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길
고은
길은 신이 만들지 않았다. 신이 시켜서 누군가가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 길에서 인간은 목적과 허무에 이르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길은 인간에게 떠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리하여 길은 신이다.
몇 해 전의 名畵 <길>의 한 커트를 기억한다.
신과 백치의 여자, 그 젤소미나가 시골 수녀원의 헛간에서 자고 떠날 때였다.
수녀가 유랑하는 젤소미나에게, “나도 당신과 같습니다.” “한 곳의 풀잎에도 애착해서는 안됩니다.” “나도 곧 떠날 것입니다.”……라고 濕印朱처럼 대사를 준다.
그들은 말로서 같은 길, 같은 운명을 절감했다.
그때 旅愁는 잠에 깨이지 않고 젤소미나의 슬픈 몸에서 깨어난 것이다.
여수가 신이기 때문에 詩神이다.
그래서 여수는 누구에게나 시인이게 한다.
누구나 시인은 아니지만 시적이게 한다.
한 줄의 시처럼 어디론가 떠나서 다음 한 줄에 건너 갈 것이다.
어느 때는 로코코처럼 두 기둥의 사이기 되고, 어느 때는 러시아 정교회의 끝없는 지평선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펠리칸 鳥와 불사조를 사랑하고 마지막에 떠나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서 제가 나그네가 된 적이 없다면 얼마나 그 삶이 무의미할 것인가.
슈벨트의 <겨울나그네>는 그것을 일러준다.
어디든지 떠난다는 것은 그것이 이웃 마을이건, 먼 곳이건, 그리고 죽음이건, 그것은 가장 신성한 간택이고 숙명인 것이다.
나그네는 숙명의 실현자이다.
예수가 지식인 유다의 은 30에 팔려서 이 세상을 떠났다.
그 길이 영원한 신앙이 되었다.
인생의 주소는 고정되지 않는다. 언제나 유전한다.
제가 태어난 것도, 태어나서 사는 것도, 이 세상을 아주 떠나는 것도 하나의 대여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죽음으로써 길은 비로소 살고 있다. 멀리 멀리 떠나는 그 길이 마침내 죽음이다.
이 여정은 무상한 것이다.
이 무상의 법칙이 진리이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길이다. 그 길을 떠나가지 않으면 않되는 것이 삶이다.
인생의 삶, 그것뿐 아니라 자연도 그러하다.
그래서 이 ‘존재의 길’의 근원에는 항상 ‘자연’을 찾게 되는 것이다.
고은, <성 고은 에세이 인간은 슬프려고 태어났다>, 평화문화사, 1960.
영화 <La Strada 길>
1954년
멋져요. 떠 돌아 다니는 게 좋은가 보죠.
우리도 돌아다니지요. 2년마다 수녀원을 바꿔요.
세상 사물에 너무 애착하지 말라는 거지요.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곳에 애착하지요.
나무 한 그루에도 애착하고…….
그러다 제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릴까봐.
우리 둘 다 떠돌아 다니네요.
당신은 당신 낭군 따라
- 나는 내 낭군 따라
그래요, 각자 자기 사람 따라서.
La Strada(길) OST/ Gelsomina
Nino Rota(1911~ 1979) 작곡
세노야
고은 시 / 김광희 작곡/
나윤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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