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창립 22주년 전국도보] 논산 노성선비길- 2024년 10월 12일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주차장에 왔다. 10시 10분.
부산 서면에서 6시 출발, 4시간 10분을 달려왔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종학길 10
시간이 좀 있어 유교문화진흥원을 둘러 보러 간다.



노성선비길 지도


한국유교문화진흥원




토박이 맨드라미



유교문화진흥원 뒤로 병사저수지가 보이고, 오른쪽 정자는 鉉率亭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모두 도착했다.


도보 출발, 10시 50분.



호암산을 조금 올라 되돌아 본 유교문화진흥원





호암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호암산, 11시 20분.






호암산 산행은 끝났다.
조그만 산이 가파른 오르내리막이 여러번,
그래서 조금 힘들었다.
산을 빠져 나오니 찻길이다.

찻길 가에는 물봉선이 지천이다.



찻길에서 왼쪽 임도로 가라고 인도행에서 지시한다.





노성산, 1시 30분.


여기서 '황토지압로'로 가지 말고 왼쪽으로 내려가라 한다.



여기는 애향쉼터


애향공원, 1시 45분.

조금 늦은 점심부터 먹는다.


점심 후 시간이 좀 있어 애향공원을 살펴 본다.
애향탑



카페 창립 22주년 기념식이 있었고,
2025년 카페지기로 반창꼬님으로 결정했다는 발표도 있었다.


공식 행사는 끝났다.
우리 버스가 있는 곳

노성향교와 명재 고택이 있는 곳으로 조금 걸어 간다.
노성향교 홍살문, 3시 20분.

노성향교 魯城鄕校 외삼문

노성향교 건물 배차도


■ 노성향교는 노성면 송당리 월명곡(현 노성초등학교 자리)에 있는 교육 기관이다.
노성향교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한 시기는 일 수 없으나,
은진향교와 비슷한 고려 우왕 6년(1380)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1700년경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는데,
그 이유는알 수 없으나 명륜당 현판에 의하면 조선 인조 9년(1631)에 현감이 문묘를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 받아 유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부터 학제가 개편되면서 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사라졌다.
노성향교에는 바깥 대문인 外三門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養賢齋,
향교 관리인이 머무는 慕化堂,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
안채로 들어 가는 내삼문,
성현의 위패를 모시는 大成殿 등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구조이다.
이곳에는 공자의 영정을 비롯하여 안자 · 증자 · 자사 · 맹자 등 5聖과,
정희와 주희 등 宋朝 2賢,
우리나라 18賢 등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제향하는데,
대성전에 송나라 2현만 모시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또 서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향교 관리인이 머무는 수직사를 별도로 둔 점이나,
수직사를 향교와 담을 두지 않고 배치한 점은 일반적인 향교의 향교의 구조와 다르다.
설명 표지글을 옮겨 적었다. (편집자)
명륜당

명류당은 유생들이 공부하는 곳, 곧 강의실이다.
양현재는 유생들의 기숙사.

모화당은 향교 관리인의 집이다.

높은 곳 건물은 대성전, 그 앞에 내삼문, 앞의 큰 건물은 명륜당.

명륜당 옆면

향교를 나오니 바로 연못이다.

명재고택 연못은 사각형, 안에 둥근 섬을 만들어 백일홍과 연꽃을 심었다.

엄청 큰 백일홍

사랑채 축대

사랑채

사랑채에 "이은시사 離隱時舍"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離隱時舍"란 말에 대하여는 여러 해석이 있는 듯한데,
직역을 하면 이렇다.
"은둔(생활)을 그만 두는 때를 기다리는 집" 정도이다.
석가산 石假山

사랑채 앞에 자연석으로 꾸며 놓은 가산으로 금강산을 축소한 것이라 하다.
사랑채, 바라보아 가장 오른쪽 대청마루

안쪽 벽에 "虛閑高臥 허한고와"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여유롭게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란 뜻이다.
관지에 을유년 명재 선생의 후손인 "魯亭 尹斗植"이 썼다라 쓰여있다.
열린 문으로 밖을 내다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듯하디.

또한 명재고택은 담장이 없다. 사랑채는 완전 노출되어 있다.
안채는 여성들의 공간이어서 그런지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아 껍데기만 볼 수밖에 없다.

■ 논산 명재고택은 조선 숙종 때 학자인 明齋 尹拯의 집이다.
명재고택은 완만한 경사지에 있으며 한옥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데,
집 앞에는 넓은 마당과 왼쪽에 정사각형 인공 연못이 있다.
현재 대문 역할을 하는 남쪽 중문으로 문간채가 이어지며 전체 구조는 口자 형이다.
안채는 높지 않은 기단 위에 있으며 가운데 마당을 둔 멀경 자[冂]형인데,
내외벽으로 가려진 폐쇠적인 공간이 명재의 절제된 미덕을 반영하는 듯 소박하다.
안채의 동쪽 뒷면에는 사당이 있고, 그 앞에 사랑채가 있다.
현재의 건물은 수리하여 19세기 건축 양식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축 기법은 18세기 양식이다.
또한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방 양식을 따르면서도 특이하게도 남도풍을 가미한 형태이다.
명재고택은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형태를 보이며.
보존 상태도 양호해 조선 시대 지방 양반 가옥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설명 표지글을 옮겨 적었다. (편집자)
명재 고택에 대하여는 좀 꼬였다. 나는 여기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와 보니 윤증고택이었다.
1984년 12월 24일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 윤증선생 고택으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월 29일 논산 명고택으로 국가유산 지정 명칭이 바뀌었다.
■ 尹拯(1629~ 1711)
본관은 파평. 자는 子仁, 호는 명재 明齋 · 酉峰이며,
시호는 문성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정치인, 사상가이다.
아버지는 尹宣擧(1610~ 1669)이며, 어머니는 公州李氏(1607~ 1637)로 이장백의 딸이다.
할머니는 창녕 성씨로 西人이자 성리학의 대학자 牛溪 成渾(1535~ 1596)의 딸이다.
그러니까 그는 성혼의 진외증손이었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의 본가는 충청남도 노성에 있었으므로, 노성 출신으로도 본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의 외손으로 성리학자의 가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 윤선거, 尤庵 宋時烈(1607~ 1689)의 문하생이다.
그는 송시열에게 배웠지만 당시 노론의 세도가들이 정국을 좌우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있었다.
그는 하늘을 찌를 듯한 노론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판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였으므로 선비들 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 간에 파벌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송시열을 지지하는 노장파를 노론,
한태동과 윤증을 지지하는 소장파를 소론이라 하였다.
이렇게 서인이 노론 · 소론으로 분당할 때 소론의 영수가 된다.
■ 열녀 공주 이씨 旌閭閣
윤증의 어머니(1607~ 1637)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이다.
병자호란 때 남편 尹宣擧(1610~ 1669)를 따라 시어머니와 함께 강화도로 피란 간 이씨는,
강화도가 청나라 군에 함락되자 오랑캐의 손에죽지 않겠다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볼 건 많고, 마음이 바빠 이 분의 정려각을 살피지 못해 많이 아쉽다.
명재고택 장독간

장독대 앞에, 예쁜 오리가 앉은 돌솟대

장독이 엄청나게 많다.
통도사 서운암 장독보다 많을까?, 적을까?








이 느티나무는 필자가 본 나무 중 두 번째로 큰 것 같다. 가장 큰 나무는 함양 학사루 느티나무



행사를 마치고 명재고택 앞에서 3시 45분에 출발,
7시 50분에 부산 도시철도 동래역에 왔다.
달마루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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