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의 시

추연욱 2009. 5. 23. 14:18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며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