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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 암자 답사- 2012년 3월 4일

추연욱 2012. 3. 5. 00:09

 

은해사 암자 답사- 2012년 3월 4일

겨울과 봄, 눈과 비. 그리고 안개 속.

 

은해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의 길잡이 울산의 바람,

bonami, 미산, 유심초, 자리.

 

영천 시외버스터니널에서 8시 20분 출발하는 220-1번 버스를 탔다.

나 혼자 타고,

영천군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에 왔다. 8시 55분이다.

 

 

일주문에서 은해사로 가는길

 

 

산문을 들어서자 이런 설명이 붙어있다.

"은해사 일주문을 지나 보화루까지의 울창한 숲길을 금포정이라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1714년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에 일주문 일대의 땅을 메입하여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소나무숲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 300년생의 높이 10미터의 송림이 2km정도 울창한 이곳에는 일체의 생명을 살생하지 아니하였다 하여

禁捕町이라고 한다.

또한 2007년에는 과거의 식수를 기리기 위해 금강송 1080주를 경내지에 식재하고,

2008년에도 1080주를 금포정 경내지 곳곳에 식재하였다."

 

 

 

 

사랑나무(연리목)

 

 

부도밭

 

 

大小下馬碑 

은해교를 건너면 초월적인 세계로 들어간다.

사바세계에서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자 사람, 가난한 사람, 잘 난 사람, 못난 사람,

여기서는 아무 의미 없다.

 

 

은해교에서 이쪽 저쪽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경칩, 이 산속에도 겨울과 봄이 인수인계하는 중이다.

 

 

 

보화루

금강문을 겸하고 있다.

 

 

 

 

은해사 대웅전이 없어졌다.

대웅전을 찾아 이리저리 한참 찾았다.

 

지나가는 보살에게 물어보니,

극락보전으로 현판을 바꾸었다 한다.

본존불이 아미타불이기 때문이라 한다.

 

내가 대웅전을 찾아 헤맸다 하니,

아주 대책없는 사람을 만난 듯,

"이렇게 찾기 쉬운데, 저기 있잖아요"라 한다.

 

대웅전이면 어떻고 극락전이면 어떠랴?

 

그건 나에게만 중요하지.

 

추사  김정희가 쓴 대웅전 현판 

 

현판은 성보박물관에 있을까?

박물관은 잠겨있다.

"보화루"란 현판도 추사가 쓴 것인데,

배낀 듯하다.

 

 

 

 

 

 

극락보전 마당에 있는 이 향나무는 보호수(09-07-03)다.

높이 10m, 가슴높이 둘레 1.54m다.

 

 

 

불이문

이상하게도 누각과 불이문이 나란히 있다.

 

 

불이문에 그려진 비천상이 하 아름다워 


 

은해사에서 가장 정갈하고 그윽한 곳,

들어가지는 못하고 기웃거리기만 했다.

 

 

 

10시쯤 되어 벗님들이 나타났다. 

 

 

 

 

산내 암자들

 

 

 

 

 

 

 

 

백흥암으로 가는길,

임도를 따라간다.

 

 

 

 

 

등산로를 따라 800m 가면 인종의 태실이 있다.

조선 제12대 왕 仁宗(1515~1545)은 1544년 왕위에 올라 8개월만에 죽는다.

팔공산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백흥암 뒷산에 胎를 묻었지만 명당의 덕은 입지 못했는가 보다. 

 

 

우리는 임도로 간다.

 

 

백흥암, 10시 50분.

일년에 두 번, 사월초파일과 백중날만 일반에 공개한다.

그런데 우리는 바람 님의 인연으로 오늘 이곳에 들어왔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쓴 현판 보화루



보화루 안에 ‘百興蘭若’이라 쓴 현판이 보인다.

瓛齋 朴珪壽(1807~1877)가 썼다.

 

극락전 쪽에서 바라보면 추사가 쓴 "山海崇心"이라 쓴 현판도 있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고.

그거 누가 모르나?

그게 부처님의 높고 깊은 마음이라면?

 

 

극락전(보물 제790호)

 

극락전 · 심검당 · 보화루 · 진영각이 네모진 공간을 이루고 있다.

