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One Week>
Michael Mcgowan을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2009년 개봉작이다.
Joshua Jackson
Liane Balaban
Andrew Lockington 음악
Campbell Scott 나레이터
이 세상에 머물 시간이 일주일(One Week)밖에 없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다가, 슬퍼하다가 절망하다가, 그리고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엇을?’에 이르러서는 ‘이것인가 저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소중한 일주일을 몽땅 허비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
영화는 시간적으로 진행한다. 암 선고를 받고부터 죽을 때따지.
공간적으로는 계속 이동한다.
잠깐 잠깐 지난날을 회상한다. 서로 관련이 없는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모자이크처럼 단편적인 연상들을 엮어 마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쓴 것 같다.
대사도 별로 없다. 나레이터가 전지적시점으로 벤 타일러의 심리 변화를 해설해준다. 여기에 배경음악이 상황의 변화를 따라간다.
주인공 벤 타일러는 사소한 불편으로 병원을 찾는다.
사소하다는 것은 그의 생각이고, 이미 하데스의 사자 타나토스가 찾아와 주변을 맴돌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의사는 말한다.
"암 4기입니다."
-"몇 기까지 있습니까?
"4기까지 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는 4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① 결혼을 취소할까.
② 여섯 학급 영어 채점 그만둘까.
③ 장례식에는 몇명이나 올까.
④ 네번째 생각은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와버렸다.
-"오진일 가능성을 없습니까? 저는 팔팔한데."
처음에는 누구나 부정한다.
그것이 현실임을 깨달을 때는 절망, 분노, 마침내 포기한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세 개의 강-분노의 강, 비탄의 강, 망각의 강을 건너 하데스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던가.
"확실합니다. "
-"살 확률은 10점만점으로 치면 몇 점이나 됩니까?"
"생존률은 10%." "사람의 일에 확률은 무의미합니다. 간혹 완치되기도 하니까요."
헛소리다. 그것은 의사도 잘 안다.
-"치료가 잘 안되면 얼마나 살 수 있을 까요?"
"2년 정도요."
-"최소한이죠?"
그 질문에는 대답이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르죠."
자살, 펏득 머리를 스친다.
그리고 약혼자 사만타와 지독한 사랑을 할까 생각한다.
병원을 나와 뛰어간다. 오토바이 정비소로 가서 수리 기사 노인에게서 사고 싶었던 오토바이를 산다.
주인공 벤 타일러, 1979년 1월 14일 카나다 토론토 생, 그가 태어날 때 이상기온으로 영하 19도였다나.
공상이 많은 어린이었다.
부모들은 그가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났다는 환상을 불어넣었다. 초등 4학년 때 교내 오디션에서 담임에게 크게 혼나고 환상은 깨어진다. 다시는 노래를부르지 않기로 한다.
그는 소설도 썼다. 자전적 소설-소설이라기보다 동화다. 그러나 아무도 출판해 주지 않아 잊어버렸다.
석달 후 사만타와 결혼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교사직. 일탈을 꿈꾼다.
주인공 벤 타일러와 그의 약혼자 사만타, 이들은 잘난 사람도 아니고 그저 그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별 볼일 없는 선생인지 아이들은 그의 말에 관심이 없다.
사만타를 좋아하는 이유
① 왼쪽 엉치뼈가 완벽하다.
② 나의 인생 사운드트랙 선곡 담당 DJ.-무슨 말인가 하면, 조수석에 앉아 음악 CD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③ 장인, 장모가 좋다.
④ 한번씩 나에게 일침을 가한다.
⑤ 스포츠광인 나를 따라 골프 펜이 되었다.
그는 의사가 말하는 '공격적 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시간 동안 꼭 해야할 일을 하고자 한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죽음에 임해서 후회하는 것은 살아온 동안 누구에게 무언가 잘못한 것들이 아니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사만타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라면 해볼 수 있는 치료란 다 해 보겠어. 염소 오줌이라도 못 마실까."
-"그냥 따라줘."
"그 맘은 알지만 딱 이틀이야."
-"결혼은 취소하지 말자."
"결혼이야 상관없어. 이 와중에 휴가가겠단 게 황당한 거지. 치료를 늦출수록 확률만 줄어."
-"휴가 가겠단 게 아냐. 환자가 되기 전에 꼭 해야하겠단 건데."
"모험."
