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선운사에서/ 최영미

추연욱 2016. 5. 2. 14:00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신경림 엮음, <갈대는 조용히 속으로 울고 있었다>, 글로세움,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