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한국의 산사" 탐방 2/ 선암사- 2020년 3월 13일
7시 5분 부산서부터미널 출발 버스를 타서,
9시 45분,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 왔다.
조금걸어, 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선암사 가는 16번 버스, 9시 50분 출발.
10시 35분, 선암사 정류장에 왔다.
조계산이 보이고,
매표소, 10시 40분.
■ 선암사는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 있다.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일제의 한국 불교 말살정책으로 대처승이 많아졌다.
1954년 이승만정부는 ‘대처승은 절에서 물러가라’는 불교정화유시를 내린다.
비구승과 대처승의 다툼이 심해지자 정부는 1962년 비구와 대처를 통합한다는 형식으로 조계종을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에따라 대부분의 전통 사찰에서는 대처승들이 밀려나게 되자 이들이 반발하면서,
우리 불교계는 비구승의 조계종과 대처승의 태고종으로 나뉘게 된다.
1970년 태고종은 태고 보우(1301~1382)를 종조로 하여 태고종을 등록하고 선암사를 태고종의 총림으로 발족시켰다.
현재는 조계종 소유의 절로 등록되어 있으나 분규사찰로 규정되어 조계종 · 태고종 어느 쪽에서도 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법적 재산 관리권은 순천시가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다른 여러 절들이 불사에 열을 올려도, 선암사는 그럴 여력이 없어 다행스럽게도 전통적인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잇다.
1.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호남을 비보하는 3대 사찰인,
3암(광양 백계산 운암사, 영암 월출산 용암사, 조계산 선암사)의 하나로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세운 비로암을, 통일신라 경덕왕 원년(742)에 도선이 재건했다는 설이 있다.
통일신라 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이 있어 도선의 창건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2. 고려 선종 9년(1092) 대각국사 의천이 크게 중창했다.
의천은 문종의 둘째 왕자로 출가한 뒤 천태종을 개창한다
선암사를 중창할 때는 대각암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이 의천에게 하사한 금란가사, 대각국사 영정, 의천의 부도로 전해오는 대각암 부도가 선암사에 전해온다.
3. 고려중기 산너머 송광사에서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계를 비판하여 정혜쌍수를 네세우며 불교 개혁을 부르짖고 있었다.
송광사가 사세를 떨치는 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것 같다.
4. 조선 선조 30년(1579) 정유재란으로 사찰이 거의 불타고 이후 조금씩 중수되었다.
5.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 약휴(1664~1738)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고, 교학이 융성하였다.
이후 크고 작은 화재를 만나 여러 차례 중창 불사가 있었다.
6. 영조 35년(1759) 봄 화재를 당해 계특대사가 중창하였다.
화재 발생이 山强水弱의 지세 때문이라 하여 화재 예방을 위해 영조 37년(1761) 산 이름을 ‘淸凉山’, 절 이름을 ‘海泉寺’로 바꾸었다.
7. 그런데도 순조 23년(1823) 다시 화재가 일어나자 해붕, 눌암, 익종 스님이 지휘하여 대대적으로 중창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고,
산이름과 절 이름도 조계산과 선암사로 원래대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선암사의 건물은 대부분 이때 지은 것으로 당시에는 전각 60여동이 있었다고 한다.
9. 1948년 여순반란사건, 한국전쟁으로 많은 전각이 불타고 지금 20여동이 남아있다.
부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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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암사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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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 한쌍은 모두 남자상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형미가 빼어난 갑진년(1904) 나무장승이 있었다.
이 장승은 1907년이래 70년 동안 이 자리를 지킨 국내 최고의 나무장승이었다.
보통 나무장승은 10년 정도 지나면 썩어버리는데 이 장승은 조직이 치밀한 밤나무로 만들어 쉽게 썩지않았고,
지금은 설선당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의 것은 정묘년(1987)에 새로 세운 것이다. 역시 밤나무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갑진년 나무장승을 모방했다.
몸통은 붉은색으로 칠했고, “護法善神 · 放生淨界”라는 글씨가 씌여있다.
작은 무지개다리
● 큰무지개다리[昇仙橋](보물 제400호)
큰무지개다리는 길이 14m, 높이 7m, 너비 3.5m로,
길게 다듬은 30여개의 장대석을 연결하여 홍예석을 드리우고,
홍예석 양쪽에 잡석을 쌓아 계곡 양쪽의 흙길을 연결했다.
기단부는 자연 암석을 그대로 이용하여 홍수에 쓸릴 염려가 없도록 하였다.
홍예석 중간에는 이무기돌을 돌출시켜 장식적인 효과와 재해를 막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축조했고,
순조 25년(1825) 해붕스님이 중수했다.
보성 벌교의 홍예(보물 제304호)도 선암사 스님들이 축조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무지개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원형의 승선교가 물에 비치면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그 안에 강선루가 있다.
먼저 작은무지개다리, 그 다음 큰무지개다리가 나온다.
두 다리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축조 방법이나 모습은 같다.
이무기는 辟邪를 위한 주술적 장치이다.
● 강선루
아래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지만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팔작지붕집이다.
초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30년대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측면 기둥 중 하나가 계곡에 담겨 있는 것이 특이하다.
강선루 바닥을 흘러가는 작은 계곡에 놓인 다리 선원교
강선루 누각 아래를 지나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는 仙源橋다.
"十四年六月竣功"앞에 두 자가 더 있는 듯한데 읽을 수 없다.
● 三印塘은 타원형의 못 가운데 알모양의 섬이 있다.
