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김미선/ 통도사 홍매화, 동백, 4월 소나타

추연욱 2024. 2. 10. 15:24

 

통도사 홍매화

 

김미선

 

산문 지나 절마당에 홍매화 한그루

꽃이 산을 넘을 때

가깝고도 먼 경계를 트고 있다

 

내려놓아야 할 꿈들이 허공에서 대롱거리고

단단한 멍울 삼켰던 붉은 꽃망울

깨어있는 소리 찾아 벼랑을 내려선다

 

아득한 시공을 넘나드는 봄 햇살 타고

굽은 몸통 뚫고 나온 파란만장

나무둥치 위로 완벽한 일체의 순간이 반짝인다

 

있음과 없음이 몸바꾸는 웅크린 망각

아련한 핏줄을 타고 나온다

 

다시  눈 뜨는 사이

마니차 돌리는 목탁소리 피어나고

한 줄기의 길이 몸을 던진다

 

해마다 울컥거리는 2월의 법문이

또 붉은 강물을 건너고 있다

 

김미선, <뜨거운 쓸씅함>, 지혜, 2014.

 

 

 

 

동백

 

김미선

 

동공 깊은 곳까지 칸칸이 붉어지는 틈

탱고 춤을 춘다

 

솟아 난 돌기가 팔을 당기고

심장을 밀며

흰 눈 위로 스텝이 펄럭인다

 

나를 간통하렴

리드미칼하게 부서지는 고통이여

나를 잊는 것은 내가 아니다

 

허공을 안고

환각을 풀어놓는 아디오스노니노

강렬한 몸짓의 비명을 쏟아낸다

 

동녘을 태우는 동안

피어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꽃

쉘 위 댄스 쉘 위 덴스

 

미혹이 도취가 되어가고

휘어지는 낙화가 별이 되는

 

김미선,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작가마을, 2022.

 

 

Adiós Nonino는 Astor Piazzolla(1921~ 1992)가 작곡한 누에보 탱고.

'Nonino' 그의 아버지의 애칭.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미국의 재즈를 혼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형식.

 

 

Astor Piazzolla(1921~ 1992)

Adiós Nonino

Original Broadway

 

 

 

Adiós Nonino

Astor Piazzolla(1921~ 1992)

 

 

 

 

4월 소나타

 

김미선

 

초록 꽃눈 총총히 돋아나고

목련 부풀어 오르던 그 자리

수양 벚나무 춤사위 펼친다 

숨을 몰아 뱉어내는 고갯마루에

허기진 꽃들 난분분 깊어가고

진달래 덩쿨 사이로

허물처럼 벗겨지는 봄의 말들

놋점공 어디쯤 불을 지핀다

날리는 사월을 지핀다

붉은 산다화 목을 꺾으며

한 악장을 넘기고

팡팡 터지는 하루가 비틀거린다

꽃잎 떨구는 희뿌연 고백들

청춘이 청춘을 밀어내듯

연둣빛 산천 넘어 간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할미골처럼 휘어져 흩날린다

꽃 피고 지는 슬픔 한 대목

슬몃, 펄럭이다 사라진다

눈물이 떠다닌다

환상을 떠도는 환상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음절이 슬픔을 연주한다

 

김미선,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작가마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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