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떠나는 낙동강 가을 탐사도보-2010년 11월 5~7일
제1일-2010년 11월 5일
오후 2시 40분 분천역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동해남부선, 영동선을 타고 다섯 시간 반을 달려왔다.
이 길은 차가 느려 참 지루하고 피곤한 길인데 준비한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걷는다.
우리는 낙동강을 건넌다.
풍애터널이 우리의 길을 막고 있으니 바지를 걷어올리고 강을 건너야 한다.
또 한번 더 건넌다.
물을 깊고 차다. 바닥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건넌다.
강바닥의 자갈돌에 발바닥은 불이 났다.
물을 건너는데 혼이 났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길이 더 아름답다.
모두들 즐거운 모습이다.
이런저런 풍경을 바라보며 걷는다.
오늘 분천역에서 현동역까지 9.2km를 걸었다. 낙동강을 두 번 건넜다.
다시 차로 2.5km를 달려 명산휴게소에 있는 명산랜드에서 오늘을 마무리했다.
제2일-2010년 11월 6일
새벽같이 일어났다. 7시 02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승부역으로 간야한다.
오늘 오전은 추억의 수학여행이다.
평생 처음으로 역장실에 들어가 보았다.
현동역 역장님이 우리들에게 커피를 마시게 해 주었다.
싸늘한 아침, 작은 역의 따뜻한 커피 한잔, 그 멋과 맛을 표현할 언어가 나에게는 없다.
우리 52명으로 작은 역이 새벽부터 붐볐다.
우리는 여기서 기차를 타고 다시 북쪽으로 20분 동안 달린다.
우리가 떠나면 역사는 다시 정적 속으로 빠져들 것 같다.
청량산을 지나 태백을 향해 나란히 북상하던 35번국도는 봉화군 소천면 영동선 철도의 현동역에 오면 낙동강과 헤어진다.
현동역에서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의 오지 승부역 사이의 16.5km(철로)가 낙동강 협곡 구간이다.
협곡 구간(남쪽으로부터 현동역 - 분천역 - 양원 임시 승강장 - 승부역)은 철도를 따르는 도로가 아직도 없다.
자동차 탄 사람의 접근을 거부한 채 50년 가까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왔다.
거기다가 이곳에는 오염원이 없어 물은 맑고 깨끗하다.
협곡을 지나는 철도 영동선(영암선·영주~철암)은 1955년 말에 완공되었다.
전구간(87km)의 23%(20km)가 다리(55개)와 터널(33개)이다.
철로는 물가의 절벽을 다듬어 겨우 확보한 공간에 놓여 있다.
현동에서 차례로 지나는 분천 · 양원 · 승부 등 강변의 세 오지 역은 낙동강 기차 여행(총 1시간 45분)의 백미 구간이다.
차창 밖 풍경은 기차를 타지 않으면 도저히 감상할 수 없는 진짜 ‘비경’이다.
다음 분천역, 우리가 어제 내린 곳, 다시 지나간다.
낙동강은 분천에 와서야 비로소 조금 넓어지고 유려한 흐름을 보인다. 여기서 부터모래사장이 보인다.
그중에도 최고 오지는 간이역에도 들지 못해 驛舍도 없는 봉화군 소천면 냉천리 임시 승강장 양원역이다. 영주에서 65.5km쯤 된다.
36번 국도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 산길(6km)이 있기는 해도 한겨울에는 통행이 끊어져 한동안 고립된다.
그래서 한겨울이면 주민의 절반이 외지로 나간다. 이때 양원의 주민과을 외부 세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가 철도다.
양원 다음 역은 승부역이다.
35번국도 변의 봉화군 석포역에서 다리를 여러 개 건너 험한 산길로 12km나 가야 만나는 곳이다.
대추나무가 드문드문 선 고랭지 채소밭이 산비탈을 장식한 협곡 가운데 있다.
협곡의 산기슭을 파낸 자리에 들어선 역사의 바위벽에는 한 역무원이 써 놓고 떠난 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 쓴 글이 있다. 이 글을 쓴 역무원의 마음은 우리가 느끼는 낭만과는 다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이 시 아닌 시가 승부역 그 자체이고, 이제 역의 중심부에 버젓이 돌비로 서있다.
승부역은 이제 한겨울 운행하는 ‘환상선 눈꽃 열차’ 덕분에 유명해졌다.
승부역과 길을 잇는 것은 출렁다리이다.
