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東方不敗>
金庸 원작
徐克 제작
程小東 감독, 1991년 작.
동방불패 林靑霞,
영호충 李漣杰,
임영영 關之琳,
악영산(오리) 李嘉欣
하봉화, 袁潔瑩
임아행, 任世官
명나라(1368~1661) 신종 만력 22년(1594년),
풍신수길은 일본을 통일하고 조선과 전쟁하기 여념이 없다.
풍신수길에 패한 일본 낭인들은 중국 남부 福州 해안으로 숨어들어 약탈과 폭력을 자행했다.
이들은 군대를 조직하고 힘을 길러 일본으로 들어가 명예를 되찾으려 한다.
동방불패는 명나라 조정의 신무기인 조총, 네델란드 전함 등을 약탈하여 힘을 기르고, 묘족 지역으로 들어온 낭인들을 굴복시켜 수하에 둔다.
중원을 정복하여 황제가 되려한다.
이곳에 살고있는 소수민족 苗族은 日月神敎를 중심으로 뭉친다.
동방불패와 임아행은 묘족으로 형제간이다. 일월신교는 동방불패와 임아행으로 분열되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조정에서는 묘족, 동방불패, 낭인들 모두 잡으려 한다.
이때 화산파 수제자 영호충은 사부의 위선적인 행동에 실망하여,
사부의 딸인 악령산(오리)은 아버지가 추진하는 정략결혼이 싫고 영호충을 사모하여, 영호충을 따른다.
영호충은 자기를 따르는 오리, 사제들과 함께 은둔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사제과 헤어진지 1년이나 되었다.
영호충은 선머슴아 같은 사제 오리를 데리고 사랑하는 여인 월영영과, 헤어진 사제들을 만나기로 한 산채로 간다.
가던 중에 동방불패와 관군의 싸움에 엉뚱하게 오리의 말이 죽고, 이 통에 절벽 아래로 떨어진 오리를 구하여 바위 절벽에 붙어 있는데, 동발불패가 지나간다.
이통에 영호충의 아끼는 술이 모두 쏟아진다.

오리는 죽은 자신의 말 무덤에 칼을 꽂는다. 칼을 버린 것이다.
추악한 강호를 떠나 은둔하려 한다. 그녀가 짝사랑하는 영호충과 함께.
"풍상같은 칼이여, 왜 우리를 강요하나.
영원한 영웅도 없건만 바깥 세상은 왜 이리도 추악하단 말인가.
우린 결코 돌아가지 않겠어."

이런 일로 말미암아 미리 약속한 날짜보다 하루 늦게 월영영의 산채에 도착하게 된다.
월영영은 영호충을 기다린다. 오지 않아 화가 났다.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물결따라 떳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이긴자는 누구이며 진자는 누구인지 새벽하늘은 알까.
강산에 웃음으로 물안개를 맞는다.
파도와 풍랑이 다하고 인생은 늙어가니 세상사 알려고 않네.
맑은 바람에 속세의 찌든 먼지를 모두 털어 버리니,
호걸의 마음에 다시 지는 노을이 머문다.
만물은 웃기를 좋아하고 속세의 영예를 싫어하니,
사나이도 그렇게 어리석고 어리석어 껄껄껄 웃는다."
(번역한 가사는 아고라에서 인용)
월영영의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
거문고와 비파 소리는 서로 잘 어울려 夫婦 사이를 琴瑟이라 한다.
그 거문고 줄이 끊어졌다.





월영영의 몸종 하봉화- "단주님 내일 영호충이 오면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같이 술 한잔 하자고 하세요."
"그 사람은 은둔생활을 원해. 난 아직도 혼탁한 강호를 떠날 수 없어. 그 사람은 포기할지 몰라도 난 아야. 내 아버지가 실종되셨는데, 어떻게 나같은 단주가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겠나."
그날밤 동방불패의 졸개들인 낭인들이 일월신교 산채를 습격하여 한바탕 전투를 치른다.
다음날 영호충이 산채로 온다.
주변에 시체들이 널려있고, 월영영과 일월신교도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영호충은 숨어있던 사제들을 만난다. 이들은 약속장소에 와 주인없는 산채에 숨어있었다.
월영영의 가야금이 남아있다.

