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경주

계림

추연욱 2014. 12. 12. 21:02

 

 

계림(사적 제19호)은 첨성대에서 반월성으로 가는 중간에 있다.

 

 

숲에는 느티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등 노수가 울창하다.

북쪽 가에서 서쪽 가로 개천이 흘러 그 주위는 습지가 되었다. 그래서 왕버들도 많다.

조선 후기의 문인관료 남공철이 순조 3년(1803년) 세운 사적비와 비각이 있다.

서쪽 끝에 내물왕릉이 있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김알지, 탈해왕대 조에 이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탈해왕 4년(60) 8월 4일 호공이 밤에 월성 西里를 걸어가는데, 크고 밝은 빛이 始林(鳩林이라고도 함) 속에서 비치는 것이 보였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뻗쳤는데, 그 구름 속에 황금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그 빛은 궤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또 흰 닭이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은 이 모양을 왕께 아뢰었다.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어보니 童男이 있는데, 누웠다가 곧 일어났다. 이것은 마치 혁거세의 고사와도 같았으므로 그 말에 따라 그 아이를 알지라 이름지었다. 알지란 곧 우리말로 소아를 일컫는 것이다. 이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춘다.

왕은 길일을 가려 그를 태자로 삼았다.

그는 뒤에 태자 자리를 파사왕에게 물려주고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했다."

김씨 왕가의 시조 알지는 계림숲의 나뭇가지에 얹혀있는 金櫃 속에서 발견된다. 닭이 홰를 쳐 그의 탄생을 알려주었다.

어둠이 끝나고 빛이 시작되는 사간, 닭이 홰를 치는 새벽은 귀신이 물러가는 시간이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이다.

닭은 세계 어디서나 주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숭앙되었다. 특히 수탉은 크고 붉은 벼슬로 태양을 상징한다. 귀신을 쫓고 액을 막아주는 새로 신봉되었다.

계림은 신성한 곳이다. 신성한 숲 계림은 세속적 공간인 인간들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인간과 단절된 곳이다.

어린 아이가 버려지는 이야기는 신화의 보편적인 모티프다. 그리스 신화에 외디퍼스, 히브리 신화에 모세, 우리 신화에 탈해, 알지가 있다. 어릴 때 버림받는 가혹한 시련을 통해 탄생의 절차를 한 번 더 상징적으로 겪는다. 장차 왕이 될 귀한 아이로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액땜을 하는 것이다.

계림의 나무들은 세계수다. 세계수는 대지의 중심 곧 우주의 배꼽에서 싹이 터 자란다. 세계수는 세계를 떠받드는 기둥이다. 하늘이 내려앉지 않게 버티고 땅이 가라앉지 않게 지탱해 주는 나무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 세계와 우주는 하나의 조직체로서 유기적으로 존재한다.

단군할아버지의 아버님 환웅이 타고 내려오신 태백산 신단수는 세계수다.

세계수가 있는 산, 마을 공동체의 당산나무는 신성한 곳이다. 이곳은 신이 내리는 곳이다.

북유럽의 신화 <에다>에 나오는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거대한 물푸레나무요,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세계수 훌루프나무는 버드나무다.

세계수는 우주 공간을 분할하고 질서를 만든다. 분할로 구획이 생기게 되고 공간이 공간으로의 구체적 의미를 가진다. 세계수는 그 가지로써 하늘을 하늘답게, 지상에서 멀리 있게 하고, 그 뿌리로써 땅 속의 세계, 지하 세계를 얽매고 있다.

영원한 삶이 배정된 선신과 선의 영지 하늘, 악신과 악, 죽음이 배당된 지하를 대립시키는 분할로 세계수는 종교적, 윤리적 이데올로기의 원리가 된다. 위로 솟아 선에 이르고 밑으로 뻗어 악에 이르는 나무는 인간의 삶과 윤리의 표상이다.

단군신화의 신단수에서 유래된 세계수는 청동기시대를 거쳐 농경문화가 자리잡았던 시대 계림으로, 다시 마을 공동체의 당산나무로 그 신앙적 맥이 어어진다.

나무는 인간보다 우월하다.

나무는 거대한 몸체와 장구한 수명으로 인간은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수백년 이상 마을을 지켜 온 나무는 역사의 살아있는 증언으로 인식되이다.

또 나무는 해마다 봄이 오면 싹을 틔우고, 가을이면 잎을 떨어뜨리는 영속성이 있다. 이것은 우주의 리듬이다. 당산나무는 우주수이다.

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 다산성을 상징한다.

선조들은 나무를 정신적, 정서적 가치 대상으로 인식했다.

나무를 물질로만 보지 않고 인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보은의 정이품송에게 사람처럼 벼슬을 주었고, 예천의 석송령과 황목근에게는 재산을 물려주기도 했다.

<삼국사기>는 알지의 신이한 탄생 신화를 수록하지 않았다. 유교적 합리주의자 김부식으로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도무지 미덥지 않았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이어 알지에서 6대손 미추왕에 이르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삼국유사>보다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보는 편이 더 좋겠다.

"그의 祖先은 알지이다. 계림에서 출생한 것을 탈해왕이 데려다 궁중에서 길렀는데, 뒤에 大輔 벼슬에 올랐다. 알지는 勢漢(삼국유사에는 열한)을 낳고 세한은 아도를 낳고 아도는 수류를 낳고 수류는 욱보를 낳고 욱보는 구도를 낳고 구도는 미추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첨해왕이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랏사람들이 미추를 왕으로 세웠는데, 이는 곧 김씨가 왕이 나라를 맡게 된 처음이다."

알지의 후손 미추가 신라 제13대 味鄒尼師今(262~284)이 된다. 이후로 이곳을 계림이라 하였고, 김씨가 왕이 되어 나라가 번창할 때는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 했다.