2002년 여름 태풍 루사 때 휩쓸려 사라졌다가. 그후 언젠가 다시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승부역
8시 28분에 출발하는 남행열차를 탈 때 까지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안개 자욱한 출렁다리를 건너 그 유명한 승부역 눈꽃축제장을 둘러본다.
눈꽃 대신 안개 속의 단풍과 흐릿하게 모습을 들어내는 산들.
승부역 뒤 작은 봉우리에 "영암선개통기념"이라 쓴 기념비가 있다.
초대대통령 리승만이 썼다.
용관바위
전주이씨 7대조인 節忠장군이 이조때 간신들의 모함으로 산세가 험한 이곳 승부로 귀양을 오게 되어 재를 넘으려고 할 때 천둥과 번개가 심하게 쳐서 주막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다.
꿈에 용이 나타나 “나는 이곳 굴통소에 살고 있는 용이니라. 이 재는 나의 등이고 제 어머 바위는 나의 갓이니 감히 이 재를 넘어 바위를 만지고 지나가는 자는 모구 살아가지 못할 것이니 재를 넘지 말고 낙동강으로 돌아서 가라”고 하자 그대로 행하여 무사했다 한다.
그후 절충장군은 이 비위를 龍冠바위라 하고 매년 제를 올려 자자손손 큰 복을 받았다고 전한다.
역 건너 우뚝 선 바위가 용관바위고 용관바위 앞 깊은 물이 窟筒沼이며 용관바위 등은 용등재다.
그후 어려움이 있을 때 용관바위를 향해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다시 내려가는 기차를 타고 임기역까지 간다.
추억의 수학여행
8시 55분 임기역에 도착했다. 승부역에서 27분을 달려왔다.
여기서부터 걷는다.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한다.
임기교
임기소수력발전소 댐
공포의 말벌집이다. 말벌에 한해서는 우리는 학습효과를 지니고 있다.
벌집수시고 물에 잠수할까 라 농담할 만큼 여유로웠다.
길가 바위에 "永慕臺",
"先墓洞石門"이라 썼다.
그러고 보니 석문도 있다.
조금 전에 본 기와집과 관련이 있는 듯하지만 어떤 유물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남겨두어야 다시 찾지.
봉화군 명호면 눌산리 서낭당이다.
신체는 당산나무와 남 · 녀근석이다.
"명호테마공원"
이런 돌비가 서있다.
오늘 현동역에서 청량산 입구 명호까지 23.8km를 걸었다.
봉화군 명호면 도천리 명호현대팬션에서 오늘밤을 보낸다.
제3일-2010년 11월 7일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호초등학교 은행나무
명호현대팬션에서 걷다가 다시 차를 타기도 하여 관창2교에 도착했다.
관창2교의 아침
관창2교에서 이나리길을 따라 걷는다.
관창2교에서 청량산 입구까지는 3.5㎞다.
봉화와 안동에 걸쳐 있는 이 길은 낙동강 상류의 최고 산책로로 꼽힌다.
퇴계는 이 길에서 바라보던 풍경을 '그림 속' 같다 했고, 이 길을 지나는 것을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는 낙동강을 이나리강이라 했다. '이나리'는 ‘두개의 강이 만난다’는 뜻이다.
行過 洛東江
百轉靑山裏 閑行過洛東 굽이굽이 청산 속 돌고 또 돌아 한가로이 낙동강을 지나노라니,
草深猶有路 松靜自無風 풀숲은 우거져도, 길이라 있고 솔바람 고요터니 바람이 잔다.
秋水鴨頭綠 曉霞猩血紅 청둥오리 머린 양 푸른 가을 물 성성이 피 빛으로 붉은 아침놀
誰知倦遊客 四海一詩翁 뉘 알랴. 유람에 지친 나그네. 온 누리 떠도는 시인인 줄을.
李奎報(1168~1241)
청량산 도립공원 들어가는 입구다.
돌에 '낙동강예던길'이라 썼다.
퇴계 이황은 자신이 살던 곳 도산에서 이 길을 걸어 청량산을 자주 찾았다.
'농암선생 시가비'에 <漁父詞>를 새겨 두었다.
고려때부터 구전되어 오던 <어부가>라는 노래를 농암 이현보가 短歌 5수, 長歌 9수로 개작한 것이다.
늙은 어부의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다.
