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주사(사적 제312호)는 전라남도 도암면 대초리 · 용강리에 결쳐있다.
천불산 다탑봉 아래 남북으로 뻗은 완만한 골짜기 안에 탑과 돌부처만 있어 일반적인 절집의 형식은 아예 없다.
창건 기록은 없고, 조선 중종 25년에 증보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의 綾城縣 조에,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다.
절의 좌우 산마루에 석불과 석탑이 각각 1000개이고, 또 석실이 있는데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마주 대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오랜 세월 부근 사람들이 상석이나 묘비, 주춧돌 등으로 쓰기 위해 옮겨 가버리고 지금은 석탑 20기, 석불 90여기만 남아 있다.
운주사는 197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4년 발굴조사에 "順治八年"과 "雲住寺丸恩"이라는 명문이 있는 기와 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원래 절 이름은 ‘運舟寺’가 아니고, ‘雲住寺’라는 것,
또 연산군 1년(1495)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던 내용을 밝힐 수 있었다.
절은 조일전쟁 때 불 탄 것으로 보인다.
폐찰된 후 논밭으로 변했던 절터에 1918년에 인근 사람들의 시주로 허름한 건물이 중건되었고, 근래에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2008년에 큰 불이 났다.
입구쪽에 있는 구층석탑과 중심부의 석불감쌍배불좌상, 그 뒤의 원형 다층석탑이 각각 보물 796호, 797호, 798호로 지정되었다.
불상과 탑의 양식으로 보아 12~13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지방화된 양식들이 많이 나왔으며, 기존의 양식을 벗어난 육각, 팔각, 원형탑들이 나타난다.
대부분 자연적인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세운 탑들은 3층, 5층, 7층, 9층 등 층수도 다양하고 모양도 완전히 정형을 벗어난 원반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을 쌓아 올인 것도 있다. 또 이 탑들의 몸돌에는 마름모꼴, X, V 등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새겨지기도 하고, 꽃무늬가 새겨진 것들도 있다.
12m에 이르는 커다란 불상에서부터 수십 센티의 작은 것에 이르는 불상들은 대체로 갸름한 콧날만이 조금 도드라졌을 뿐 눈과 입이 선에 가까운 무표정한 얼굴들이다.
몸 전체가 납짝한 돌기둥 모양이고 팔다리의 비례가 제대로 맞지 않으며, 두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은 도식화되어 규칙적인 선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항마촉지인이나 소맷자락에 두 손을 마주 넣은 듯한 모습도 있으나 대체로 지권인이다.
창건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대개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① 도선국사와 관련된 풍수비보설
도선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의 형상으로 보고 배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船腹에 무게가 실려야하므로 선복에 해당하는 이 곳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이론이다.
운주사의 유적들이 12~13세기 양식을 보이는데 비해 도선국사는 9세기 사람이니 연대가 맞지 않다.
② 미륵신앙과 관련
운주사의 부처들이 파격적이고 민중적인 이미지에서 얻은 이론으로, 반란을 일으킨 노비나 천민들이 이곳을 근거로 하여 미륵이 도래하는 용화세계를 기원하며 신분 해방 운동을 일으켰던 해방구라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있다.
운주사와 미륵신앙이 융합된 것은 창건 시기보다 훨씬 뒤인 조선 후기, 미륵 신앙이 광범위하게 퍼졌을 때의 일이다.
또 천불 천탑의 조성에는 상당한 재력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천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③ 밀교적 성격
운주사에서 출토된 기와에서 "옴마니반메훔"이란 眞言이 범어로 쓰여져 있는 것, 돌집 안에 있는 두 부처를 밀교적 음양불로 볼 수 있다는 점, 돌부처들이 대부분 지권인을 하고 있는 점 들이 그 근거이다.
④ 몽고 침략기에 조성되었다는 설이다. 당시 고려는 각종 기도 도량을 베풀고 몽고군이 불태워 버린 대장경을 다시 간행하는 등 불교를 중심으로 민심을 모아 몽고군을 물리치기 위한 목적으로 운주사를 세웠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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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주사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은 높이 10.7m의 고려시대의 탑으로 대웅전 입구 약 200m지점에 있다.
