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문화유산 답사자료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추연욱 2016. 3. 8. 18:24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강릉 객사문이란 이름으로 오랜동안 주 건물들이 헐리고 없어진터에 홀로 남아있다가,

2014년 강릉임영관삼문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강릉 임영관 삼문은 강릉부 객사의 대문이다.

고려 태조 19년에 삼문은 고려 말엽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영관이란 제액은 공민왕이 썼다고 하며, 임영관을 철거할 때 삼문에 옮겨 걸었다고 한다.


객사는 중앙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정청에 국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셔놓고,

지방 관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이 객사는 중앙에서부터 임금의 뜻을 받들고 내려온 관료들을 머물게 하며 접대하던 건물이기도 하다.


객사는 임금의 상징인 전패를 모신 감이 있는 主舍를 중심으로 동서 좌우에 익사가 놓이고,

외삼문과 내삼문을 거쳐 깊숙이 자리 잡으며,

부엌, 곳간, 온돌방으로 구성된 고직사가가 조성되었다.

주변에 휴식과 여흥을 위한 누정들을 조성하고,

대부분 관아와 함께 하며, 가장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이 삼문은 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두 칸의 평삼문으로 길게 뻗은 장연의 맞배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문이 설치된 중앙의 기둥은 각주로 하고,

자연석 주춧돌 위의 전후 열의 기둥은 배흘림이 강한 원주로 된 독립기둥으로 이루어져 간결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요한 공간을 간결한 부재와 구성으로 완성한 이 건축은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조사당에 사용된 것과 같은 영조척이 쓰였다.

기둥 위로부터 높이 1/3 지점이 가장 직경이 큰 배흘림이 사용되어 당시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강릉부 객사는 모두 83칸의 규모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헐리고, 이 삼문만 남게 되었다. 이 시기, 삼문마저 해체 수리하여 하부 구조가 변형되었다.

객사의 헐려진 건축의 부재 중 일부는 강릉 남산의 오선정, 금산의 월화정, 경포의 방해정에 쓰였다고 한다.


강릉 시청이 임영관지 앞에 자리잡고 시청 청사의 확장으로 강릉 임영관 삼문은 오랫동안 시청사 뒷편에 외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뒤 강릉시청과 문화재청의 노력으로 강릉시 청사는 신축 이전하고 이 지역은 일부 복원되어 오늘이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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