사만타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은 바보 중 상바보라 생각한다. 그녀는 벤 타일러가 오토바이 타는 것만은 양보하지 못한다.
사만타가 반대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이틀의 말미를 얻어.
어디로? 갈 곳도 가야할 곳도 모른다.
그러니 커피부터 마시고 보자.
커피 잔에 쓰여있다. "Go West youngman."
벤 타일러가 병원에 가지 않은 탓에 간호사는 12분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12분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녀가 조금 늦은 6시 10분 기차를 탔다면, 어쩌면 죽은 13명의 명단중에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차는 탈선했다.
벤 타일러가 치료를 포기함으로 한 사람을 살렸다.
벤 타일러는 예전에 읽은 죤 브렌트릭의 기사를 기억한다.
죤 브렌트릭은 1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산을 탕진했다. 그뒤 오진임이 밝혀졌다.
벤도 그렇다면? 돌아가 채점을 하나?
"사만타가 옳다. 말도 안되는 방랑, 집에나 가자."
의기소침해진다.
1. 400$만 가지고 자전거로 6주 안에 벤쿠버까지 가기 내기를 하는 두 소년을 만난다. 1인당 맥주 한 상자를 걸고.
그들은 자전거가 고장나 타이어 집을 묻는다.
이들을 보고 마음이 변한다. 기껏 맥주 1상자를 위해.
의기소침해진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서쪽으로 간다.
오토바이에 이런 것이 들어있다. 그가 쓴 그림동화, 출판사를 얻지 못해 묻혀있는 그의 작품.
사만타가 그가 돌아오게 돌아오게 하려고 넣어둔 것이다.
동화를 다시 읽는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가 그로 하여금 '그럼프'가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런 동화를 쓰게 된 것이다.
밴 타일러는 자라 지난날 언젠가 이성이 상상력을 눌러 그럼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럼프는 신비한 생명체다.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을 얻게 된다고 한다. 동화에 이렇게 쓴 모양이다.
그럼프를 찾아나설 욕망이 다시 샘솟는다. 그의 모험은 그럼프를 찾는 것이다.
무언가를 찾아나선다는 점에서는 성장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화이트강-카나다에서 가장 추운 곳.
사진도 찍고.
결혼하는 커플도 보고,
그는 신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신앙심 깊은 사만타를 위해 주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으나 천국의 주파수는 잘 맞춰지지 않았다.
사만타는 품이 넓다. 그에게 신앙이 없어도 문제삼지 않는다. 그가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사만타에게 전화한다.
전화한 이유는,
"혹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자기는 억지로 참나 싶어서."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사만타의 대답은 엉뚱하다. 그녀에게는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발냄새가 좀 나."
정말 발냄새가 나는지 확인해보아야 겠다.
가게 주인 사나이 왈,
"전문가적 입장에서 볼 때 양호한데요."
그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는 마음이다. 살면서 진 빚을 청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사만타가 나의 어떤 점이 맘에 들지 않느냐 물어주지 않는데 서운해한다.
그녀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당연하지.
2. 암 환자와를 만난다. 그 사나이는 17세 때 결혼하여 25년을 함께 살았다 한다.
"아직도 사랑하세요?"
"그럼."
"진짜 사랑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게 궁금하단 건 진짜가 아니지. 답은 본인이 알 텐데."
여기서 그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없었던 듯하다.
아니면 사만타에 대한 그의 사랑이 만네리즘에 뻐졌거나.
3. 마라토너 테라가 달리기를 멈춘 곳. 그러나 테라는 태평양까지 가겠다는 꿈을 접지 않았다.
벤 타일러는 끝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만타에게 전화한다. 사만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중이다.
"집에 와줄래." 사만타의 간절한 호소에,
"아직 준비가안 됐어."
자신의 이런 모습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어떤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스텐리 컵을 본다. 이 컵은 기적의 컵이다.
불임진단을 받은 마이클 리치선수가 어떤 파티에서 이 우승컵에 뽀뽀 한 번 하자 9개월 후 옥동자를 낳았단다.
자신의 암세포에 퍼팅을 날려 보내버리는 것 같은 통쾌함을 느낀다.
오토바이가 탈난다. 그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과 병치된다.
오토바이 수리기사를 부른다.
5. 오토바이 수리기사, 땅을 사랑하고 땅에 붙어사는 20세 여자. 그녀는 그의 사랑하는 개가 죽어 주책스럽게도 통곡한다. 그녀의 넉두리도 들어주고.