조정의 순찰대와 만나 싸움이 벌어진다.
남의 싸움에 말려든 것이다. 강호를 떠날 사람들 싸움을 피하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영호충은 이곳에서 빠져나와 월영영을 구하러 간다. 월영영의 채찍을 보고.

가는 도중에 동방불패를 본다.

엉청난 무공이다. 동방불패는 무공 수련 중이다.
동방불패- "<葵花寶傳>이 내 손에 있고, 강산이 내 발 아래 있도다."라고 승리자의 노래를 부른다.
동방불패는 황실에 비전되어 오던 <규화보전>을 입수하여 무술을 익한 뒤 천하무적이 된다. 자신의 형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을 쫓아내고 스스로 교주가 되었다.

동방불패를 만난다. 물 속에서 술을 매개로 만난다.
물은 둘은 완벽하게 하나로 이어주는 매체다. 물은 에로스를 상징한다.
그러나 술은 불이다. 그들의 만남이 일시적임을 알 수 있다.
사랑은 물이어야 한다.


어느새 영호충의 술통이 동방불패의 손에 있다. 동방불패는 자기의 술통을 영호충에게 준다.
"술은 우리처럼 술맛을 아는 사람들이 마셔야 하죠. 내 이름은 영호충이오. 낭자 이름이 뭔가 물어도 되겠소."
'낭자/란 말에 동방불패는 정색을 한다. 몸은 여자지만 의식은 아직 남자다.

두 개의 술통-그들을 상징한다.
"예쁜 게 같이 있으니 좋지. 이젠 외롭지 않겠구나."

동방불패는 대답하지 않고 물속으로 사라진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목소리로,
"자네는 내 공력 안에 있다. 자네 얼굴과 말솜씨를 보아 내 한 번만 살려주겠네."
영호충은 이 여자가 일본사람이라 중국말을 모르는 줄 안다.
둘은 서로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영호충은 얼굴 모습이 흉악한 향문천이란 사람을 만난다. 향문천은 임아행의 충성스런 부하다. 임아행을 찾기 위해 스스로 얼굴을 흉악하게 만들고 낭인들의 캠프로 들어와 여러곳을 뒤지고 있다.
영호충은 월영영을 찾기 위해 낭인으로 변장하고 향문천을 따라 낭인 캠프에 잠입한다.
이곳에서 월영영을 만난다. 월영영 역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낭인 캠프에 있었다.
"가야금을 산채에 두고 갔더군요. 날 위해 연주해 주는 그날을 기다리겠소."
- "당신을 기다렸어요."

월영영과 영호충을 이어주는 이 가야금에 대한 정보는 이 영화의 전편에 해당하는 <笑傲江湖, 1990>에서 얻을 수있다.
이 가야금은 곡장노라는 사람의 것이다. 영호충은, 은퇴하여 강호를 떠나려는 순풍당의 당주와 그의 친구인 일월신교의 곡장노를 만나 함께 뱃길을 가게 된다. 순풍당과 곡장노는 젊은 시절 두 사람이 은퇴하면 함께 부르겠다고 만든 음악 소오강호를 연주한다.
이때, 관리 동창의 졸개인 좌냉선이란 자가 곡장노 일행을 추적해 와 싸움이 벌어지고, 당주와 곡장노는 큰 부상을 입는다. 곡장노는 <소오강호>의 악보와 거문고를 영호충에게 주며, 월영영에게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배에 불을 지르고 죽음을 택한다.
향문천은 영호충에게 경계가 삼엄한 곳을 알고 있다고 해서, 임아행이 감금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몰래 잠입한다. 이곳이 동방불패의 산채이다.
동방불패는 모든 것을 보고 알고있다. 동방불패는 침입자를 향해 공격한다.

