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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갑사-연실봉-용천사-2010년 9월 16일

추연욱 2010. 9. 17. 16:07



불갑사-연실봉-용천사-2010년 9월 16일

 


불갑사 앞 사하촌은 내일부터 열리는 상사화 축제 준비로 어수선하다.

 


 


 


가을 꽃들로 꽃잔치를 이루고 있다. 

  


 

 


 불갑사 경내로 들어간다. 

  


 


경내에 이런 것도 있다.  

 


이런 설명이 있다.

 


 

 


■ 불갑사는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모악산자락 자락에 있다.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처음으로 연 절이라 한다. 摩羅難陀가 법성포로 들어와 불갑사와 나주 불회사를 창건하고, 백제의 수도 한산주(경기도 광주)로 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제 최초의 절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4대 침류왕 조에 백제 불교 초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왕 원년(384)9월에 胡僧 마라난타가 晉나라로부터 이르렀으므로 왕은 이를 맞아 궁내에서 예의로서 공경하였는데, 불법이 이로부터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왕 2년(385) 2월에 한산(광주)에 절을 창건하고 度僧 10명을 두었다."

 

당시 중국 남조와 교통하던 항로로 보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기록과 유물이 없어 확신하기 어렵다.

 

또 법성포라는 지명에 마라난타의 행적이 스며있다고 한다. 법성포는 백제 때 아무포로 불렀다. '아무'는 나무아미타불의 '아미'와 같은 말로 본다. 고려시대에는 부용포(연꽃포구)였다.

고려후기 이후 법성포는 법을 전하는 성인이 온 포구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백제 무왕 때(재위 600~641년) 행은스님 창건했다는 설, 도선국사(827~898)가 불갑사, 봉갑사, 불회사 등 호남 3갑사 가운데 하나로 창건하고 그중 으뜸이라하여 불갑사라 했다 한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조선 말기의 것이고, 구체적인 유물이 없어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분명히 알려진 것은 없다.

영조 17년(1741) 李萬錫이 쓴 사적비에는 언제 창건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고려후기 覺眞국사 復丘(1270~1355)가 머무르면서 크게 중창했다. 이때 승려 수백 인이 있었고, 寺田이 10리에 뻗쳤다고 한다. 그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몽땅 불타버렸다. 선조 31년(1598) 法稜이 중수했다. 이 무렵 睡隱 姜沆(1567년~1618년)이 부사를 도우고<불갑사중수권시문>을 지었다. 이후 헌종 때 海稜이 법전을 중수했고, 영조 23년(1743) 采隱선사가 그간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했다.

1938년 雪霽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 만세루 등 15동의 있다.

 

부속 암자로 전일암, 해불암, 수도암, 불영암 등이 있다.

 

 

불갑사 금강문

 


 


돌계단을 오르면 천왕문이다. * 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은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목각한 것을 조선 고종 7년(1870)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전북 무장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말은 믿기 어렵다. 道詵국사에게도 烟起라는 이름이 있으니 도선국사라면 조금은 수긍이 간다.

현재의 것은 17~18세기에 다시 만든 것이다. 비천상, 보관 등 장식이 화려하고 생기 넘쳐 아름답다. 사천왕상은 외모도 준수하지만 몸 안에서 1997년 9월 월인석보 등 보물급 고서 50권이 쏟아져 나와 더 유명하다.

천왕문 오른쪽에 복구가 심었다는 700여 살이 된 침식나무 한 그루가 있고, 있다. 공민왕 8년(1359)에 세운 북구의 각진국사비가 있다.



천왕문

 

  

천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이런 아름다운 부조가 있는 석물이 있다.

비석의 대좌일 것이다. 

 

 

 

대웅전

 

* 대웅전(보물 제830호)은 정면,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계 집이다. 정면과 측면 모두 가운데 칸의 세짝 문을 연화문과 국화문으로 장식했다. 좌우 칸에는 소슬빗살무늬로 처리했다.

‘乾隆二十九年(건륭 29년)’이라고 쓴 암막새가 발견되어서 이 건물이 1764년(영조 40)에 중수되었으며, 이 때 대웅전 기와를 새로 덮은 것으로 보이므로 이 건물은 18세기 이전에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서향인 앞면과 남향인 우측 벽 전체가 문이다. 밖에서 볼 때 측면이 정면인 것으로 보인다.

