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홍매화
김미선
산문 지나 절마당에 홍매화 한그루
꽃이 산을 넘을 때
가깝고도 먼 경계를 트고 있다
내려놓아야 할 꿈들이 허공에서 대롱거리고
단단한 멍울 삼켰던 붉은 꽃망울
깨어있는 소리 찾아 벼랑을 내려선다
아득한 시공을 넘나드는 봄 햇살 타고
굽은 몸통 뚫고 나온 파란만장
나무둥치 위로 완벽한 일체의 순간이 반짝인다
있음과 없음이 몸바꾸는 웅크린 망각
아련한 핏줄을 타고 나온다
다시 눈 뜨는 사이
마니차 돌리는 목탁소리 피어나고
한 줄기의 길이 몸을 던진다
해마다 울컥거리는 2월의 법문이
또 붉은 강물을 건너고 있다
김미선, <뜨거운 쓸씅함>, 지혜, 2014.
동백
김미선
동공 깊은 곳까지 칸칸이 붉어지는 틈
탱고 춤을 춘다
솟아 난 돌기가 팔을 당기고
심장을 밀며
흰 눈 위로 스텝이 펄럭인다
나를 간통하렴
리드미칼하게 부서지는 고통이여
나를 잊는 것은 내가 아니다
허공을 안고
환각을 풀어놓는 아디오스노니노
강렬한 몸짓의 비명을 쏟아낸다
동녘을 태우는 동안
피어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불꽃
쉘 위 댄스 쉘 위 덴스
미혹이 도취가 되어가고
휘어지는 낙화가 별이 되는
김미선,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작가마을, 2022.
Adiós Nonino는 Astor Piazzolla(1921~ 1992)가 작곡한 누에보 탱고.
'Nonino' 그의 아버지의 애칭.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미국의 재즈를 혼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형식.
Astor Piazzolla(1921~ 1992)
Adiós Nonino
Original Broadway
Adiós Nonino
Astor Piazzolla(1921~ 1992)
4월 소나타
김미선
초록 꽃눈 총총히 돋아나고
목련 부풀어 오르던 그 자리
수양 벚나무 춤사위 펼친다
숨을 몰아 뱉어내는 고갯마루에
허기진 꽃들 난분분 깊어가고
진달래 덩쿨 사이로
허물처럼 벗겨지는 봄의 말들
놋점공 어디쯤 불을 지핀다
날리는 사월을 지핀다
붉은 산다화 목을 꺾으며
한 악장을 넘기고
팡팡 터지는 하루가 비틀거린다
꽃잎 떨구는 희뿌연 고백들
청춘이 청춘을 밀어내듯
연둣빛 산천 넘어 간다
장엄하게 펼쳐지는 풍경이
할미골처럼 휘어져 흩날린다
꽃 피고 지는 슬픔 한 대목
슬몃, 펄럭이다 사라진다
눈물이 떠다닌다
환상을 떠도는 환상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음절이 슬픔을 연주한다
김미선, <해독의 지느러미를 헤쳐간다>, 작가마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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