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정현종의 시 광휘의 속삭임과 모든 순간이 꽃봉우리인 것을

추연욱 2009. 5. 18. 12:24

        광휘의 속삭임

 

저녁 어스름 때/하루가 끝나가는 저/시간의 움직임의/광휘,

없는 게 없어서/쓸쓸함도 씨앗들도/따로따로 한 우주인,

(광휘 중의 광휘인)/그 움직임에/시가 끼어들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남몰래 이쪽 눈물로 적실 때

그 스며드는 것이 혹시 시일까./(외로움과 눈물의 광휘여)


그동안의 발자국들의 그림자가/고스란히 스며 있는 이 땅속

거기 어디 시는 가슴을 묻을 수 있을까./(그림자와 가슴의 광휘!)


그동안의 숨결들/고스란히 퍼지고 바람 부는 하늘가

거기 어디서 시는 숨 쉴 수 있을까./(숨결과 바람의 광휘여)



          모든 순간이 꽃봉우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그때 그 일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