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수필 <Q씨에게>
……
그런데 Q씨.
참으로 쓸쓸하고 막막한 부름이군요. 나는 도무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내 그림자인지도 모르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벽인지도 모르겠고 저 머나먼 곳, 밤하늘에 있는 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나를 알 턱이 있나요.
영원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소망하는 노래를 우리가 부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노래는 그치지 않는 인간의 울음이라는 것도.
설사 우리 인간들이 함께 으슥한 뒷골목, 낡은 간판이 겨울바람에 덜컥거리는 음식점에 앉아서 저녁을 나누어 먹고 톱밥 불이 모락모락 타는 손님 없는 다방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한잔의 커피를 즐기다가 街燈이 뿌옇게 번져나는 밤 늦은 거리에서 헤어지는 다정함이 있다 하더라도 내 쓸쓸한 의미를 알 리 없거늘, 하물며 Q씨 당신은 내 그림자요? 허공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Q씨.
이 부름에 무슨 메아리를 바라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진실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명한 언어를 지니지도 못하였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그 누구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심지어 지나가는 행상까지도 머무르게 하여 이야기하시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기뻤던 일보다 슬펐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성싶었습니다. 하기는 기뻤던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은 더 많았던 생애였으니까 그랬을 테죠.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날이면 나의 어머니는 강아지니 고양이를 상대로 푸념도 하시고 짜증도 내시고 때론 야단도 치시고 하죠.
얼마나 외로운 풍경입니까.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외로운 풍경을 아주 싫어한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를 노엽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푸념이었으니까요. 왜냐구요? 모르겠어요.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아마도 내 가까운 사람의 설움을 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거예요. 하기는 내 딸이 아팠을 때 나는 줄곳 화만 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도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처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을 겁니다. 지니가는 행상의 옷소매를 잡았을 거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들볶았을 거고, 새벽이면 새벽마다 염주를 매만지며,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염불을 외웠을 것입니다.
실인즉 지금 나는 Q씨를 향해 온갖 군소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항시 나는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너무 할 말이 많아 나는 내 몸무게를 잃을 지경이었고 내 눈은 별이 기득찬 우주와 그 우주 밖 무궁한 곳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당신은 그처럼 많은 소설을 썼으면서도 아직 군소리가 남아 있느냐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오기까지 할말을 한마디도 못했다는 괴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또 뭐라는 겁니까? 그럼 속 시원히 할말 다 해버리라고요?
Q씨.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 아름다운 이 지상, 어느 누가 할말을 다 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인간이 탄생했던 그 시기에서 역사를 살고 간 그 억만의 사람 중에서 그런 분이 계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인 성싶습니다.
무슨 그런 독단이 있느냐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할말 없죠만.
하지만 Q씨,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나는 건방지기도 하고 주착없기도 하고 황당무계하기도 하고, 그저 내 심상에 비친 말을 하는 거예요.
혹시 할 말씀을 다 하고 가신 분이 계셨더나면 그분은 틀림없이 신이거나 영원한 생명일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석가와 기독이 일찌기 계셔서 그분들이 오늘에도 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과연 이분들은 할말을 다 하고 가셨는지.
진정으로 나는 그런 확신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나는 뜨거운 희열로써 그분 발밑에 귀의하여 내 모자라는, 아니 잃은 언어를 위해 구원을 애걸하겠습니다.
Q씨.
지금 어느 송신소인지는 모르지만 외로운 어떤 소녀가 사연을 띄웠군요. 자기를 위해 청해 줄 사람도 없고 자기 역시 청해 드릴 분도 없으니 나를 위하여 내 혼자 조용히 듣겠노라고 음악 한 곡을 청하였습니다.
<태양은 외로워>-
나도 본 일이 있는 영화 주제곡이군요. 그 메마른 비애의 음악에서, 외로운 소녀의 사연에서 공통된 언어는 있었다고, Q씨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성싶어요. 하지만 좀 기디리세요. 아마도 이것은 착각인 것 같단 말입니다.
베토벤은 왜 그리 죽었을까요.
인생은 한갓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다지 않습니까.
……
Q씨.
이리하여 나는 사람을 만나는 고통을 또 맛보고 내 집에 돌아와서 문을 닫아걸려고 결심했습니다. 나는 본시 그런 군소리하는 입을 닫아둘 만큼 절도 있는 여자가 못된 탓이었습니다. 고삐를 잡고 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때 나는 자신이 무서워지는 때가 많습니다.
