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 답사도보(1)-2010년 6월 4일
다소곳한 모습의 이 부처골 감실석불좌상(보물 제198호)은 자꾸 보니 삼신할머니 같다.
옛날 신라 때, 아니 그 보다 훨씬 옛날부터 부인네들이 이 부처님(삼신할머니)에게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선덕여왕(632~647 재위) 때 조성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선덕여왕을 모델로 했을지도 모른다.
신라는 이미 불교가 지배이념으로 등장한 때였다.
그러나 민중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애니미미즘 신앙에 따라 산천이나 돌에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여기에 불교와 전통 신앙의 결합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불상 뒷쪽에 알터가 있다.
부처님이 오시기 전부터 이곳에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던 근거가 뚜렷이 남아있다.
오늘 부처바위 탑골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들어냈다.
왼쪽 9층탑, 오른쪽 7층탑 아래 사자가 불국토를 지키고 있다.
사자의 꼬리가 천마도의 천마 꼬리 같다.
초여름의 靜謐한 풍경
지나가는 길에 본 꽃과 나무
상사바위
상사바위는 남근석이다. 이 남근석을 두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떤 노인이 피리라는 소녀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
노인과 소녀의 사랑을 금기다.
뱀이 등장하는 설화는 대개 에로티즘이다.
민중등의 억압된 에로티즘은 이렇게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교훈적인 사연을 깔아 다시 태어났다.
상사바위 아래쪽에 있는 기도처다.
신앙의 대상은 두꺼비라고 한다.
남산부석이다.
부처님의 머리가 허공에 떠있단다.
신라 사람들은 부처님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곳 남산에 머무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서라벌은 부처님의 땅이다.
남산부석은 신라팔괴의 하나다.
금오산(468m) 정상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일천바위(259m)는 마왕방위라고도 한다.
옛날, 못된 마왕이 난동을 부리자 큰비가 내렸다. .
백성 천1여 명이 이 바위로 피란했는데, 이들은 대홍수에도 살아남았다고 하여 일천바위라 한다.
일천바위에 오르면 경주 시가지와 토함산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보리사 대웅전
보리사 삼층석탑은 참 작고 예쁘다. 그래도 탑이 갖출 것은 다 갖추엇다.
보리사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촉지항마인을 결한 석가모니부처님인 것 같은데, 보리사가 있는 이 골짜기는 미륵골이다.
민중들은 아미타불이든, 석가모니불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교리도 의식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미륵님에게 자식 낳기을, 복 받기를 빌면 그만이다.
석조여래좌상 광배
뒷면 약사여래상
석불좌상 뒤에 있는 바위
보리사 마애여래좌상은 넓직한 연꽃 위에 단정히 앉아 있다.
높이 1.5m의 바위에 광배형의 龕室을 파고, 그 안에 0.9m의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에 고운 미소가 감돈다.
이 작은 불상은 어깨가 직각으로 남성적인 모습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건너편에 선덕여왕이 누워있는 狼山이,
그 아래 사천왕사터, 망덕사터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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