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오봉산-2010년 10월 27일

추연욱 2010. 10. 25. 22:12

오봉산-2010년 10월 27일

 

어제 울릉도에는 첫눈이 내렸다 한다. 예년보다 18일 빠르다고 했다.

제주도는 영하 4.7도로 상고대가 만발했다고 한다.

어제보다 오히려 따뜻하다. 거기다가 깨끗한 하늘에 전망도 좋다.

 

 

숙재에서 시작한다. 10시 30분이다.

숙재는 네거리다. 서쪽으로 생식마을(시루메기)로 가는 길이 있고, 우리는 그 반대쪽으로 오른다. 

 

 

 

맨 먼저 배초향이 우리를 반긴다.  

  

 

  

 

 

 

 

 

부산성

■ 죽령산신당 -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산신은 다자구 할머니이다. “단양군 민속자료 보고서-김영권 1992”에 신라시대부터 國行祭가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봄 가을로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보내 작은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지금의 죽령사를 짓고 산신제의 틀을 갖춘 것은 대략 조선 중기로 보이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다자구 할머니이다.

산적에게 두 아들을 잃은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죽령의 산적을 잡는데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던 토포군과 미리 짜고 산적굴에 들어갔다. ‘들자구야’는 기다리라는 신호였고, ‘다자구야’는 공격신호였다. 산적에게는 ‘들자구’와 ‘다자구’ 두 아들을 찾는다고 둘러댔다. 마침내 산적이 모두 술 취해 잠든 사이 노파의 다자구야 소리를 신호로 토포군이 들이닥쳐 산적을 섬멸했다. 훗날 나라에서는, 죽어 죽령 산신령이 되었다는 ‘다자구 할머니’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이땅의 모든 국행제를 금지했다. 죽령 산신제 역시 마을 사람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매바우에서는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9월이면 3도가 함께 산신제를 지낸다. 날자는 初丁인데, 초정에 부정이 들면 중정, 중정마저 부정이 들면 하정으로 넘긴다.

朱사사와 주사산

신라 어느 왕때인지는 모른다. 일상 손에 주사를 가지고 있는 한 왕녀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때 그 왕녀는 경주 오봉산에 살고있던 곰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왕께서는 대단히 놀라시고 슬퍼하시어 곧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리시어 수색대를 내보냈다. 수색대는 산을 둘러싸고 차츰차츰 찾아들어가서 깊은 골에 들어가 커다란 바윗굴을 하나 찾아내었다. 그 수색대에서는 그중에 결사의 용사 몇 사람을 굴속으로 들여보내 반틈없이 찾으니, 한 곳에 일상 왕녀가 손에 쥐고 있던 주사만이 있고 왕녀도 곰도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왕은 이곳에 절을 짓고 그 주사를 부처님께 바치고 절 이름을 주사사라 일컫고, 왕녀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윗날 이 절로 인하여 그 산도 주사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271~2쪽

최상수, <한국민간전설집>, 통문관, 1958

黃互根, <신라의 미>, 을유문고,

무열왕 즉위 초 어느 늦은 봄, 백제의 군사들이 부산성을 침공하여 왔다. 신라 병사들은 성을 굳데 지키고 있었다. 이튿날 석양 무렵 70이 가까운 한 노파가 산성을 찾아와 ‘더자구야, 더자구야’하며 슬피 흐느끼고 있었다. 파수를 보던 신라 벙사가 그 슬피 우는 까닭을 물었다. 그 노파는 사대 독자인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서라벌로 찾아갔더니 이 성으로 갔다기에 왔습니다. 제발 죽기 전에 한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면서 애걸을 했다. 파수군은 노파를 성 안으로 들여보냈다.

밤이 깊어가도록 노파는 ‘더자구야’를 부르면서 성안을 헤맸다. 그날밤 동이 틀 무렵 노파의 아들 이름은 ‘다자구야’로 변했다. 이때 성안의 모든 군사는 잠이 들고 파수군까지도 졸고 있었다. 산성 밖에 잠복하고 있던 백제의 군사들은 이모파의 ‘다자구야’를 신호로 일제히 성 안으로 잠입, 신라 군사를 모조리 도륙하여 성은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다다구야, 다자구야’ 하는 노파의 여운과 함께 성안의 군사들은 그때야 비로소 노파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모두 죽어가면서도 ‘더자구야, 더자구야’를 외치면서 숨을 거두었다. 50~51쪽.

 

 

 

 

 

 

 

 

 

 

 

 

 

 

평원에 오르니 억새가 만발이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바위가 마당바위다.

 

 

 

 

 

  

   

 

오봉산 정상

 

 

 

 

마당바위에서 점심시간 

  

 

 

 

마당바위. 본디 이름은 指麥石이다.

 

가까이서 본다.

 

 

 

 

 

 

 

 

 

 

 

주사암

 

고려 명종 때 문인 金克己(1150?~1204?)는 언젠가 주사암에 왔다. 그리고 이렇게 읊었다.

 

迢迢雲際寺 멀고 먼 구름가의 절

異境隔塵凡 특별한 지경이 티끌세상과 격리되었네.

鳥道彎靑漢 조도는 구불구불 푸른 하늘에 오르고

蜂臺駕碧巖 봉대는 푸른 바위에 걸쳐 있네.

地靈潛洞壑 땅의 정령은 골짜기를 감추었고

天籟颭筠杉 하늘바람은 대와 삼나무를 스쳐가네.

縱望襟懷曠 멀리 바라보니 가슴이 시원하여

飄如馬脫銜 말이 굴레를 벗은 듯하구나.

 

<동경잡기> 제2권 불우조

 

 

주사암에는 큰 불사가 있는 모양이다.

영산전 부처님은 점안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절 옆구리로 들어왔지만, 이곳이 절문이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섭뜰을 바라본다.

 

 

 

 

 

 

 

이곳이 옥문지다. 

 

 

 

유학사 용왕당

주련에 아래와 같이 썼다. 

"施雨行雲四大洲 五花秀出救千頭 사대주에 비 내리고 구름 펼쳐 온갖 꽃 피워 천만 목숨을 구하네.

度生一念歸無念 百穀以利海衆收 중생을 제도하는 한 생각 무념으로 돌아가 백 가지 곡식으로 바다 같은 중생 거두네."

 

  

 용왕님

 

 

꽃이 우리를 배웅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