아득한 강물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닫는다는 것은, 언어는 그 강물 이편에서 허위적거리며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겠죠.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야수처럼 태고적에 나무숲을 타고 다니던 인간이 인간을 발견하였을 때 지른 고함, 그것은 무서움이었든지 반가움이든지 어늘날 수천 수만의 언어보다 과연 더 못했을까. 그들은 그때도 마음을 가졌던 것이었을까. 길을 거닐다가도 문득 생각해 보면 아리송한 산을 바라보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만나는 고통 때문에 내 집 문을 닫아걸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참으로 느낌에서 억겁을 겪은 듯한 시련이건만, 인간이란 도시 서글픈 미물이군요. 나는 다시 거리를 헤매어 다녔으니 말입니다. 거리에는 가을철, 낙엽이 구르고 있었습니다. 널찍한 플라타너스 잎이 을씨년스럽게 너풀거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의 마음을 느끼기에는 어쩐지 그 잎이 너무 커서 하마 입을 연상케 되더란 말입니다. 어릿광대의 원색도 잠시 눈 앞에 스쳐갔고, 그러나 이내 친근미를 갖게 하더구만요.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웠던 탓이었는니도 모르죠. 희극이 비극보다 희소했던 탓이었는지도……
……
이제 얼마 되지 않으면 일모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습습한 바람이 불어오고 일제히 켜지는 상가의 불빛은 사십 고개를 넘은 여인들에게 청춘을 덤으로 줄 것입니다. 우리 이웃 산장에서도 밴드 소리가 숨을 죽이며 울려나올 거고, 사십 고개의 여인들이 주름살을 잊고 도둑처럼 기어드는 산장의 댄스홀……
아무도 만나지 말고 개울 길을 건너서 나는 내 그림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朴景利 문학전집 16, <Q씨에게>, 지식산업사, 1981.
박경리의 초기 수필은 이처럼 좀 유치하다. 아마 요즈음은 여중생도 유치하다고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학창시절 가끔 이 글을 읽곤 했다.
나이 탓인지, 계절 탓인지 좀 유치해져 보고 싶다.
특히 나에게는 이 글과 관련된 어떤 막연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 얼룩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이 글이 생각났을 것이다.
학생일 때 박경리 선생이 대구에 와서 문학강연을 한다기에 찾아갔다.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은 우리나라 3대비극이다. 춘향전은 권력자의 횡포, 흥부전은 가난, 심청전은 죽음이 주제"라는 것이다. 학교 강의에서나, 어떤 문학연구서적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이분의 이런 논리는 나의 문학적 안목을 새롭게 해 준 것을 기억한다.
또 그때 박경리 선생 대략 40살쯤 되었을 것이다. 귀부인 같았다. 깡마른 몸에 좀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초년생 교사였을 때 어느 겨울 방학, 교사들 단체로 법주사로 연수(여행)를 간 적이 있었다. 법주사 여관촌, 지금은 뽕밭이 바다가 되었다. 그때 모습은 어느 구석에도 찾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때 여관촌은 길바닥은 흙길 그대로였다. 가로등 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 그저 상점들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전부였다. 박경리의 수필에서처럼 바람에 간판이 흔들려 찌그덕 소리가 나고, 마룻 바닥이 덜컹거리는 2층 손님 없는 어떤 다방, 톱밥 난로가 모락모락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다방에서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매마른 산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Q씨에게>를 생각했다. 그러나 Q씨에게 고백한 것처럼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밤하늘에 헤어지는 다정함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뒤에도, 그 뒤에도 나는 이런 다정함과 쓸쓸함은 체험하지 못했고, 오직 내 마음 속에만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제 세상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졌다.
끝내 내 마음 속에만 존재해야 한다. 못내 쓸쓸하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주책은 부릴 수 없지 않는가.
문학 작품은 문학작품일 뿐이다. 공부할 때는 문학을 즐기지 못했다. 문학작품은 즐길 대상이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객체일 뿐이었다. 항상 내가 배운 방법론으로 분석하려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옛날 읽었던 작품들의 편린들이 새삼스러운 의미로 묻어오는 것일까.
'자료실 > 도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e: `虎`자가 들어가는 지명 (0) | 2009.12.31 |
---|---|
반달리즘(Vandalism) (0) | 2009.12.28 |
高銀 에세이- 머나먼 길 (0) | 2009.11.25 |
한국인의 산악관-이재선-소설문학-제9권 제8호-1983년 8월 (0) | 2009.09.23 |
숫가락, 젓가락 (0) | 200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