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용혜원, 한 잔의 커피 1, 내 마음에 머무는 사람, 가을이 가네

추연욱 2017. 9. 28. 17:47



한 잔의 커피 1


용혜원


사랑이 녹고

슬픔이 녹고

마음이 녹고


온 세상이

녹아내리면

한 잔의 커피가 된다


모든 삶의 이야기들을

마시고 나면

언제나

빈잔이 된다


나의 삶처럼

너의 삶처럼


용혜원,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나무생각, 2014.



내 마음에 머무는 사람


용혜원


한순간 내마음에 불어오는

바람인 알았습니다


이제는

잊을 수 없는 여운이 남아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아

그리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만남과 사랑이

풋사랑인 줄 알았더니

내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대에게 고백부터 해야 할 텐데

아직도 설익은 사과처럼

마음만 붉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대는

내 마음에 머무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가을이 가네


용혜원


가을이 가네

빛 고운 낙엽들이 늘어놓은

세상 푸념을 다 듣지 못했는데

발뒤꿈치 들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을이 가네


가을이 가네

내 가슴에 찾아온 고독을

잔주름 가득한 벗을 만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함께 나누려는데


가을이 가네

세파에 찌든 가슴을 펴려고

여행을 막 떠나려는데

야속하게 기다려주지 않고

가을이 가네


가을이 가네

내 인생도 떠나야만 하기에

사랑에 흠뻑 빠져들고픈데

잘 다듬은 사랑이 익어가는데

가을이 가네  


용혜원,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나무생각, 2014.



내 기억에 남아 웃고 있는 당신은


용혜원


내 기억에 남아 웃고 있는 당신은

나 모르는 사이에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옵니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

몇 발자국씩 몇 발자국씩 멀어졌는데

이리도 선명하게 다가옴은

사랑이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한 순간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

돌아섰는데

이리도

내 기억에 남아 웃고 있는 당신은 

어찌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용혜원,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나무생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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