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타나[阿斯塔那] · 카라호자 고분군 - 고창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10분.
아스타나는 위구르 말로 ‘수도’란 뜻으로 고창국의 수도임을 의미한다. 카라호자는 옛 위구르 왕국의 장군의 이름인데 그가 생전에 주둔했던 지역이 이곳이어서 지명이 유래했다. 중국어로는 二堡이다. 13C 말 고창 옛 도시가 폐기된 후 그 북쪽에 새로 들어온 카라호자 마을 사람들은 묘역을 동서로 나누었다. 동쪽 카라호자 묘역을 카라호자 고분군, 서쪽 아스타나 촌 묘역을 아스타나고분군으로 명명한 다음 다시 이 둘을 합쳐 아스타나 · 카라호자 고분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입구에 12지신을 형상화한 석상들과 중국 신화 속에 인류의 시조로 전해오는 ‘복희여와도‘ 탑이 서 있다.
옛 고창 시민들의 공동묘지이다. 서진, 당나라, 국씨고창국, 위구르고창국시대에 이르는 대략 273~778 사이의 평민, 관리, 귀족, 왕실이 두루 사용하였다. 무덤은 모두 456개이며 연대가 확인된 것은 330개이다. 거기서 총 1만근이 넘는 2700여 건의 문서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300여 건은 토카라어나 소그드어, 위구르어로 씌어진 불교와 마니교, 경교 등 종교 문서다. 특히 이곳에는 불교와 마니교의 공존하고 있다. 흔히 마니교 동굴이라고 하는 42동에는, 원래 불교의 觀想을 위한 굴로서 지금도 동서벽에는 이와 관련한 벽화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후일 마니교가 들어오면서 중앙벽에는 나무가지마다 금박장식을 한 ‘생명의 나무’ 49개를 비롯해 온통 마니교 관련 그림들이 들어차게 되었다. 이 굴에서는 마니교 경전도 발견되었다.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이 지방 귀족, 관리, 평민들로 서진 초부터 당나라 중엽 시기의 인물들이다.
북량의 시조 武宣王 沮渠蒙遜(386~433)의 부인 彭氏, 고창 태수 저거封戴, 고창국의 장군 張雄과 그 부인, 당나라때 부도호 高耀 등이 매장되어 있다.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들은 한인 왕조인 국씨고창국 시대의 유물들로 묘표, 무덤을 지키는 진묘수, 직조유물 등 다양한 부장품들을 망라한다. 중국 · 서역 문화가 지역 특색에 맞게 교류 · 융합된 양상을 대변하는 기준 유물이란 점이 주목된다. 특히 40호분 천정에 붙였던 중국 신화의 창조신 복희와 여와의 삼베 그림은 채색이나 구도 등이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밖에 카라호자에서 출토된 13~14C께의 꽃무늬 바구니도 이후 출토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희귀품으로 손꼽힌다.
216호분 묘실 정면에는 유교의 윤리적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그려져 있다. 그중 4첩은 성인도로서 왼쪽부터 앞가슴이나 등에 ‘玉人’, ‘金人’, ‘石人’, ‘木人’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공자묘의 네 성인을 말하는 것으로 흰 옷 입은 옥인은 청렴결백을, 입을 삼중으로 막은 금인은 언행신중을, 석인은 돌처럼 결심이 굳어 흔들리지 않는 결심부동을, 목인은 거짓이 없이 바르고 곧은 無僞正直을 뜻한다.
아스타나 고분 입구 12지신상과 복희여와도 탑
복희와 여와-아스타나 고분-7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