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歸天-천상병

추연욱 2009. 5. 21. 14:33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별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집 <주막에서>, 민음사, 1979.

 

정덕기 작곡

바리톤 박흥우

http://blog.daum.net/dibae4u/10595164

 

1연의 ‘이슬’과 ‘손을 잡고’ 돌아간다는, 그리고 2연의 ‘노을빛’과 단둘이서 돌아간다는 태도는, 삶에 집착하거나 미련을 가지지 않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슬과 ’노을빛‘은 영롱한 아름다움을 발하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자연물이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을 선선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듯이, 그는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누리는 소유물들에 별로 미련이 없다. 미련이 없으므로 삶에 대한 집착도 없는 것이다.

3연에서 시인은 힘든 삶을 살았지만 삶에 집착하지 않고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지나온 삶의 자취 속에서 소중한 기억을 더듬으며 그래도 자신은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았노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인생을 하늘에서 떠나 잠시 지상으로 소풍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이는 인간과 하늘을 적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인간을 우주에 속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관조의 힘을 바탕으로, 짙은 우수 속에서도 절제된 목소리로 삶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千祥炳(1930~1993)은 1930년 1월 29일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테어났다. 1949년 마산중학교 5학년 때, <竹筍> 11집에 시 <空想>을 발표했으며, 1952년 <문예>에 <강물>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한다. 그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을 발표했다.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심한 옥고와 고문을 겪었다. 친구 강빈구에게 막걸리값으로 5백원, 1천원씩 받아썼던 돈이 공작금으로 조작된 것이다. 천상병은 전기고문으로 몸과 정신이 황폐해졌다. 그때의 처참한 수난을 이렇게 말한다. "이젠 몇 년이었는가/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고문)당한 그날은//이젠 몇 년이었는가/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네 사과 뼈는 알고 있다./진실과 고통/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1970년에는 무연고자로 오해받아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당시 친구들은  갑자기 사라진 천상병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유고시집 <새>를 출판하였다. 시집 <새>에 시 <새>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1972년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과 결혼한다. 1979년 시집 <주막에서-민음사>를 펴냈고,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84년>,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1987년)>,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1991년>, 그리고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1993년>를 발표하였다.

 

말년에 기독교에 귀의하여 하나님에 대한 소박하고 순수한 신앙을 보여주는 작품도 썼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대우주의 精氣가 모여서/되신 분이 아니실까싶다.//대우주는 넓다./너무나 크다.//그 큰 우주의 정기가 결합하여/우리 하느님이/되신 것이 아니옵니까?"<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1993년 4월 28일 지병인 간경화증으로 별세한다.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 <천상병 전집>이 출판되었다.

경상남도 산천군 시천면 중신리에 천상병 귀천 시비가 있다. 


문순옥(1935~2010)은 1935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오빠 친구였던 천 시인과 1972년 결혼했으며 평생을 무직으로 살았던 천 시인의 뒷바라지를 했다.

1985년부터 인사동에서 전통찻집인 '귀천'을 운영했으며 천 시인이 별세한 뒤 2008년 천상병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고인을 추모하는 작업을 해왔다.

2010년 8월 10일 별세한다.

 

 

  

 

  

 

 

 


Back to Heaven

I'll go back to heave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 again.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ii go back and say : It was beautiful.


안선재 역

안선재는 영국인으로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다. 한국에 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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