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관세음의 노래/ 서정주

추연욱 2022. 9. 18. 13:34

관세음의 노래

 

서정주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이 싸늘한 돌과 돌 사이

얼크러지는 칡넝쿨 밑에

푸른 숨결은 내 것이로다.

 

세월이 아주 나를 못 쓰는 티끌로서

허공에, 허공에, 돌리기까지는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파도와

이 사랑은 내 것이로다.

 

오고 가는 바람 속에 지새는 나달이여

땅속에 파묻힌 찬란한 서라벌.

땅속에 파묻힌 꽃 같은 남녀들이여.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새로 햇볕에 생겨나와서

어둠 속에 날 가게 했으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이 한 마디 말 님께 아뢰고, 나도,

이제는 바다에 돌아갔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앉아 계시는 석가의 곁에

허리에 쬐그만 향낭을 차고

 

이 싸늘한 바위 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은 내 것이로다.

 

'여백 > 시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관식/ 居山好  (0) 2022.10.27
朴鍾和/ 十一面觀音菩薩, 石窟庵 大佛  (0) 2022.09.18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申夕汀  (0) 2022.09.18
겨울산/ 황지우  (0) 2022.09.04
인연설/ 만해 한용운  (0) 2022.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