덩치 큰 남자만 좋아한단다. 그래서 그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와인이 들어가면 막 덤빈단다.
그녀는 벤타일러를 보내고, 방랑벽이 도져 주말에 울타리를 고치는 것을 그만두고 아들을 찾아간다.
아들은 근무중. 시간을 떼우는 중 사랑할 사람을 만난다.
벤타일러는 본의 아니게 해결사가 되었다.
서쪽으로 계속 달린다.
터널은 마치 하데스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 같다.
6. 공룡 화석지에서,
그럼프는 이런 고대 동물 뼈 사이를 떠돌다 숨어있을까? 아니다. 선사시대 친구들처럼 멸종되었을 것이다.
1997년 한 스트리퍼는 깜짝파티를 하려고 케이크 속에 숨어있다가 질식사한 사건을 상기한다.
"우린 모두 빌려온 시간을 산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달리는 것도 지겨워진다. 태평양에 가면 뭘 해야할까.
호텔에 든다.
7. 호텔 근처 숲속을 산책하던 중 길을 잃고 헤메다가,
인디안 소녀를 만난다.
"일주일 후에 죽는다면 무엇을 할까요?"
-"지금 하는 것. 내 마음은 내일이나 어제나 3달 후도 아닌 여기 있으니까요. 그쪽은?"
"당신과 사랑을 나누겠소."
-"왜?"
"매 시간 소중하니까."
영화제목을 <Seven Days>로 했으면 더 좋을 듯하다. <One Week>보다 좀더 길어 보이니까. 벤타일러의 매 시간 소중한 마음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으니까.
소녀는 할아버지에게 들은 에디슨의 말을 들려준다.
벤 타일러는 치료보다 여행이 더 뜻이 있다고 느낀다.
소녀를 만나는 중에 사만타의 단점을 생각한다.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다.
① 사만타는 강박관념이 있다. 뭐든 정해진 순서가 있다. 조금만 빗나가도 불면증에 걸리고 신경질을 냈다.
② 영화, 책, 가족들의 행동을 10점 만점으로 환산하려 들지 않는다.
벤타일러는 그래서 자기의 소소한 일상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서로를 탐닉하던 열정도 시들해졌다.
③ 제일 거슬리는 것은 먹을 때 턱이 맛물려 똑딱댄단 거다. 참고 또 참다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오겠지.
산에서 소녀와 밤을 지내고 호텔로 돌아오니 사만타가 와있다.
"왜 집에 안 오나?"
- "그냥 못 가겠어."
"너무 이기적이야. 또 이해도 안되고.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치료 받아. 가망이 없을까봐 그래?"
- "아직은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아. 그것은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만 치겠다고."
- "-."
- "난 지금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서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솔직해지는 건 어때?"
- "암 선고를 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알아? 결혼을 취소하는 거였어. 솔직히 말해서 결혼하기 싫었어. 일하러 가기도 싫었고, 만사가 귀찮았다구."
"다들 그래. 나두 취소하고 싶었어."
- "암이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 자체에 회의가 들어. 왜 틀에 갖혀야 하는데, 왜 맨날 어깨가 무거워야 하는데. 왜 부엌에 들일 가전제품까지 신경써야 하는데. 점점 우리 아버지가 돼어가. 그렇게 살고싶지 않아."
"그럼 어떻게 살고싶은데."
- "이렇게."
"계속 돌아다니며 살 수는 없어."
-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보는 것도 내겐 값진 선택이라구."
"왜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해? 우릴 생각해서라도 끋까지 맞서 싸워 이겨내야지."
- "이건 우리하고 상관없어. 그게 문제야. 나를 위해 이런 다는 것."
매정한 말이다.
'우리'가 아니고 '나'이다. 죽음에 임해 사랑하는 이가 정을 끊기 바라는 것일까. 서구 문명에도 이런 관념이 있을까.
사만타는 '우리'가 아니고 '나'란 말에 화가 났다.
"나를 사랑하긴 한 거야?"
- "충분히 사랑해주진 못했어."
참으로 감동적인 말이다. 적어도 그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만큼 사만타에게 성실하다.
"그럼 왜 결혼하자고 한 거야."
- "그러고도 싶어졌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고."
맞다. 이것이 남자가 결혼하는 이유이다. 벤 타일러는 결혼하는 진짜 이유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적어도 모든 일에 성실하다.
