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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구동 연꽃소류지와 계명봉 숲길 반나절도보-2010년 7월 14일

추연욱 2010. 7. 14. 22:54

 

 

선두구동 연꽃소류지와 계명봉 숲길 반나절도보-2010년 7월 14일

 

 

소류지 연꽃

이곳의 연꽃은 좀 늦게 피는 모양이다.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Mythen Op 25-7,
Die Lotosblume연꽃
Gerard Souzay/ Baritone
Dalton Baldwin/ Piano

http://cafe.daum.net/philrand/Jjkk/1370

 

지난 10일 백일봉님이 찍으신 사진이 더 좋아 다시 올린다.

 

 

 

 

소류지 옆 나무 밑에 '조정언비'가 있다. 

비 옆에 표지판을 세워 앞쥐 비문과 번역문을 기록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동래부 북쪽에 조정원이란 곳이 있는데, 항상 매마른 곳이어서 돌밭[石田]이라 했다.  

병인년 봄에 고향 사람 문응빈·송이후가 같은 동네 사람 강대문·공인득·유태섭·조완각·강운문·이유대 등과 함께 방죽을 만들 터를 사 들여 진흙을 퍼내고 터를 고르고 하니 관청에서도 어쩔 수 없이 도와 완성했다.

둘레가 400보나 되었고, 돈이 200꾸러미가 들었다.

이것은 적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것이니 이 조정언으로 논 400마지기가 옥토로 변했다. 

 

  

 

 

뒷면에도 비문도 있고, 번역문도 따로 적어 두었으나 원문을 읽을 수 없고, 번역문도 한 부분이 없어졌다.

비를 세운 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겠지만 살펴보지 못했다. 

 

 주변을 살펴 볼 겨를이 없어 잘 모르지만 '조정언'은 이 소류지를 말하는 것 같다. 

 

 

 

 

 

 

 

조리마을 공원 

 

 

 

 

300살 먹은 느티나무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주사를 맞고 있다.

 

 

 

마을을 지나서 홍법사로 간다. 

 

 

 

홍법사

절의 규모가 업청 크고, 건물들도 전통적인 사찰 건축 양식과 다르다. 

 

 

 법당

 

  

 

  

 

사각 연화 복연대좌 위에 용무늬·구름무늬·꽃무늬.

그 위에 둥근 투각에 구름무늬를 새겼다.

불교 조각으로는 아주 특이한 것인데, 그 상징이 무엇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 원 속에 교회 첨탑 꼭대기 삽자가 들어있는 것은 참 흥미롭다. 

 

 

 

 

 

 아미타대불을 조성하고 있다.

보살님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금년 음력 10월 10일 점안식을 한단다.

높이 1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아미타불상이라 한다.

지금은 상품중생의 수인만 보인다.

 

 

 

 

 

3년 동안 벙어리· 귀머거리· 장님

 

 

 

 

옛날 과년한 딸을 둔 집이 있었다.  마침 혼인 말이 있어 딸을 출가시키게 되었다.

부모는 늦게 시집가는 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슨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 귀먹은 척하고, 무슨 일을 보아도 못본 척할 것이며, 무슨 말이건 함부로 하지 말라"고 타일러 보냈다.

 

부모의 가르침을 단단히 마음에 새긴 딸은 시집가서 그대로 지키기를 3년 동안이나 했다.

 

시집 식구들은 답답했다. 새며느리가 귀머거리, 벙어리, 눈뜨고 못 보는 장님이니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가엽게 보이던 며느리가 차츰 바보 천치로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병신 며느리를 둘 수 없다해서 친정으로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시아버지를 따라 며느리는 가마를 타고 친정으로 향했다.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출가 외인'이라 해서 한 번 시집가면 평생을 시집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는데, 친정으로 쫓겨온다는 것은 여성으러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시집살이 잘 하려고 3년동안 귀머거리·벙어리·장님으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마지막에 소박맞는 몸이 되었으니. 

 

친정 마을 근처에 다다랐다.

일행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꿩이 숲 속에서 푸드득 날았다. 

이 광경을 본 며느리는 "어마, 아버님, 저기 우리 산에서 꿩이 날아갑니다" 했다. 

