없음), 희망, 천상적(상승의 이미지) 등의 내포와 관련되어 현실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시적자아의 정신적, 내면적 삶과 관련된다.
무지개 같은 희망은, 시련을 이기는 강인한 투쟁으로 성취된다. 극도에 이른 절망은 열렬한 희망이라는 역설로 겨울과 봄, 현재와 미래의 구분을 없앴다. 즉 가혹한 시대 현실 속에서 극한상황에 몰린 시적자아가 이에 대해 정신적 초월을 통해서 ‘비극적 황홀’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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