도선국사가 만들었다고 하지만 증명하기 어렵다.<大覺國師 重創建圖記(고려 의종 원년 1147)>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후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단장되었다.
삼인은 三法印(諸行無常, 諸法無我, 涅槃寂靜)을 말하고,
긴 타원형의 못은 覺他利他,
가운데 알 모양의 섬은 自覺自利를 상징한다.
삼인당 맞은편에 찻집
● 선암사를 지키는 수호신인가?
차[茶]밭
선암사 건물 배치도
● 선암사 일주문, 11시 20분.
일주문 계단 소맷돌 돌짐승
안에는 古淸凉山海川寺란 전서체 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는 청량산 해천사라 했다"는 말이다.
楓觀散人 楓觀 安宅熙 書, 현판은 안택희라는 사람이 썼다고 한다.
일주문과 종루 사이에 천왕문 · 금강문이 없다.공간이 좁기 때문인 것 같다.
● 범종루
범종루 앞에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라 쓴 긴 현판이 걸려있다.
叢林이란, 참선수행을 위한 선원,
교학을 강론하기 위한 강원,
계율 전문 교욱기관인 律院
원로 스님들의 거처인 노전,
주지실,
취사, 세탁을 위한 후원,
일반 신도들을 위한 종무소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많은 승려와 속인들이 화합하여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 만세루
만세루는 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다.
단청 없이 나무기둥 사이에 흰 벽을 두었다.
정면에 "六朝古寺"란 현판이 걸려 있다.
중국 선종의 제6조 慧能(638~713)이 조계산에 살았던 것처럼,
선암사가 조계산에 위치한 인연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六祖"를 "六朝"로 표기한 것으로 짐작된다.
글씨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이 썼다고 전한다.
안에서 본 범종루
범종루에는 범종은 없고, 범종은 다른 범종루에 있다.
● 尋劍堂
"尋劍堂", 칼을 찾는 법당이란 뜻이다.
번뇌를 끊는 것을 상징한다.
화엄계통의 절에는 심검당이 있다.
선암사는 옛날부터 불이 잘 났다.
그래서 한때는 절 이름을 海泉寺하고도 했다.
절집 벽 군데군데 "海, 水" 등 글자를 새겼다.
군데군데 연못을 만들었다.
또 불과 관계있는 석등은 세우지 않았다.
설선당
선암사 삼층석탑
● 대웅전
조선 순조 25년(1825)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면,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집이다. 막돌을 1m 정도 쌓아올려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아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대웅전" 현판은 영안부원군 金祖淳(1764~1831)이 섰다. 글쓴 이의 이름을 두인처럼 썼다.
왕이나 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외람되게 하였다.
김조순은 순조대왕의 國舅(왕의 장인)로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인물이다.
내부는 층단을 이룬 우물천장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독존으로 모셨다.
조선 순조 28년(1828) 5월 龍岩 慧彦선사가 지은 글 <順天府曺溪山仙巖寺第六創建記>가 목판에 새겨져 대웅전 벽에 걸려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순조 23년(1823) 늦봄에 불이나 대웅전을 비롯한 절집 1천 1백여 칸과 불상과 불경도 모두 불타 버렸다.그러자 곧 절의 장로인 海鵬 展翎 대선사와 익종 선사, 용암 선사 등이 중심이 되어 곧 중창을 하게 되었다.그리하여 5년만에 옛 모습을 능가하는 복원불사를 이루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석가모니불상도 이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八相殿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집이다. 8상도를 모시고 있다.
정면 후벽에 화엄경변상도가 걸려있다.
이는 정조 4년(1780)에 가로 2.47m 세로 2.86m의 종이에 <화엄경>의 설법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우리나라에 세폭이 있는데, 송광사와 쌍계사에 있다.
佛祖殿
각황전
● 선암백매(무우전매) · 선암홍매(천연기념물 제488호)
선암백매는 칠전선원과 무우전 사이 길 한가운데 있고,
선암홍매는 무우전 돌담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다섯 번째 나무다.
고려시대 중건한 <선암사 상량문>에 와룡송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때 소나무와 함께 백매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나이 600살이 넘고, 나무의 높이는 12m, 나무의 폭은 16m에 이른다.선암백매는 현존하는 고매 중 가장 건강하고 웅장한 매화다.
선암백매는 전남대학교의 大明梅, 백양사의 古佛梅, 지실마을의 溪儅梅, 소록도 水楊梅와 함께 호남 5매로 꼽힌다.
응진전
● 방지
장경각
祖師堂
● 臥松
三星閣
● 뒷간[解憂所]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해우소이다.
남녀 각각 8명이 한꺼번에 쓸 수 있다.
깊이는 10여m이다. 1층 바닥에도 햇빛이 들고 바람이 통하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않는다.
낙엽, 왕겨와 함께 자연 발효된 배설물은 퇴비로 쓴다.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고리를 실생활에 구현한 곳이다.
격실 칸막이가 목 높이밖에 안돼서 고개를 돌리면 옆 사람의 뒤통수가 보인다.
아직까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해우소는 영월 보덕사, 송광사, 고산지대 바위틈을 이용한 강원도 홍천 수타사가 있다.
● 일주문, 12시 45분.
일주문을 나왔다.
순천 가는 1번 버스, 2시 20분 출발
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 3시 15분.
3시 20분, 순천 종합버스터미널
4시 20분 출발 버스를 타서,
7시 부산 서부터미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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