당장은 매정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찌꺼기를 남겨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서로 보험같은 존재인줄 몰랐네. 예비군이었구나.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우유부단하고 망설이는."
"나 참 바보다."
하고는 토라져 떠나버린다. 그녀는 그를 설득하여 집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게 하는 데 실패한다.
사만타의 말도 옳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그의 속마음을 알까.
여행은 계속된다.
죽은자의 혼령 같은 오로라.
인디언 샤만을 만나고,
묘지를 본다.
죽음을 암시하는 지옥의 문 터널을 지난다.
끝까지 온 모양이다.
이제 먹음직스러운 음식도 몸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왁스러운 짐차가 오토바이를 들어받는다. 이제 오토바이는 필요없다. 오토바이는 할 일을 다했다.
서핑을 해본다. 전에 한 적은 없는 모양이다. 서핑이 아니라 서핑에 엎드려서 물장구치는 정도이다.
물은 죽음의 이미지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물에 들어가는 것은 그의 죽음이 가까왔음을 상징한다.
서핑가는 도중 독일인 여행자 들을 만난다. 사진을 찍어준다.
"그들은 진정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다른 커플들처럼 거친 파도가 덮칠 때도 있겠지만 그런 풍랑을 만날 때면 내가 찍어준 사진이 우산 역할을 해주리라."
그는 그럼프를 찾아 세상 끝까지 간 것이다. 아무도 그럼프를 본 사람은 없다.
마침내 세상이 그럼프를 보내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찾던 그럼프는 그 자신이다. 벤 타일러의 모험은 자기를 찾아 떠나는 길이다.
집으로 돌아온다.
사민타, "바다 내음이 난다."
-이혼율이 얼마다 돼?
"56%."
-"좋은 수치는 아니네. 어떤 사나이에게 물었거든 '진짜 사랑인지 어떻게 아냐구. 사랑하지 않을 때나 그런 걸 묻는데.' 그런거 안 물어도 됐었지. "
-"힘들게 해서 미안해."
"자긴 좀 미안해야 돼." "소중한 경험이었어?"
-"내 평생과도 못 바꿔."
이 평범한 대화에 나의 눈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
다시 들어보자.
"자긴 좀 미안해야 돼."
벤 타일러의 모험은 순례이다.
마치 <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순례와 비슷하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다니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처럼 그는 순례도중 만난 사람들을 통하여 참다운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
공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사만타는 이제 그를 보내야 한다.
영화의 종결부에 나레이터는 말한다.
"확신이 드는 순간를 만난다면 세상 이치가 막 와 닿는다. 이 순간을 흘려 보내선 안된다. 계속되는 힘든 나날에 구명보트 같은 존재니까. 세상은 우리를 종종 속이려 하니 말이다.
고로 염두에 두어야 할 질문은 이러하다. '자신에게 남은 날이 단 하루, 일주일, 한달뿐이라면 어떠한 일을 하겠는가? 어떤 구명보트를 잡겠는가? 어떤 비밀을 말하겠는가? 어떤 이들을 만나겠는가? 어떤 이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는가? 어떤 소망을 이루겠는가? 어디로 날아가 커피 한 잔 하겠는가? 어떤 책을 쓰겠는가?'"
삶은 순간순간 결단을 해야한다.
나레이터는 죽음에 이르러 절실한 실존적 결단을 요구한다. 이것은 문제 제기이다.
답은 이미 나왔다.
그의 사후 소설 <One Week>가 출판된 모양이다. by Ben Tyler.
죽음, 그것도 젊은이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다르다. 기독교적 전통에 따른 부활의 관념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죽음을 혐오하는 무속적 전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서 이처럼 의젓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견인주의자 같다.
그는 짧은 일생을 사는가 싶이 살았다.
인류에게 무언가를 기여하는 삶만이 가치있는 삶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자신의 삶을 완성했으며,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였으니까.
2007년에 나온 영화 <Bucket List>와 함께 생각해 볼 만하다.
Rob Reiner 감독
Jack Nicholson이 에드워드, Morgan Freeman이 카터역을 맡았다.
이 두 성격배우의 중후한 연기는 이 영화를 보는데 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병원 재벌 화장 에드워드는 네 번 결혼했고, 독신을 즐겼고, 지금은 홀아비이다.
성질이 괴퍅하다. 암으로 자기 병원에 입원했다.
