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서정주, <귀촉도>, 1948.
직녀에게
문병란(1935~ 2015)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난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돗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을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 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유방도 빼앗기고 처녀막도 빼앗기고
마지막 머리털까지 빼앗길지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
문병란, <죽순 밭에서>, 인학사, 1977.
직녀에게
문병란 시, 박문옥 곡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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