이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놀랍고 반가워 무릎을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우리 며느리가 벙이리일 리 없지" 하며 기뻐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꿩이 나는 것을 보았으니 장님이 아니요, 꿩이 나는 소리를 들었으니 귀머거리도 아니요, 또 말을 했으니 벙이리도 아님을 알았다.

그래서 하인을 시켜 꿩을 잡아 오게 하고 가마를 되돌려 며느리를 데리고 집으로 되돌아 간다.

 

며느리는 부엌에 들어다 꿩을 요리하면서 그동안 감싸주던 시아버지를 고맙게 여기고.

한편 학대하던 시집식구들에게 한방 반격을 가한다.

 

그 반격이 아래 민요에 담겨있다.

 

황해도 은률 동요 <외딸 아기>

무남독녀 외딸 아기/ 금지옥엽 길러내어/ 시집살이 보내면서/ 어머니의 하는 말이/ 사집살이 말 많단다.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말 없어야 잘 산단다.

그 말 들은 외딸 아기/ 가마 타고 시집 가서/ 벙어리로 삼년 살고/ 장님으로 삼년 살고/ 귀머거리 3년 살고/ 석 삼년을 살고나니/ 미나리꽃이 만발했네.

이 꼴을 본 시아버지/ 벙어리라 되 보낼 제/ 본가 근처 거진 와서/ 꿩 나는 소리 듣고/ 딸 아기의 하는 말이/ 에그 우리 앞 동산에/ 꺼더득이 날아난다.

이말 들은 시아버지/ 며느리의 말 소리에/ 너무 너무 반가와서/ 하인 시켜 하는 말이/ 가마채를 어서 놓고/ 빨리 꿩 잡아오라.

하인들이 잡아오니/ 시아버지 하는 말이/ 어서어서 돌아가자.

벙어리던 외딸 아기/ 할 수  없이 돌아가서/ 잡은 꿩 다 뜯어서/ 숱불 피워 구어다가/ 노나주며 하는 말이

 

날개날개 덥던 날개/ 시아버지 잡수시고

입숙 입숙 놀리던 입숙/ 시어머니 잡수시고

요 뉘구녕 저 뉘구녕(눈구멍)/ 휘두르던 뉘구녕은/ 시할머니 잡수시고

호물호물 옹문통은/ 시하내비 잡수시고

좌우 붙은 간덩이는/ 시누이님 잡수시고

배알 배알 곱배 알은/ 시아주밤 잡수시고

다리 다리 버릿는 다리/ 신랑님이 잡수시고 

가슴가슴 썩이던 가슴/ 이내 내가 먹었고나.

 

못할네라 못할네라/ 시집살이 못할네라/ 열 새 무명 열 폭 치마/ 눈물 받기 다 썩었네.

못할네라 못할네라/ 시집살이 못할네라/ 해주 자지 반자지로 지어입은 저고리도/ 눈물 받게 다 젖었네. 

 

구포에도 이런 노래가 전한다. 가사가 부분적으로 다르다.

"…… 툭툭치는 저 할개는 시아버님 주고지고/ 꼭꼭 쫓는 저 주둥이 시어머님 주고지고/ 구리구리 저 눈깔은 시누이님 주고지고…… "라 하였다.

 

손진태, <한국민족설화의 연구>, 을유문화사, 1987. 150~154쪽

 

본디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그곳을 극복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고통을 노래한 민요가 불교와 연결되어 절에도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웠다.

범어사에도 이런 것이 있다.

나쁜 것, 더러운 것은 보지도 발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교훈일 것이다. 

곧 탐욕[貪] ·성냄[嗔]·어리석음[癡]를 물리쳐야 한다는 불교적 교훈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보살님들이 불공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같다.

 

 

 

 강둑길을 걸어간다. 

 

 

아 가을인가?

요새는 도무지 계절을 알 수 없다. 

 

 

 

 

앞면은 경계표지석, 뒷면은 불망비다.

앞면에, "崇禎十二年乙卯仲冬 梁山 東萊 幷立"라 썼다. 숭정은 명나라 毅宗의 연호다. 崇禎 12년 乙卯는 1639년이다.

17세기 초 이곳이 동래부와 양산의 경계라는 것을 표시했다.

 

 

뒷면에는, "京居 嘉善大夫 梁公有夏貽惠 不忘碑"라 썼다.

서울에 사는 가선대부 양유하가 베푼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세운 비다.

 

 

 

마무리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