동방불패는 침입자가 영호충인 것을 알고 놀란다.


공격을 멈춘다.


"당신을 한번 보고 싶었어요. 동방불패가 날 발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을 보낸 것 같아요. 당신도 위험해졌어요. 당신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없으니 내가 밖으로 데리고 나갈께요."
동방불패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본 사람이라서 말을 몰라요?"


동방불패는 피리를 불고, 영호충은 가사를 읊는다.
"천하 풍운이 우리를 길렀다.
강호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니, 세월만 가는구나.
사람들은 패업을 탐닉하나 나는 술이나 마시련다."



동방불패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 같다.
동방불패는 불던 피리를 멈추고 영호충의 손을 잡는다. 여기서 한 여인의 사랑에 대한 갈망과 절망을 읽을 수 있다.

낭인들이 동방불패를 찾아오자 동방불패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영호충을 기절시켜 지하에 감금한다.
신통한 기술로 더 깊은 곳에 임아행이 갇혀있는 것을 알아낸다.
임아행이라 쓰여있다.

영호충은 이때 들어온 간수의 열쇄를 빼앗아 임아행을 구출하여 탈출한다.

임아행은 교주에 복위한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배신자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권력투쟁은 이렇게 비정하다.
동방불패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충성스러운 사나이, 향문천, "교주님 아직도 길이 멉니다. 천천히 복수하시지요."

향문천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음을 안다. "누가 진정한 강호의 영웅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묘족의 한족에 대한 투쟁이 부질없는 것이라란 생각을 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인종주의적 요소도 보인다. 중국의 소수민족 묘족은 중국 남쪽에 산다. 그런데도 동방이라 했다. 묘족이 본디 동이족의 한 갈래라는 말도 있으나 이점은 더 연구가 필요하므로 여기서 그친다. '동방'은 일월신교의 신앙 대상인 해와 달이 뜨는 곳, 해와 달 그 자체이다. 여기에는 중의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동방불패가 중원을 차지하려 한 것은 억압받아온 민족의 반발이다. 테러의 단계를 넘어선 본격적 투쟁이다.
동방불패와 임아행은 묘족으로 형제간이다.
형제간에 작은 권력을 두고 추악한 싸움을 벌인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동방불패는 낭인들과 결탁하고, 임아행은 자신을 학대하던 한족과 결탁한다.
맑은 영혼에 뛰어난 무술을 갖춘 영호충은 한족이다.
한족들의 소수민족 대한 혐오감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자기와 힘을 합쳐 동방불패를 없애자 한다.
임아행은 영호충을 제 편으로 만들기 위해,
"만일 자네의 다음 세대가 무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호에 뛰어들어 검을 잡겠다면 자네는 그들을 말릴 텐가? 강호에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불화가 있기 마련이지. 불화가 있으면 반드시 강호도 있기 마련이지 결국 사람들이 강호란 말일세. 어떻게 강호를 떠나 평화를 얻겠나."

이건 궤변이다. 권력을 탐하는 자, 전쟁을 지지하는 자의 궤변이다.
영호충- "저는 사제들과 함께 우산비로 갑니다."
임아행에게는 영호충 같은 존재는 자기 편이 아니면 없애는 것이 좋다.
영호충이 자기의 뜻을 다르지 않으니 영호충의 무공을 없애려 한다.
월영영은 아버지에게 호소한다.
"아버지 제가 영호충과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단지 그를 이용했던 것 뿐입니다. 저는 신교의 단주입니다. 외지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면 자결하겠습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영호충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이다.
영호충에게 "먼저 가세요 당신과 맺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제 가슴도 죽었습니다. 저는 화산파 제자들을 보호하다가 새벽에 떠나 보내겠습니다."
몸종 하봉화는 단주 월영영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데 놀란다.

