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6월 30일부터 에제르바이젠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6, 30.~ 7, 10.)는 현지 시각으로 7월 6일 오후,
"한국의 서원 Seowon, Korean Neo Confucian Academies"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한국의 서원"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 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도산서원을 포함한,
소수서원 · 병산서원 · 옥산서원 · 도동서원 · 남계서원 · 필암서원 · 무성서원 · 돈암서원 등 9곳이다.
"鄒魯之鄕"은
공자는 魯나라 사람, 맹자는鄒나라 사람이므로,
훌륭한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란 뜻으로, 안동은 곧 추노지향이라는 것이다.
"庚申十二月八日 ---"
시사단
■ 도산서원과 안동댐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곳이 試士壇이다.
조선 정조 16년(1792)에 최초로 지방에서 과거가 열렸다는 곳으로,
정조대왕이 가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사람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陶山別科를 보인 장소이다.
7천2백여 명의 선비들이 응시를 했는데,
임금이 친히 채점을 하여 급제한 11명의 유생들에게 위로연을 열어 주었다고 전해온다.
열정
도산서당이 있을 때부터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다.
열정이란 이름은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다"라는<易經>의 구절에서 따 왔다.
그리고 퇴계는 서당의 남쪽에 맑고 차며 단맛의 옹당샘이 있다"라며 "열정"과 관련된 시를 짓기도 했다.
우물은 마을이 떠나가도 옮기지 못하고, 아무리 퍼내도 줄지 않으며, 오가는 사람 모두가 마실 수 있다.
이와 같이 세상에 널린 지식을 부단한 노력으로 쌓아,
우물과 같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쪽문으로 들어가면 농운정사다.
도산서당 앞의 淨友塘
사립문으로 들어가면 도산서당이다.
進道門
■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퇴계는 본디 도산 남쪽에 도산서당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다가 그 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5년간의 공사로 1561년에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퇴계의 말년인 61세 되던 해였다.
그뒤 1570년에 퇴계가 돌아가자 서당의 뒤쪽에 위패를 모시고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1575년에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았으며 서원을 꾸미면서 대대적으로 중창하여 서원의 형식을 정립하였다.
건물뿐 아니라 서원을 지탱하는 내부규칙인 서원안도 마련되어 후에 다른 서원들의 모본이 되었다.
서원은 크게 12채의 건물로 구분되는데 앞쪽의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퇴계가 4년에 걸쳐서 지은 집들이다.
서당은 제자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고,
농운정사는 학생들이 숙식을 하던 기숙사이며 공부하는 방을 時習齋, 잠자는 방을 止宿寮, 마루는 觀瀾軒이라 불렀으며, 농운정사의 건물 전체 형태는 공부를 권장하는 뜻에서 "工"자로 지었다고 한다.
도산서원은 경사진 곳에 자리잡아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며 차례로 건물들이 있어 위계질서가 매우 정연한 서원이다. 서원은 본래 후학을 가르치고 선현을 제사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므로 건물들도 그에 합당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개 서원의 건물 배치는 前學後廟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앞쪽에 배움의 터인 강당을 두고 뒤쪽에 모시는 분의 사당을 두는 형식이다.
진도문 좌우로 서 있는 동 · 서 광명당
■ 2002년 7월 22일 오후 도산서원 尙德祠에 여교사 15명이 남자 교사 14명과 ‘나란히’,
의관을 갖추고 퇴계선생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를 참배하는 謁廟 의식을 가졌다.
상덕사에 여성이 출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알묘를 마친 여교사들은 典敎堂에서 서원의례를 배우고 선비정신에 대한 강의도 들었다.
퇴계 이후전교당에 여성이 공식적으로 출입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도산서원은 그동안 유교의 남존여비사상에 따라 여성들의 상덕사 출입을 허용치 않았으나,
4월 열린 堂會에서 여성에게도 알묘를 허용키로 결정했다.
■ 1970년대에 지은 옥진각에는 퇴계가 생전에 쓰던 베개와 자리, 명아주대를 말려 만든 지팡이인 청려장,
매화벼루와 서궤 등 손때가 묻어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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