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정한아/ 수국

추연욱 2018. 5. 12. 08:21



수국 水菊


정한


잉크가 마르는 동안 나는 사랑했네

부끄럼 없이 꺾은 꽃봉오리 한 채의 수줍음과

그 千의 얼굴을

한 꽃의 일평생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설임

열 길 물속

다 들켜버린 마음

나 사랑하는 동안 시들고 비틀린

열매 없는 창백한 입술들이여

똑같은 꽃은

두 번 다시 피지 않은 것을: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었으나

세상은 언젠나 완전했네.


정한아, <울프>, 문학과 지성, 2018.

정한아, <문장웹진>, 201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