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추연욱 2016. 7. 11. 14:49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1930~ 1969)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산에 언덕에


신동엽(1930~ 1969)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