역사 교수가 되고 싶었던 사나이 카터는 자동차 정비사다. 온갖 지식에 통달한 온화하고 품위있는 지식인인다. 그는 단 한번도 외도한 적이 없다.
성격이 전혀 다른 두 늙은이가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서 만난다. 이들은 살 날이 6개월쯤 남았다.
카터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자니 따분했던 모양이다. 옛날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 숙제로 만든 'Bucket List'를 메모지에 적어본다.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하는 것을 적은 목록이다. 잠이 들어 침대 밑으로 떨어진다.
돈벌이에만 평생을 바친 에드워드는, 그것을 보자 무언가 깨닫는다. 거기다가 자신의 생각을 더 보태 리스트를 완성한다.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기.
정신병자가 되지 말기. 등
여기에 에드워드가 보탠다.
장엄한 것을 직접 보기.
스카이다이빙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문신하기. 등등.
두 늙은이는 후회없이 죽기 위해 치료를 그만두고 모험을 떠난다.
팔팔한 젊은이라면 늙은이들의 이런 행위를 주책이라고 생각하거나,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해’라 빈정거릴 수도 있다.
그들이 하는 짓이 하도 엄청나서.
당연히 카터의 부인은 반대한다. 부부싸움도 벌어진다. 이런 점은 <One Week>와 같다.
하나하나 실행에 옮긴다.
스카이다이빙, 자동차 경주, 문신, 아프리카에서 사냥…….
타지마할에서의 대화를 들어보자.
에드워드, "장례를 어떻게 할지 골치아퍼. 매장이냐, 화장이냐? 만약 매장이라면 말야, 난 폐쇄공포증이 있거든. 만약 내가 땅 속에서 깼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찌하나. 벨을 달면 좀 나으려나?"
성질이 괴퍅한 에드워드에게도 이런 순수한 면이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은 아니다.
그는 죽음을 알게되면 다음 다섯 가지 단계가 있다고 했다. 부정, 분노, 흥정, 우울, 용인.
이들은 분명히 마지막 단계인 것 같다.
카터, "안 그럴 거지?"
에드워드, "재를 어쩔거냔 거지. 묻나? 뿌리나? 꽃밭 위 선반에 두나? 만약 뜨거우면 어떻게 해?"
카터, "나라면 화장을 하겠네. 재는 깡통에 담아 경치가 좋은 곳에 두고."
이런 일도 있었다.
홍콩에서 에드워드는 카페의 아름다운 여급으로 하여금 카터를 유혹하게 한다.
그러나 카터는 바위같은 사람이다.
히말라야 등반을 위해서 베이스켐프까지 갔지만 이미 등반 시즌이 지났다.
악천후로 내년 봄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간다.
카터는 곧 병이 악화되어 다시 입원한다.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신문 기사를 보여준다.
에드워드가 좋아하는 세계 최고 품질의 커피 루왁은,
"수마트라 야생 고양이가 원두를 먹고 소화시킨 후 배설하면 마을 사람들이 그 배설물과 함께 원두를 가공한다. 고양이의 위액과 원두가 결합해서 커피 루왁의 독특한 맛과 향취를 준다."
이 기사를 읽고 둘은 리스트 중 한 가지를 실행했다. "눈물이 나도록 웃기."
카터는 죽는다.
아직 살아있는 에드워드는 친구 카터의 뼛가루를 담은 깡통을 들고 히말라야에 올라 경관이 좋은 곳에 안치한다.
그리고 카터의 권유로 딸을 찾아간다. 여기서 손녀도 만난다. 손녀를 안음으로써 에드워드는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쓰하기"는 이렇게 엉뚱하게 이루었다.
에드워드는 몰랐던 카터를 도왔고, 카터는 에드워드로 하여금 딸을 찾게 했다.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도 이루었다.
서로의 인생에 참된 기쁨을 찾아준 것이다.
이 영화 역시 사랑이다. 카터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부자지만 가족에게 버림받고 혼자 외로이 살던 에트워드는 비로소 가족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찾는다.
동병상련으로 가까워졌던 두 늙은이는 이제 진정한 우정이란 또 하나의 사랑을 찾았다.
그리고 에드워드도 죽는다.
그의 뼛가루 역시 그가 좋아하는 커피 루왁 깡통에 담겨 히말라야 정상에 카터의 것과 나란히 안치된다.
이로써 "장엄한 것을 직접 보기"는 죽어서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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