동방불패는 이제 완전히 여자가 되었다.
<葵花寶典>란 무공비책이 담긴 두루마리로 명나라 황실 비밀도서관 內承運庫에 비장되어 있었다. 영화 <소오강호>는 규화보전과 <소오강호> 악보라는 두 개의 두루마리를 둘러싸고 죽고 죽이는 추악한 싸움을 그렸다.
황실의 관리였던 임준남이란 사람이 퇴임하면서 이 두루마리를 훔친다. 그 때문에 임준남 가족은 몰살당한다. 임준남은 영호충에게, 아들 임평지에게 전하라 하고 죽는다.
조정의 관리 동창은 임평지의 죽음을 일월신교가 한 짓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일월신교를 토벌하려 한다.
<규화보전>의 무공을 익히면 천하무적이 된다.

그러나 또한 무서운 저주도 감수해야 한다.
'규화보전'이라는 무공은 내시들에 의하여 생겨난 것으로 이를 익히면 차츰 여자로 바뀌어 가다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여자가 된다.
그리스인들은 성을 초월한 곳에 초월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말-인간은 본디 남녀 한몸이었다는- 도 이런 뜻이다. 테이레시아스는 양성을 넘나들면서 인생과 세계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꿰뚫어보는 능력을 가졌고, 남녀양성인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인간에게 풍요한 생산을 준다.
뒤에 이야기 할 카이네우스와 동방불패는 두 성을 넘나들면서 신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동방불패의 모티프는 그리스적 세계괸에 가깝다.


여자가 된 동방불패를 본 애인 시시는 놀라 자빠진다.

"놀라지 마라."
-"목소리도 변하셨어요. 바로 그 <규화보전>을 통달해 그렇게 되셨나요?"
"내가 어떻게 변했던지 간에 너를 잊지는 않을 거다.", "너도 이제 이해하겠구나. 왜 내가 너와 잠자리를 안 하는지."
동방불패는 남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동방불패는 처음 남자 목소리로 말하여, 그가 본디 남자임을 나타냈다. 이후 <규화보전>을 익혀나가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나오다가, 무공을 완전히 익힌 클라이막스에서는 여자 목소리를 낸다.
동방불패는 몸은 여자지만 의식은 남자이다. 이것이 그녀의 비극이다.
사랑하는 여자 시시도, 사랑하는 남자 영호충에게도 가까이 할 수 없다.
동방불패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교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을 거다. 어서 가라."

월영영과 이별한 영호충은,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방불패를 찾는다. 그는 이 여자가 동방불패인 줄 모른다.
이제 말을 한다. 여자 목소리다.
"당신도 한족 말을 할 수 있군요. 세상 만사가 울적해 당신과 술 한 잔 하러 왔는데."
- "저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울적해 하고 있었는데."
"예측할 수 없는 거라면 그만 둡시다. 저는 내일 떠날 겁니다. 세상만사도 사람도 모두 남겨둔 채."
-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아 진정한 술 친구를 찾기란 어렵죠. 들어오세요."

영호충 좌우에 시신들이 널려있다. 이것은 동방불패가 영호충을 위해 자기 부하를 죽인 것이다.
이게 권력의 속성이다.
동방불패는 자신의 애인 시시를 자기 대신 영호충의 잠자리에 들게한다.
"너를 알아보지 못하게 해라."

영호충-"사실 난 당신의 이름도 몰라요."
"시시예요. 인생은 고단하고 세상은 예측할 수 없죠. 우린 다 같은 운명이예요. 내가 원하는 건 하룻밤이죠. 제발 그만 물어보세요."
시시는 자학적이다.
그날밤 동방불패는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데 대한 절망과 분노로 잔인해져 만나는 사람을 모두 죽인다.
영호충의 사제들도 대부분 죽는다.

.