심검당과 진영각의 처마가 극락전의 귀기둥 안까지 들어와 아늑한 공간을 이루고있다.

 

 

극락전에 들어가 자세히 살펴 보았다. 

만져 보기도 했다.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다.

 

 

극락전 수미단(보물 제486호)

 

 

 

극락전 안에서 사진을 찍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위의 사진들은 <다음 블로그 허수아비의 세상나들이에>서 빌렸다.

 

 

극락전 뜰에서 보화루를 내려다 보았다.

 

 

* 진영각의 편액 ‘十笏方丈’과 주련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十笏’이란 홀 열 개를 이어놓은 방의 길이, 곧 사방 1丈(10尺)되는 작은 방을 뜻한다. 산중의 어른인 방장이나 그가 쓰는 방을 가리킨다.

 

진영각 주련에,

 

我觀維摩方丈室 유마거사의 방을 보니

能受九百萬菩薩 능히 구백만 보살을 받을 수 있겠네.

三萬二天獅子座 삼만 이천 사자좌를

皆悉容受不迫迮 모두 들이고도 비좁지 않아

又能分布一鉢飯 한 발우 밥을 나누어도

饜飽十方無量衆 무량 대중 배 불리리라.

 

이 글은 송나라 문인 蘇軾(1037~1101)의 <石恪畵維摩頌>이라는 글 중 6구절을 딴 것이다.

그 출전은 <維摩詰所說經>이다.

 

 

 사명당 영/ 진영각

 

 

香積堂

이 향적당 안에 공양간이 있다.

몇몇 스님과 보살,

남자라고는 bonami 님, 바람 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뿐.

이 금남의 지역에 우리는 정갈한 점심 공양을 했다.

 

정갈한 비구니의 절,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많이 주눅이 들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미산, 유심초, 자리 세 분은 설거지를 했다.

꽤 오래 걸린 걸 보니 많은 일을 한 모양이다.

  

마치고 손을 씼는 장면이다.

 

 

출입을 금하는 길을 따라 극락전으로 들어간다.

 

 

 

이 목탁은 예배용이 아니고, 공양시간을 알리는 것일 게다.

 

 


 

 

 

절을 돌아보았다.

 

 

글씨가 하도 이뻐.

 

 

앙증스러운 건물 산신각,

왼쪽은 영산전이다.

 

 

 

 

백흥암을 나와 중암암을 향한다.

 

 

 

 

안개 자욱한 길,

우리만의 길이다. 

 

 

 

 

 

 

 

 

 

 

큰바위얼굴?

 

 

건들바위

 

 

 

 

 

이 돌문으로 들어가면 중암암이다. 12시 50분.

이 지역에서는 돌구멍절이란 이름이 더 유명하다.

 

 

 

 

 

 

 

 

 

 

 

 

 

 

만져져 수 있는 풍탁, 여기 말고 또 있을까?

 

 

"知足常樂" 만족함을 알면 늘 즐거우니라.

 

 

 

 

 

 

중암암삼층석탑은 절에서 조금 올라간 능선에 있다.

 

 

 

 

 

 

 

 

 

극락굴로 들어간다.

 

 

 

 

 

 

 

 만년송

사진/ 바람

 

 

 

 

 

 

 

三印巖

 

 

 

 

 

 

 

 

 

 

 

우리는 팔공산 능선을 따라 갓바위로 간다.

 

 

 

 

능선은 겨울이다.

눈도 제법 맞았다.

 

 

 

 

 

 

 

선본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2시 40분.

 

갓바위로 올라간다.

 

갓바위, 3시 15분.

문화재청 공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내려가는길. 

 

 

 

세심정, 3시 50분.

 

이쯤에서부터 눈은 비로 바뀌었다. 제법 많이 온다.

깃발들 때 비가 걱정이지, 지금 비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관암사, 4시 20분. 

 

 

 

 

 

 

갓바위정류장에 도착하여,

4시 40분 출발하는 401번 버스를 타고,

5시 30분 평화시장에 내렸다.

 

 

닭똥집으로 푸지짐한 저녁을 먹었다. 

 

 

여기는 동대구역이 가까운 곳이니, 집에 가는 일도 걱정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