거대한 암반 위에 별도의 지대석이 없이 암반 자체에다 3, 4단의 굄대를 각출하고, 그 위에 기단부, 면석을 올렸다.
이 탑의 조식기법은 운주사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정상에는 원추형의 석재와 보륜등의 상륜부가 놓여있다. 이 탑은 운주사의 현존하는 탑 중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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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은 고려시대의 석조불감이다.
골짜기 입구에서 산정에 이르는 사이에 산재한 다양한 형태의 석탑과 석불상 중 이 불감은 골짜기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지대석 위에 여러 매의 판석을 조립하여 기단 면석을 구성하고 그 위에 널찍한 덮개돌을 놓아 감실을 받치고 있다.
감실 위에 팔작형태의 지붕을 얹었는데, 정상에는 용마루를 마련하고 그 좌우에 치미형을 모각하였다.
감실 안에는 2구의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등이 맞붙은 특이한 모습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有石室二石佛相背而坐”라고 그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남향한 불상은 오른손을 배에 댄 모습인데 넓적하고 평판적인 얼굴에 비하여 이목구비의 표현은 작고 치졸한 편이다. 북
면의 불상도 같은 양식을 보이는데 옷 속에 싸인 두 손은 가슴에 모아, 지권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드러내고 있다.
198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조각, 상감청자 조각, 분청사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고,
또 중수연대를 기록한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석조불감 안에 등을 맞댄 2구의 불좌상을 안치한 것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우리 나라 조각사상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은 높이가 5.71m인 고려시대의 이형석탑이다.
2단의 龜形 지대석에 높직한 10각의 기단면석을 짜 올리고, 그 위로 16엽 앙련을 한 갑석을 마련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모두 원형이다.
이 석탑은 탑의 구성이나 전체적인 조형면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문 현상인데, 고려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나타난 특이한 양식이라 하겠다.
기단갑석의 상면이 편평하고 측면이 호형을 이루고 있는데 비하여, 위의 옥개석은 정반대로 하면이 편평하고 상면이 호형이다. 이는 상하의 조화와 안정감을 꾀한 조형의장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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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오른편 산등성이에 누워있는 두 기의 불상은 와불이 아니고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한 불상이다.
손의 모양으로 보아 비로자나불과 석가여래불이다. 이들이 일어서는 날 세상이 바뀐다는 설화가 후대에 생겨났다.
공사바위는 대웅전 뒤 산 위에 있다. 옛날 천불천탑 불사를 할 때 총감독이 앉아서 내려다보면서 지시를 했던 바위라 하여 공사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운주사 전체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북두칠성과 일곱 개의 돌
칠성신앙을 보여 주는 예이다. 칠성신앙은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그 지역의 재래토속 신앙과 결합하여 다양하게 나타나는 토착화된 민중신앙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인 수명 연장과 구복, 농경사회의 전통에 의한 생자득남을 비는 칠성신앙은 우리 민족에게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대부분 칠성각과 산신각이 있는데 흔히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비는 곳으로 민간에서는 석가모니보다 더 영험한 신으로 믿어온다.
이러한 칠성신앙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북두칠성 그림에서 보이듯이 우리 민족에게 뿌리깊은 신앙이었으며 18세기 와서 크게 유행하였다.
와불이 있는 산마루에서 절 입구 쪽을 향하여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듬성듬성한 소나무 숲에 일곱 개의 바윗돌이 놓여 있는데 주민들은 이것을 칠성바위라 부른다. 내력이나 까닭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옛날에 이 바윗돌을 깨뜨려 주춧돌로 사용하려 했던 사람이 날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과 함께 신령스런 돌로 여겨 오고있다.
칠성이란 북극성을 축으로 하여 그 주위를 하루에 한번씩 회전하는 북두칠성 별자리를 말하는데 우리 선조들은 자연 숭배사상의 하나로, 별자리 신이 천신의 사자로서 그 명을 받아 인간의 운명과 행불행을 주관하는 것으로 보아 북극성과 함께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북두칠성을 숭배하였다.
운주사 칠성바위는 하늘의 별자리가 산허리에 반사되어 있는 형상으로 수놓아져 있으며 별자리의 밝기에 따라 바윗돌의 크기가 정확하게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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