<어부가>에 있는 단가 한 수
구버는 千尋綠水 도라보니 萬疊靑山
十丈紅塵이 언매나 가랬는고
江湖에 月白하거든 더욱 無心하예라.
가송리에서 바라본 고산정이다.
孤山亭은 퇴계의 제자 琴蘭秀가 1564년에 세웠다.
퇴계선생은 도산에서 이곳까지 제자를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퇴계는 청량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어가기도 했다.
이곳에서 보니 가송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가송리에서 500m쯤 내려간 곳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농암종택
聾巖 李賢輔(1467~1555)의 종가이다. 농암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서원 분강서원도 있다.
긍구당
애일당으로 가보았다.
농암종택 인심도 많이 변했다. 돈이 되지 않은 나같은 사람을 귀찮기만 한 모양이다.
들어가자 마자 쫓겨났다. 그리고 문을 잠궜다.
애일당 담벼락에 농암각자(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3호)가 네 쪼개진 채 조각으로 서 있다.
농암선생의 정자 옛 자리를 표시한 글씨로 ‘聾巖先生亭臺舊庄’이라 쓰여있다.
이는 분천동에 위치하던 농암의 정자인 애일당을 1차로 옮기면서 그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새긴 글씨이다.
안동댐 수몰로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
농암종택 앞을 흐르는 낙동강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김소월 작시 이영조 작곡
정명화 첼로/ 정명훈 피아노
http://cafe.daum.net/philrand/Jjkk/2334
이제 강변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퇴계선생이 걸으면서 느끼고 사색했던 그 길을.
뒤돌아 보면 면 청량산 육육봉이 저만치 우뚝 서있고, 강변에는 기암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벽력암 · 경암 · 학소대 · 미천장담 등 퇴계가 시를 지으며 노닌 곳들이다.
청량산 낙동강 길은 오염 요인이 거의 없어 강이 깨끗하다.
경암
의지의 나무
이곳에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전망대에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본다.
단천교가 보인다.
벗나무 줄기들이 묘하게 어울려있다.
다행하게도 보호수란 명찰을 달아주었다.
<陶山十二曲>
當時에 녀던 길을 몇 해를 바려두고,
어듸 가 단니다가 이제사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 데 마음 마로리. (言學 1)
고인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녀던 길 알패 잇네.
녀던 길 알패 잇거든 아니 녀고 엇덜고. (言學 4)
退溪 李滉(1501~1570)
여기가 녀던길의 시작이다.
'녀던길', '예던길', '퇴계오솔길', '시심의 길' 등 여러 이름 이름으로 불리고, 시작점과 종착점도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 좀 혼란스럽다.
원촌마을이다. 이육사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다.
먼저 서낭당부터 들른다.
상량문에 "지정42년을사17일"이라 썼다.
마을공동체가 모시는 신은 남 · 녀근석과 천장에 흰 종이로 싼 3개의 봉지다.
그 봉지가 무슨 신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엄청나게 넓은 강변 퇴적지에 단무지 무를 재배한다. 지금 수확이 한창이다.
무밭에서 이런 것도 보았다.
육사생가
육사시비
<청포도>가 새져져 있다.
이육사(1904~1944년 1월), 본명은 李源祿 또는 李源三이다. 陸史는 그의 호다.
육사의 다른 시 한 편을 읽어본다.
喬木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 타고 우뚝 남아 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 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라
마침내 호수 속에 거꾸러져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이육사선생기념비건립사업회 편, <육사시문집 청포도>, 1964.
육사문학관
이번에도 들어갈 시간을 얻지 못했다.
아쉬움은 그리움으로 남고, 다시 찾게 된다.
여기서 다시 도산서원까지 걷는다.
나에게는 도산서원에 들어갈 시간이 없었다.
바람님에게 도산서원 편액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편액에 "萬歷三年六月 日 宣賜"라 썼다. "만력3년"은 1575년이다.
이 편액은 한석봉이 선조대왕의 명을 받아 쓴 것이다.
좋은 사진을 얻어 기쁘고 아울러 바람님께 감사드린다.
명호에서 도산서원까지 13.4㎞를 걸었다.
도산서원에서 모든 일정을 끝냈다.
대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타고 낙동강 가을 탐사도보" 기념사진은 "인도행사진터, 일반도보사진"에 올립니다.
달마루/ 바람 찍음
달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워서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산과 들이 돌아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니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이호우시조집, 영웅출판사,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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