謙齋 鄭敾(1676~1759)은 영조 9년(1733) 6월 경상도 청하현(현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현감에 제수된다. 여기서 2년 남짓.
그는 1734년 한 해 동안 <內延三龍湫> <雙溪立岩> <聖留窟> 등 명작들을 쏟아냈다. <內延三龍湫>는 내연산 12폭포 중 네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인 潛龍 觀音 延山폭포 등 3곳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용추는 관음폭포 밑에 만들어진 못.
화면에는 높이 수십~수백 m의 깎아지른 암벽이 빼곡하다. 암벽은 서릿발처럼 날카롭게 붓질하는 상악준(霜鍔皴)과 도끼로 나무를 쪼개거나 끌로 판 듯한 모습을 남기는 부벽준(斧劈皴)의 화법으로 표현했다. 가까운 암벽은 테두리를 짙게, 먼 것은 엷게 나타내 원근감을 주었다. 오른쪽 암벽 중턱에 나 있는 좁고 위태로운 벼랑길은 협곡 속으로 사라져 깊고 그윽한 느낌을 더한다.
愚潭 丁時翰·(625~1707)은 <산중일기>에서 상생폭포를 '사자쌍폭'이라 불렀는데, 정면에서 가만히 살펴보니 몸을 웅크린 사자를 닮은 듯도 했다. 우담은 또 연산폭포와 관음폭포, 상생폭포를 상·중·하 삼폭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상생폭포의 왼쪽 아래에 암봉이 있는데, 그 위에서 춤추던 기녀가 실족해 떨어져 죽은 뒤 '妓花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연산폭포 암벽 겸재 각자-. 정선 갑인(1734)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