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오면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문학동네, 2015년 3판.
깊은 물
도종환
물이 깊어야 큰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이 저녁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돌아오는 길에도 시간의 물살에 쫓기는 그대는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 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그대 오늘은 또 얼마나 소리치며 흘러갔는가
굽이 많은 이 세상의 시냇가 여울을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문학동네, 2015년 3판.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도종환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들에는 들꽃이 하얗게 피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나무는 꽃을 잃고도 내색하지 않고
옆의 나무들을 찾아가 숲을 이루었다
우리가 싸우고 있는 동안
오솔길은 큰길을 만나러 달려나가고
부끄럼이 솜털처럼 보송송하던 녀석들이
어느새 어른이 다 되어 있다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문학동네, 2015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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