영호충이 자고 일어나 보니 사제 대부분이 죽었다.
"사제, 당신들은 이미 강호를 떠났소이다. 잘 가소서."
이로 말미암아 영호충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임아행과 힘을 합쳐 사제들의 복수를 해야한다. 임아행과 한패가 된다.
동방불패를 절망하게 만드는 일이 또 벌어졌다.
시시- "교주님 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시는 자결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엉뚱한 사람과 함께했으니 욕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권력을 지키는데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사람도 제공하는 것, 이것 또한 권력의 속성이다.

동방불패의 무공이 완성되었다.
부하들- "교주님 목소리가 바뀌었어요."
"신공을 터득한 결과 모든 게 바뀌게 되었소. 우리의 북벌과 천하통일이 곧 이루어 질 것이오."
동방불패는 먼저 임아행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중원을 정복해야 한다.
영호충과 오리는 사제들을 죽인 동방불패에 복수해야 한다.
임아행과 월영영은 동방불패를 죽이고 일월신교를 다시 세워야 한다.
전쟁이다.

전투가 시작됐다.
영호충- "어서 시작(결투를)합시다."

영호충- "시시, 당신이 동방불패요?"
"그전에 한가지 알고 싶은 게 있소. 그날 밤 나와 잔 사람이 당신이오?"
잤다는 말에 월영영과 오리는 놀란다.
영호충은 시시와 동방불패의 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다.



임아행의 독설은 동방불패를 처절하게 만든다.
- "얘야, 삼촌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아니 동방 고모라 불러야겠군."
- "난 네가 황제 자리 때문에<규화보전>을 습득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남자와 자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군."
- "내가 둘 다 가져서 질투가 나나보군."
- "영호충을 흠모하는 여자가 내 딸과 오리가 있으니 넌 세 번째가 되겠구나."
종결부에서 동방불패는 세 번째임이 밝혀진다. 사랑의 대상으로 첫 번째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전투가 벌어졌다.

영호충은 위기에 처한 월영영을 구한다.

동방불패의 무공을 당할 자는 세상에 없다. '不敗'니까. 동방불패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세월뿐이다. 아니면 스스로 죽거나.
동방불패는 영호충의 사랑을 생각한다. 잠깐 방심하는 틈에 동방불패를 찌른다.

"영호충 난 당신을 해칠 수 없었기에 헛손질만 했다. 어떻게 당신은 날 해치러 이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지?"

이제 무적의 용사도 권력의 정상을 지향하는 영웅도 아니고, 그저 다정다감한 여자이다.
권력이란 이렇게 허망하다.
"그런 소리마라 우리 사이에는 정이 없다."

동방불패는 월영영과 오리를 끼고 절벽으로 떨어진다.
"당신 면전에서 저 여자들이 죽는 꼴을 보여주지. 셋 중 누구를 먼저 구한는지 보자."

영호충은 월영영과 오리를 먼저 구하고,
다음으로 동방불패를 구한다. 구하기보다는 간밤에 같이 잔 사람이 동방불패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내가 당신과 같이 잤소?"
"말하지 않겠다. 날 기억하기 바란다. 너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다."
동방불패는 영호충이 뒤늦게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을 보고 사랑에 패배한 것을 깨닫는다.
영호충을 밀치고 스스로 골짜가로 뛰어내린다.


어렵게 얻은 권력은 이렇게 허망하고,
사랑을 얻기는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동방불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월신교 강호통일, 비정한 복수는 계속된다.
"또 다른 동방불패로군."
폭군을 몰아내면 또 다른 폭군이 나타나는 역사를 우리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월영영- "당장 떠나세요. 당신도 살생부 명단에 있어요."
그리고 거문고를 영호충에게 준다.
그들의 사랑의 이어주던 거문고, 월영영에게는 이제 필요없다.
<列子> 湯問編에, 백아는 자기의 거문고를 알아주는 種子期가 죽자, 스스로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고 평생 다시 타지 않았다.