서향 건물에 불단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부처님이 남쪽으로 향하여 않았다.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셨다. 부석사 무량수전, 마곡사 대광보전처럼 건물 좌향과 불상의 시선이 직각을 이루는 드문 예 가운데 하나이다.

 

 

대웅전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 용도와 의미를 알 수 없는 장식기와가 있다.

도깨비 얼굴 위에 집 한채, 그 지붕에 보주가 올려진 鬼面寶珠가 있다. 불갑사 스님은 인도의 스투파 상륜부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파키스탄 출신인 마라난타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전 용마루의 도깨비 장식

 

 

 

 샘에 세심정이란 현판을 붙였다. 

 

 대웅전에서 정면으로 마주선 만세루다.

 

만세루 아래는 통로다. 삐뚤삐뚤한 기둥을 막돌 주춧돌에 그랭이 기법으로 세웠다.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데 그 그림이 재미있다.

 

 

불갑사 옆으로 흐르는 계곡이다.

이 길을  따라  연실봉으로 간다.   

 

 

 

* 참식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12호)는 불갑사 뒤편에는 있다. 참식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활엽수로 10월이나 11월에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딴 그루에서 피며 다음해 10월쯤에 열매가 익어 꽃과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남쪽 지방의 섬에 자라는 난대수종인데, 이곳이 자생지로서 현재 발견된 북쪽 끝이다.

 

 

 

해불암 

 

 

해불암에는 물봉숭아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불갑산 연실봉에 올랐다.

 

연실봉에 서면 엣 사람들이왜 연실봉이라 이름지었는지 알 수 있다.

 

연실봉을 중심으로 콤파스로 한 바퀴 돌린 듯 사방에 고만고만한 높이의 산들이 곱게 둘러싸고 있다.

이 산들은 봉우리와 계곡이 겹쳐지면서 여러 겹의 연꽃잎같이 보인다.

연실봉과 산들 사이에는 평야와 마을이 넓게 펼쳐지고,

연실봉은 그 운데 우뚝 솟아 연밥이 분명하다.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용천사로 간다. 

 

 

 

능선을 벗어나 용천사로 내려오는 길에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 꽃무릇(석산)은 꽃이 진뒤 뿌리쪽에서 잎이 나온다. 30~50cm의 줄기 끝에 선홍색 꽃이 핀다.

相思花와 같은 수선화과이다. 상사화는 잎이 시든뒤 꽃이 피어 ‘잎과 꽃이 서로를 그리워한다’고하여 상사화이다.

군락지로는 전남 함평의 용천사와 영광의 불갑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 정읍 내장사 부도탑 뒤에 꽃무릇이 무리지어 있다.

선운사는 주차장 위부터 도솔암간 4㎞의 계곡길과 등산로를 따라 120만송이가 심어져 있다. 9월 초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 추석연휴때는 장관을 이를 것으로 보인다.

 

  

 

용천사는 뒷문으로 들어와 앞문으로 나가게 되었다. 

 

용천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오르는 계단

 

소맷돌의 연꽃 조각은 다소 투박하기는 하지만 아름답다.

 

 

 용천사 석등

이 석등 간주석에 숙종 9년(1685)에 만들었다는 명문이 있다. 시주한 사림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다. 석등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2,37m이다. 석등 지붕돌은 목조건물 팔작지붕 양식을 모방하였다. 받침돌의 상단에 붙어있는 개어졌다. 대체로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용천사 용천

물을 흘러나오고 있으나 마실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

 

 

누각에 상사루란 현판을 걸었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말하는 '상사'란 이름을 붙인 것은 꽃무릇과 관련있을 것이다.

 

역시 덤벙주초 위에 삐뚤삐뚤한 기둥을 세워 누각을 만들고 아래는 통로로 쓴다.

 

 

 

용천사로 가는 길은 흙길, 자갈길 그대로다 경상도 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길이다. 

 

 

용천사 경내가 시작되는 곳에 이런 비가 서있다.

내용은 불갑사의 연혁과 똑 같아 혼헌란스럽기만 하다.

용천사에 대하선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사하촌은 역시 북새통이다.  

  

 

  

 

 

 

 

 

 

 

 이  초갓집에는 옛날과는 달리 심심한 개 한 마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