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소디 풍으로
김미선
걸으면서 난 생각해요
바람에 말 건네지 않아요
하늘에 닿으려 하지도 않아요
단지 나는 걸을 뿐이죠
길이 아름다워요
살아가는 일처럼요
나 혼자인 채로 걸어가요
누군가의 미소는 흘려보내도 좋아요
격려도 때론 무겁거든요
껍질을 깨고 나가는
나무의 허공을 올려다 보아요
꽃이 지는 이유도 잊어버려요
오직 길과 함께 있어요
햇살을 헤치며 푸른 그리움이
이제는 떠나는 것을 깨달아요
숨겨진 희열이 눈길의 틔우고
숨결을 있는 듯 없는 듯
눈부시게 빛나는 길의 영혼을
노래해요
김미선, <해독제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작가마을, 2022.
어느 자화상
김미선
나의 영혼은
대부분 잿빛이다
나를 펼쳐보는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떠나간다
쏟아지는 비를 역행할 수 없어
기적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가벼운 구름의 예감이
좁은 통로에 빨려 절망을 통과하듯
생을 걸어간다
안개로 피어나
진눈깨비의 고독을 들으면
내 안의 우수는 문득
예기치 못한 설레임을 듣는다
오늘도 나는
환희를 맞으며
저녁 산책을 나선다
안심하라
나의 바슐라르여
4월 소나타
김미선
초록 꽃눈 총총히 돋아나고
목련 부풀어 오르던 그 자리
수양 벚나무 춤사위 펼친다
숨을 몰아 뱉어내는 고갯마루에
허기진 꽃들이 난분분 깊어가고
진달래 덩쿨 사이로
허물처럼 벗겨지는 봄의 말들
놋점골 어디쯤 불을 지핀다
낡은 사월을 지핀다
붉은 산다화 목을 꺾으며
한 악장을 넘기고
팡팡 터지는 하루가 비틀거린다
꽃잎 떨구는 희뿌연 고백들
청춘이 청춘을 밀어내듯
연둣빛 산천 넘어간다
장엄하게 펼져지는 풍경이
할미꽃처럼 휘어져 흩날린다
꽃 피고 지는 슬픔 힌 대목
슬몃, 펄럭이다 사라진다
눈물이 떠다닌다
환상을 떠도는 환상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음절이 슬픔을 연주한다
4월/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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