향문천이 임아행을 명령을 받고 영호충을 잡으러 온다.
그는 영호충을 잡을 생각이 없다. 고육지책으로 영호충과 싸움에 진 걸로 하고 자신의 팔 하나를 자른다.
"여기를 떠날 수 있는 당신이 부럽다."
영호충은 거문고를 잊고 배에 올랐다. 영호충에게도 이제 거문고는 필요없다.
그들을 이어주던 거문고 줄은 이미 끊어졌다.

영화 <동방불패>는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사람, 그로인해 사랑에 버림받은 사람의 비극을 다루었다.
"권력, 명에, 재물만 얻으면 사랑은 저절로 따라온다."
천만의 말씀이다. 여자가 따를 수도 있고, 미인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명에와 돈, 권력을 따른 것은 사랑이 아니고 거래일 뿐이다.
사랑은 그만큼 이루기 어렵고 시련도 많다.
젊은 때는 그렇게 살 수 있다. 그가 늙어 아내와 자식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권력과 돈이 없어도 그의 삶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동방불패란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카이네우스와 닮은 점이 많다.
카이네우스 설화가 이 영화의 모티프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카이네우스Kaineus는 본디 테살리아의 왕 엘라토스의 딸로 이름은 카이네Kaine였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어서 포세이돈이 반했다. 포세이돈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줄 테니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카이네는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남자가 되어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고 명예를 얻고 싶어 했다.
카이네는 포세이돈에게 먼저 스튁스 강에 맹세하게 하고는, 자신을 용감한 남자로 만들어 전쟁에서 무적의 전사가 되고, 죽지도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교활한 소녀는 이렇게 신을 속였다. 포세이돈은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카이네는 남자가 되어 이름도 카이네우스로 바꾸었다.
이제 카이네우스는 무적의 용사가 되었다. 켄타우로스들과 싸움을 벌여 멀리 쫓아버린다. 이제 카이네우스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점점 교만해져 자신의 무기인 철퇴를 시내 광장에 세워두고 경배하라고 명령하고, 올림포스신들에 대한 경배를 금지했다.
인간인 주제에 신들에게 도전한 것을 신들이 그냥 둘 까닭이 없다.
제우스는 켄타우로스들에게 키가 아주 큰 전나무들을 베라고 시킨다. 그리고 카이네우스가 넓은 곳으로 나오자 멀리서 그를 둘러싸고 어깨를 계속 내리치게 했다. 카이네우스는 맞아서는 죽지는 않고 상처도 입지 않는다. 그러나 땅속으로 막대기처럼 처박혀 들어갔다. 온몸이 땅속에 묻히자 켄타우로스들은 거대한 돌을 덮어 눌렀다. 이리하여 카이네우스는 숨이 막혀 죽었다.
권력을 택한 자, 권력으로 교만해진 자의 끝은 이렇다.
그러면 파리스Paris처럼 사랑을 택할까?
여신 테티스Thetis는 인간 펠레우스Peleus와 결혼한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아름다운 테티스에게 제우스Zeus도, 포세이돈도 눈독을 들였다.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영웅이 될 것이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이 있었다.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인 프티아왕 펠레우스에게 주어버린다. 먹지 못하는 떡 재나 뿌리자는 심산이었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올림포스 최고신이 되었고, 크로노스 역시 그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신들 나라의 권력을 거머쥐지 않았던가. 권력의 맛을 잘 아는 제우스로서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많은 신들이 초대받아 참석하였다.
그러나 당연히 인간과 세계의 조화를 깨뜨리고, 인간 사이를 이간질 하는 불화의 신 에리스Eris는 초대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라는 말과 함께 황금사과를 던진다.
이 황금사과를 두고 헤라Hera, 아테나Athena, 아프로디테Aphrodite가 다투자 신들이 제우스에게 세 여신 가운데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를 결정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교활한 제우스는 이런 까다로운 일을 맡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 파리스에게 어려운 심사를 떠맡긴다.
여신들은 각각 파리스에게 청탁을 한다. 헤라는 소아시아의 통치권, 아테나는 전쟁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무적의 힘,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사랑을 얻어주겠다고 한다. 원숙미와 정숙미의 헤라여신, 단아한 지성의 아테나, 관능미와 교태미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의 선물은 인생살이에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가를 묻는 심각한 질문이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준다. 파리스의 선택은 남성중심문화 속에 살아온 사람들로는 의아하게 보일 뿐 아니라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어쨋든 파리스는 사랑을 택한다. 그리하여 파리스는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Menelaos의 왕비 헬렌Hellen을 유혹하여 트로이로 도망가버린다.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 세계는 연합군을 구성하여 트로이로 쳐들어간다. 이것이 고대 세계의 가장 큰 전쟁인 트로이전쟁이다.
헤라와 아테나는 앙심을 품고 그리스군을 도와 트로이의 멸망을 부추겼다. 파리스의 조국 트로이는 망한다.
파리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한 여인의 사랑과 바꾸었다.
