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포로수용소- 2010년 12월 28일
이 문 안이 무도장이란다.
포로교환협정 조인으로 반공포로들에 대한 강제송환 분위기가 고조되자
제네바협정 내용 중에 “전쟁 포로는 그들을 관리하는 국가의 주권에 속한다”는 규정을 발견하여 이를 ‘한국의 주권에 속할 수도 있다’라고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석방을 합법화했다.
이리하여 1953년 6월 18일~20일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한다.
한국군의 묵인과 협조 아래 반공포로들은 포로수용소를 탈출한다.
반공포로는 35,698명 중 27,388명 석방했다.
1. 포로는 왼편에서 들어와서 바른편으로 빠지게 되어있다. 네 사람의 공산군 장교와, 국민복을 입은 중공 대표가 한 사람, 합쳐서 다섯 명. 그들 앞에 가서, 걸음을 멈춘다. 앞에 앉은 장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동무, 앉으시오.”
명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
“중립국.”
그들은 서로 쳐다본다. 앉으라고 하던 장교가, 윗몸을 테이블 위로 바싹 내밀면서, 말한다.
“동무, 중립국도, 마찬가지 자본주의 나라요. 굶주림과 범죄가 우글대는 낯선 곳에 가서 어쩌자는 거요?”
“중립국.”
“다시 한 번 생각하시오.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정이란 말요. 자랑스러운 권리를 왜 포기하는 거요.”
“중립국.”
이번에는 그 옆에 앉은 장교가 나앉는다.
“동무, 지금 인민공화국에는, 참전 용사들을 위한 연금 법령을 냈소. 동무는 누구보다 먼저 일터를 가지게 될 것이며, 인민의 영웅으로 존경받을 것이오. 전체 인민은 동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소. 고향의 초목도 동무의 개선을 반길 거요.”
“중립국.”
그들은 머리를 모으고 소곤소곤 상의를 한다.
처음에 말하던 장교가 다시 입을 연다.
“동무의 심정도 잘 알겠소. 오랜 포로 생활에서, 제국주의자들의 간사한 꾀임수에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용서할 수 있소.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오. 공화국은 동무의 하찮은 잘못을 탓하기보다도, 동무가 조국과 인민에게 바친 충성을 더 높이 평가하오. 일체의 보복행위는 없을 것을 약속하오. 동무는--.”
“중립국.”
중공 대표가 날카롭게 무어라 외쳤다. 설득하던 장교는, 증오에 찬 눈초리로 명준을 노려보면서 내뱉었다.
“좋아.”
눈길을, 방금 도어를 열고 들어서는 다음 포로에게 옮겨 버렸다.
……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 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2.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 호는,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이 들어찬 동지나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
가까운 지리에서 보니 분명히 갈매기 두 마리는 거기 있었다. 희끔한 그림자 둘이 어렴풋이 떠 있었다.
명준은 벌떡 일어나서 뚜벅뚜벅 계단을 짚어 올라간다. 뱃머리 쪽으로 하늘을 쳐다본다. 별이 쏟아지듯 한 밤이다. 아직 달이 있는데 별빛이 그토록 눈부시다. ……
“갈매기가 따라 오는군요.”
“뱃사람들은 저런 새를 죽은 뱃사람의 넋이라고들 하지. 뱃사람을 잊지 못하는 여자의 마음이라고도 하고, 흔히 저런 수가 있는데, 한 번은 영국에서 캘커타까지 따라온 적이 있어. 그 새가 없어졌을 때 서운하더군. 대단한 정성 아닌가. 아마 메인 마스트에서 주무실 걸.”
선장이 창으로 목을 내밀고 빠끔히 위를 쳐다본다.
“흠, 아가씨들이군. 이왕이면 아가씨들이라 하는 편이 로맨틱하잖아? 시스터 갈. 하하하.”
3. 또 속이 올라왔다. 이를 악물고 쓴 침을 삼켰다. 갈갈. 갈매기 우는 소리가 났다. 날 듯이 창가로 달려가, 윗몸을 밖으로 내밀며 고개를 치켰다.
그들은 잠시 쉬려는 듯 마스트에 매달려 있었다. 저것들 때문이지. 어처구닌 없는 일이 아닌가, 갈갈. 깨륵, 깨륵. 울음소리는 비웃는 듯 떨어져온다. 그는 목이 아파서 고개를 돌렸다. 섬뜩한 것을 한 이 불길한 새들. 허공을 한참 쳐다보던 눈이 찬장에 달린 거울에 멎었다. 눈에 살기가 있다. 오른편에 사냥총이 세워져 있다. ……
두 마리 가운데 아래쪽, 가까운데 앉은 갈매기가 총구멍에 사뿐히 얹혀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그 흰 바다새는 진짜 총구 쪽을 향하여 떨어져올 것이다. 그때 이상한 일이 눈에 띄었다. 그의 총구멍에 똑바로 겨눠져 얹혀진 새는 다른 한 마리의 반쯤한 작은 새였다.
4.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은혜가 한 말. 총공격이 다가선 줄 알면서도 두 사람은 어느 때하고 다르지 않았다. 사랑의 일이 끝나고, 그들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저-.” 갚은 우물 속에 내려가서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누구의 목소리 같지 않은 울림이 있는 소리로 그녀가 불렀다.
……
“딸을 낳을 거예요. 어머니가 나는 딸이 첫 애기래요.”
총구멍에 똑바로 겨눠져 얹혀진 새가 다른 한 마리의 반쯤 한 작은 새인 것을 알아보자 이명준은 그 새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작은 새하고 눈이 마주쳤다. 새는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눈이었다. 뱃길 내내 숨바꼭질해 온 그 얼굴 없던 눈은. 그때 어미 새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우리 애를 쏘지 마세요. 빰에 댄 총몸이 부르르 떨었다.
5.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자, 이제는? 모르는 나라, 아무도 자기를 알 리 없는 먼 나라로 가서, 전혀 새사람이 되기 위해 이 배를 탔다. 사람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 성격까지도 골라잡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
무덤 속에서 몸을 푼 한 여자의 용기를, 방금 태어난 한 아기를 한 팔로 보듬고 다른 팔로 무덤을 깨뜨리고 하늘 높이 치솟은 여자를, 마침내 그를 찾아내고야 만 그들의 사랑을.
6. “석방자가 한 사람 없습니다.”
“응?”
“지금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이 신고해 와서, 인원을 파악해 보았습니다만 배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야 없다는 게?”
“미스터 리 말입니다.”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마스트에도, 그 언저리에도.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 버린 모양이다.
최안훈 <광장>에서.
<최인훈 전집>, 1976년 5차 개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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