그러나 적어도 끝가지 헬레네의 사랑은 받았다. 늙어 한 여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스의 선택은 현명하다고 할 수도있다.
권력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했다면 행복할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사랑을 택한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 제3권>, 洛山二大聖 觀音 · 正趣 · 調信 조에,
세달사의 중 조신은 낙산사 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조신은 이곳에서 불공드리러 온 김흔공이란 사람의 딸을 보고 사모하여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그녀와 사랑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조신의 바램과는 달리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돤다.
조신은 또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음을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지쳐 잠깐 잠이 들었다.
꿈 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가 기쁜 얼굴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며,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되어 마음 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에 못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 시집갔다가 이제 부부가 되기 원해서 왔습니다."
조신은 기뻐하여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40년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네 벽뿐이고 거친 음식도 계속할 수 없었다.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며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10년 동안, 옷은 조각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 없었다. 15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죽어 길가에 묻었다. 남은 식구들을 데리고 길가에 띠집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굶주려 일어나지 못하니 10살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개에 물려 아프다고 울부짖었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한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지 40년 동안에 정이 맺어져 사랑이 굳어졌으니 두터운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병이 날로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해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에 하찮은 음식조차 얻을 수가 없어 수많은 문전을 걸식하는 부끄러움이 산과 같이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 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 있겠습니가.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芝草와 난초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 累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나아가고 그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데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은 이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는데 부인이 말한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다가 꿈에서 깼다.
인용이 장황해졌다. 짧게 요약하려 해도 일연스님의 이 감동적인 문장을 도저히 요약할 수 없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생의 네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1. 性[kāma]는 존재의 조건이다. 그렇게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그저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2. 돈[Artha]은 생존의 조건이다. 세속적 성취의 하나이다.
1, 2는 삶의 현실이다.
3. 法[Dharma]은 인간이 해야 할 규범, 인간과 존재의 궁극적 관계를 추구하는 삶이다.
4. 解脫[Moksha]은 삶에서 오는 부자유, 불완전에서 벗어니고자 하는 것이다. Logos나 道와 비슷한 개념이다.
3, 4는 삶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조신설화는 불교적 이야기다. 일상적인 삶의 모습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정답은 없다
권력도, 부도, 명예도, 돈도, 사랑도 버린 사람은 부처님뿐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愛別離苦]인지 그대는 모르는가.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면, 모르면 몰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부처님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부처가 아닌 우리는?
삶은 순간순간 실존적 결단을 해야한다. 그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인간이 타고 난 苦다.
이래도 저래도 삶은 고의 연속이다. 부처님은 "一切改苦"라 하지 않던가.
그래도 사랑이다.
사랑은 세계도 사람도 살린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사랑 없는 행복보다 사랑 있는 불행이 낫다.
<笑紅塵>
黃霑 작곡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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